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 로고이미지

1990년-2000년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1990년-2000년

1990년대 우리학교는 학교 풍토가 좋고, 스승과 제자 사이가 돈독하여 인성교육을 잘 하는 학교로 정평이 나 있었다. 또한 학업 성적도 우수하여 한 해 서울대 6명, 전북대 118명 등, 우수한 대학 진학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또한 1991년에는 배드민턴 선수단이 춘계, 종별, 전국체전을 모두 석권했고 김신영 학생은 헝가리 오픈에서 우승했다.

1992년 방춘원 교장의 정년퇴임으로 6대 교장에 박해근 교감이 승진 임명되었다. 그 해 단열과 소음 차단을 위해 교실의 창문을 이중창으로 보수하여 교실환경을 개선하였다.

1993년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처음으로 도입한 해다. 기존 학력고사는 교과서를 무조건 암기를 해서 치렀다면, 수능은 통합적인 사고력을 측정하기 위한 시험 형태였다. 이에 따라 학교 교육과정, 수업 내용 등 많은 변화를 맞이하였다. 수능 첫해는 8월과 11월 두 번의 시험을 시행하였으나, 2차 시험의 저조한 참여율과 난이도 조절이 문제가 되어 이듬해부터 오늘날까지 수능시험은 11월에 한 번만 시행하게 되었다.

1994년 2월 박해근 교장의 정년퇴임으로 제7대 교장에 해성중학교 송재진 교장이 전보 임명되었다. 그 시절 우리학교 체육대회 열기가 뜨거워 학급별 경쟁이 치열했다. 재치 넘치는 가장행렬과 응원 방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할 만큼 독창적이고 개성이 넘쳐났다.

사진 사진 사진

1996년 3월 해성학원은 성심여중 종교 교육을 위해 김영태 신부를 종교 교사로 임명하였으며, 동창회에서는 개교50주년 기념으로 옥잠화 동산에 화강석으로 제작된 성모상을 세웠다.
1997년 12월3일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IMF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양해 각서를 체결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 선생님과 여학생들 모습
  • 학교 앞 동상 사진
    김병엽 신부님의 영구차 모습

1998년 2월, 진정한 성자의 모습으로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사랑을 실천하셨던 김병엽 신부님이 길을 걷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 신부님의 평소 유언대로 모든 것을 시행하였고, 고인의 성품을 받들어 교통사고를 일으켰던 사람은 용서하였다. 또한 무소유와 무욕의 삶을 실천했던 신부님의 유언대로 통장에 있던 전재산 30만원으로 특별히 사랑하시던 성심여자중고학생들에게 볼펜 한 자루씩을 선물하였다.

김병엽 신부님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르 12,31)

1. 안구를 기증한다.
2. 장기와 병원에서 필요하다면 육체 어느 부분이든지 기증한다.
3. 대학병원에서 연구에 필요하다면 육체 전부를 실험 도구로 제공한다.
4. 교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화장하여 그 재는 산림 성장의 비료로 하면 좋겠다.
5. 대영백과사전은 ○○○ 신부에게 기증하고 책은 ○○○ 신부에게 위탁하여 처리케한다.
6. 만일 돈이 있다면 ○○○ 신부에게 위탁하여 처리케 한다.

KBS추적60분 - 어느 사제의 죽음 영상 보기
이것이 인생이다 - 故 김병엽 신부님 영상 보기

사진 사진

1999년 9월에는 제8대 교장으로 김경주 선생이 임명되었다. 슬하 아들 두 명이 사제의 길을 걷고 있을 만큼 독실한 천주교 집안을 이루고 있었던 김경주 선생은 온화한 성품으로 학생들에게는 성심인의 긍지를 심어주고 교직원들에게는 화합을 강조하며 좋은 학교 풍토를 만들어 가는데 힘썼다.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분위기로 들떠 있던 1999년 말에는 컴퓨터가 2000년 이후의 연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이른바 밀레니엄 버그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분위기가 확산 되었다. Y2K라 하여 현재 컴퓨터가 현재 인식하고 있는 연도 표기를 두 자리로 2000년을 00년으로 인식하게 되면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든 일이 마비될 수 있다는 근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