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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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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nnamilbo_com_20131029_113208.jpg
    채승필 | 13.10.29 조회:1242
    화산중, 선진학교 '메카'로 인정받다
    화산중학교가 선진학교 및 우수학교 견학의 메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와 경상도, 그리고 중등 및 초등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많은 학교가 화산중학교의 교육패러다임을 전수받기 위해 바쁜 학사일정속에서도 본교를 방문하고 있습니다.
  • 화봉심의두교장선생님[1]_img_0.jpg
    운영자 | 10.12.09 조회:1730
    한국인물열전33인에 기고된 글내용
    ▴완주군화산중학교전경(원안은설립자겸교장심의두) 沈宜斗(雅號華鳳)1935. 2. 28 全北完州 ◈학력:’57.2용문고교졸,’64전북대법학과졸,’86~’87서울사대부설행정연수원수료 ◈이 력:’64화산고등공민학교설립․교장,’69~’95완주화산중학교설립자겸교장’70전국새마을연수초청강사,87전북사학법인련이사․부회장,’88~’91완주군교련회장,’91한국중등교육협의회대의원,’90전북사립설립자교장회회장,’95~’98전북도교육위원회교육위원,’97~’98전북도교육위원회의장,’98.10~ ’99.8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교장,’99.9화산중학교설립자겸교장(이사장),’98.10제2건국위원회완주군위원장및중앙위원,2000.6제27회교단문학신인상(시부문),’02.2전북국민홍보위원회장,’02.10청와대원로정책자문위원,해외연수및시찰9차례 ◈저서:‘장기묘수풀이지도자교육’ ◈논문:‘한국교육지표로서의신의에관한일고’,(서울대)‘환경위생과쓰레기분리수거’전국교장단주제발표,’99.12.15.전북일보가치관교육-한국교육지표를신의로하자.2000,1.25.전북일보농촌학교살리기특별법제정요구-‘농촌은뿌리요,도시는꽃이다’발표.외다수 ◈상훈:제1회경향사도상.문교장관상,전북대상,국민훈장석류장,교육감표창,도지사표창,남산문화재단교육상,공익장(완주국민의장),전북도민상,한국최고브랜드대상,08,대한민국혁신그랑프리대상,고객감동그랑프리대상,혁신경영CEO대상,’09교과부교과교실제A타입최우수상15억원지원,2010교육과학기술부교과교실제A타입운영학교최우수상,2010교과부연구선도시범학교운영선정3년간,2010KBS주최‘2010대한민국좋은학교박람회’초청참가외다수 ◈언론:2009년美CNN(‘전세계에서농촌학교를살린학교는화산중학교뿐’이라고소개,미국캐나다,프랑스,호주,일본,중국,몽골등전세계에방송돼몽골등지에서견학을오고있음)외KBS,MBC,동아일보,조선일보등주요언론에학교와심의두교장선생님개인의업적이수십차례소개됨 인간상록수교사, 화산중학교 설립자, 시인 학교법인 화봉학원 이사장, 전북도교육위원회 의장 프롤로그 선생은 성인교육에서 시작하여 화산학원, 화산고등공민학교를 거쳐 화산중학교(학교법인 화봉학원)를 탄생시킨 상록수교사요, 교육자요, 농촌계몽운동가요, 육영사업가다. 완주군의회에서 100% 지지와 전라북도의회 58명 중 100% 찬성으로 교육위원과 의장에 당선된 경이적인 기록의 교육행정가요, ‘중학교 의무교육 실시’ 및 ‘사립학교 시설비 지원’의 1등 공신으로 百年之大計인 우리 교육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한 숨은 교육발전 유공인사이다. 2000년 봄 제27회 교단문학신인상(시 부문)을 수상한 시인이기도 하다.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는 신념으로 살아온 우리 시대 큰 스승의 큰 삶을 짧은 지면에 담아본다. 화산중학교 터는 지도자가 배출 되는 최고의 터 선생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조부님에게 천자문을 배웠다. 그 때 전국에서 몰려 온 할아버지들이 하루에 보통 열대여섯 명씩 조부님 댁의 마루에까지 꽉 차곤 했다. 그분들은 화평천의 명당 터를 찾아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지관을 모시고 왔으며 그분들의 담론은 다음과 같이 한결같았다. “정감록 비결에 한국에서 최고의 양택지 세 곳이 있다. 청계천, 계룡천, 화평천이 그것이다. 이 길지는 한결같이 西出東流水에 太極型이다. 청계천과 계룡천은 도읍지에 불과하고 화평천은 문관 5천 무관 5천이 나온다는 아주 유명한 전설이 서려있는 신비스러운 명당 터이다. 그 터를 어느 성씨가 잡느냐에 따라서 만대에 걸쳐 득세하게 된다.”래방객 때문에 한문을 제대로 익힐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분들의 대화내용을 귀가 아프게 들어왔던 선생은 어느 날 ‘꼭 드릴 말씀이 있다’며 당차게 그분들의 대화 속에 끼어들었다. 모두의 시선이 어린 학동인 선생에게 모아졌다. “할아버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한 성씨가 터를 잡아 어느 세월에 문관 5천, 무관 5천명을 배출합니까?도저히불가능합니다.꼭뜻이있다면할아버지께서나와사촌만가르칠게아니라서당을두고수백명모아서가르치시던지아니면화산초등학교와같이큰학교를세우십시오.”이말에모두감탄하며장내가조용해졌다.한참침묵이계속되다가한경상도할아버지께서“寒石,자네똑똑한손자하나두었구먼,저손자말이맞아.”라고했다.다시5 분정도침묵이흐른뒤이구동성으로여기저기서“우리가여태껏헛된일을했구만.”하고멋쩍은표정을지으며한분두분빠져나갔다.그뒤로할아버지를찾아오는분들이간간이있었지만종내는발길이뚝끊어지고말았다.이일이후할아버지와백부님그리고아버지께서는우리집안에큰인물이나왔다며선생에대한칭찬과함께가문의기대주가되었다. 그러고나서선생은그사실을까마득히잊고있었다.그런데’64년화산중학교설립기공식때그자리에있었던백부님을통해다시듣게되었다.학교기공식은지역유범수국회의원을비롯,설인수교육감,이상로교육장,군수,면장등군내외의유지와천여명의면민들이참석한가운데거행되었고,당시교장인선생의인사에이어축사는시간관계상국회의원,교육감,교육장세분으로제한되었다.군수도시간이없어축사를못하는마당에두루마기에갓을쓰신76세의백부님께서축사한마디만하겠다고부득부득우겨축사를하시게되었다.백부님은선생을가리키며“야가내조카인데……”라고시작해서앞서언급한어린시절의이야기를소상하게들려준뒤“그런데오늘내조카가학교를세운다고하니참이상한일입니다.”라고했다.문관과무관이나온때는계룡산이울리기시작하면서라고까지들려주셨다.백부님의의미심장한말씀에박수갈채가제일많이쏟아졌다.오늘날에와서볼때이미계룡산에육군본부가자리잡고있어화평터는울리기시작한것이다. 초등학교때꿈은교사에서교장선생님, 중학교때꿈은학교설립선생의초등학교시절꿈은교사였다.학생들이조금만잘못해도때리는선생님을보며이세상에서최고높기때문에그러나보다 하고소박하게선생님이라는꿈을갖게된것이다.이꿈은4학년때교장선생으로바뀌었다.담임선생님께서앞줄의3명에게교무실청소를시켰다.선생도그중한명이었다.교무실에서교장선생님회전의자를처음본선생은얼른의자를타보고청소를하자고제의,제일먼저탔으며두친구는돌렸다.약속한20여차례중열번남짓돌렸을때주번선생님이나타나셨다.사죄의의미로얼른고개를숙이고셋이차렷자세로섰다.주번선생님은미소를지으며다가와서물었다.“꼬마교장선생님언제부임하셨습니까?”선생은그웃음에안때릴줄알았다.“예,오늘부임했습니다.”“뭐야이○○야네가교장이야”주번선생님은선생을끌고교무실한가운데넓은곳으로가서주먹으로때리고발길로차서넘어뜨렸다.넘어져생각해보니바닥에넘어져서서럽고맞아서아팠다.눈물이쑥났다.순간평소아버지의말씀이생각났다.선생이9살때모친께서돌아가셔눈물을많이흘렸다.그때동네아주머니들이위로한다고‘어머니없어서어쩌냐’란말만해도눈물이줄줄흘렀다.어머니산소에가서일주일동안울기도했다.그때“남자가꼭지켜야할것이두가지있다.하나는‘신의’다.팔다리가부러지더라도울지않고지키는게신의이다.두번째는자신이가진생각을남에게정확히전달해야지그러지못하면사나이가아니다.”라는아버지의가르침이생각난것이다. 선생은내가팔다리가부러지지않았는데왜우느냐며눈물을꾹억누르고팔딱일어나“호기심에서그랬습니다.”고말을하려는데말을꺼내기도전에“야이○○아,그의자가얼마나훌륭한의자인지나알아.우리학교선생님이열일곱분인데교감도나도지금까지앉아보지못했어.그런데감히네가앉아.”하며또때리고발로차서넘어뜨렸다.이번엔교장이더높다면교장이되어야겠다는생각이퍼뜩스쳐갔다.순간꿈은교장으로바뀌었다.교장의꿈은중학교때육영사업가로바뀌었다.가정형편상완주에신설된완주중학교3회로입학했다.그마저선생이보채고졸라입학후3달이지나서였다.점심도못싸가지고다니는데다통학거리가왕복100 리가되다보니피곤해매일코피를쏟곤했다.이때‘내가대학을나올때까지화산에중학교가없으면내가세워나의후배들은나같은전철은또다시밟지않게하겠다.’는신념이생겼고이신념이오늘날화상중학교로태어났다. 고학으로고진감래끝에고교졸업 중학교를졸업하고상경,만고풍상을겪었다.6•25의상처가채아물기전인’54년서울시내전체가폐허가된상태에서일자리를얻는다는것은하늘에서별따기였다.콩비지나눌린보리밥에반찬은소금하나만으로약백일연명하기도했고,일주일을굶고자살을하기위해한강철교위에까지올라갔다가‘앗참으시오’라는글귀를보고마음을되돌리기도했다.신문배달,행상,컴퍼스공장,가정교사,체신청사서함열쇠를고치는공장등을전전하면서도고진감래끝에박사학위보다값진고교졸업장을받았다. 고교시절어렵게구한생명과같은직장인컴퍼스공장을친구에게양보하는미덕을보일만큼의리가있는선생은근무도남보다1 시간전에출근하고1시간늦게퇴근하면서남의일이지만자신의일이상으로하였다.‘항상나보다는가정이우선이고가정보다는직장이우선이고직장보다는국가가우선임’을보여주었다.그결과월급을배로받는영광도누리었다.반면항상힘들었고아니먹을욕도뒤따랐다.남이시켜서하기보다일거리를찾아서했다.그때아무리옳은이론일지라도체험을따라갈수없음을실감했다. 신익희선생님과의만남, 입대후전북대학교입학 어렵게서울용문고등학교를다니던시절선생에게의미있었던일은신익희선생님을존경하고따른점이었다.그분의강의라면직장결근까지마다하지않고쫓아다니는열렬한지지자였다.그분을존경한까닭은그분은한국을스웨덴과같은나라로건설하겠다는신념이있었기때문이었다.선생이강의의맨앞자리를항상차지하다보니신익희선생님이‘네가누구냐’며무척귀여워해주셨다.신익희선생님이대통령으로출마했을땐‘못살겠다갈아보자’는피켓을들고종로6가에서세종로까지앞장서서선거운동을열렬히펼치기도했다.그로인해곤욕을치르기도했다.곧입대하여 복무중에한신소장에게건의,전북대학교분교를수용연대앞에옮기게했다.당시한신소장은하사관이하시험에합격하면군에서도대학에다닐수있도록수업료면제의특전을베풀었다.선생은이특전에힘입어평생소원인대학졸업의꿈을이루게되었다. 중학교설립을목적으로성인교육시작 선생이면회의실을빌려성인교육을시작한건대학4학년2학기때인’63.10.1이었다.성인교육을하면서중학교를설립할경우전면민들이환영할줄알았다.그런데정반대였다.‘국가에서도돈이없어못세우는중학교를어떻게개인이세워?’ 등의조소를보냈다.바람막이역할을해야할면내기관장부터한소리씩하고다니니까선생을이상한사람으로취급하는사람까지있었다.심지어선생의선친께서면사무소에나오면‘미친아들뒀다면서’하고들비웃기까지했다.그리하여부자간의불화가생겼고결국분가를하게됐다. ’64년섣달그믐날쌀한가마니에땅590평을주며‘사랑채로나가라’는선친의엄명에의해분가했다.남들은다음날설쉴준비로바쁠때선생은삽과괭이,쇠스랑을고산장에서사가지고와정월초하룻날부터모두세배를다니는데땅을개간하기시작,방학을이용하여부인과함께동내종산약1천평을개간했다.그곳에고추를갈았더니상상외로고추농사가잘됐다.고추한근팔면쌀이2말이었다.3년동안고추농사가대풍작이었다.돈이벌리자당장학교부지부터샀다. 선생은학생들을가르치기시작하면서부터지금까지하루에4시간이상자본적이없다.새벽에일어나책을보다가어둠이약간벗겨지면산에가서나무를하거나논밭을둘러보고학교에가곤한다.2년째가되면서회의실칸을막아혼자서1학년52명,2학년33명두학년전과목을왔다갔다하며주당72시간까지가르치고또집으로와서12시까지일을해도피곤함을몰랐다. 힘겹게6개校舍신축그리고인내심을요했던중학교인가 학교부지를사기도바쁜데교실도시급했다.’64.12.20, 6개교실을신축하기시작했다.6개교실을짓는데쌀1,200여가마가소요돼빚더미에앉게되었다.어려운상황에서교실을짓다보니일의진행을어렵게만드는생각지도않은여러가지일들이일어났다.공사비문제로경찰서,검찰청,법원등을수없이들락거렸는데그때마다지혜롭게극복하여6개교실을신축하고완공에앞서화산고등공민학교설립인가도받았다.68년엔학교법인인가신청을하였다.6개월만에당시문교부에서는반려사유서한장없이반려가됐다.문교부장관을만나고서얼마나실망하였는지청와대손비서관을만나‘다시는이땅위에학교를세우지않고차라리누에나키우겠다.’는말과‘장관부터생각과행동을바뀌어야이나라가똑바로선다.’는고언을남기고내려왔다.그간겨울방학동안얼마나청와대와교육부를들락거렸는지그곳직원으로부를정도였다.일이성사된것은얼마후국회파동으로권장관이물러나고홍장관이부임이후였다.’69.12.2 학교법인‘華山學園’설립인가에이어’69.12.12 화산중학교인가를받았다.선생은“얼마나기뻤는지아무도모른다.”고당시를술회했다.전국최연소교장이되어20대에인생의뜻을이루었으니만고풍상끝에그즐거움은말로표현할수없었다. 미국학교들과한국최초로자매결연맺어 교실이부족하여’69.5.1 국내최초로자매결연을맺은미오하이오주우드모어중학교와미뉴욕리퍼블고등학교에서보내준2,500불로’71.10 강당을준공했고그강당을막아교실로사용했다.그리고도교실이부족하여’72.11.30 CAC사령관송호림장군을설득하여4개교실을증축하였고,’78.3.1, 12학급증설인가를받았다. ‘중학교의무교육실시’ 및‘사립학교시설비지원’에1등공신 ’69년중학교인가는났으나당시보릿고개를넘던시절인지라국가에서책정한대로수업료를받을수없다보니교사들의월급을월3천원밖에줄수없었다.그건담배값도안됐다.당시초등학교교사들은3만원의월급을받았다.교사들에게하숙비를대줄수없어선생조차아버지의사랑채에살면서옆집방을빌려기숙사로사용하였다.식사는사모님이손수해주었다.농촌의바쁜일손에부부의고생이이만저만이아니었다.소재지사람들은속도모르고하숙비까지챙긴다며욕심도많다고수군거리기까지했다.선생은변명한마디못하고이를타개하기위해서는중학교의무교육밖에없다며’69년부터16년동안줄기차게청와대를쫓아다녔다.그결과,중학교의무교육과사립학교시설비지원,그리고면단위학교부터초중등교사숙직면제등에대해전두환전대통령의재가를얻어냈다.이는화중중학교를위한재가가된셈이다.중학교의무교육은당장돈이없으니화산중,위도중,무풍중을’85년부터5년간시범학교로운영하여점진적으로실시키로하였다.시설문제는개축교실부터시작하기로결론을맺었다.숙직문제는즉석에서이규호장관에게즉시시작하라는지시가있었다.이로써화산중학교는’85년의무교육시범학교가되어교사들의월급이100% 나오고교사들의日宿直이면제되었다.선생의요구대로’90 년면단위,’93년읍단위,’02년전국적으로중학교의무교육이실시됐다.선생의끈질긴요구로‘사립학교시설비지원은’85년맨처음으로전북에4억3천만원이배정되었고,그중선생은8천2백만원을지원받았다.나머지는전주농고앞의집과화월리산을팔아교실을지었다.그때전주복덕방주인들이그돈이면화산동이나서신동땅을1,200평을사고나머지만학교에투자하라며,그말을듣지않으면평생을후회할것이라고했다.선생은“당신네들은자기아들하나가르치기에급급하지만,이돈으로화산중학교에서훌륭한지도자가배출되면한국이달라지고세계가달라진다.”는말을남기고자부담으로18 개교실본관을개축완료했다. 전북도교육위원과의장 ’95년교육위원으로나가라는주위의간곡한권유로출마,완주군의회에서100% 지지와전북도의회에서58명100% 지지로당선됐다.선거사상유례없는두번의100% 찬성에각신문마다기네스북에올라야한다고까지보도했다.그리고다시의장에당선되었다.그때대통령비서실장과국회의원270여명들로부터“어떻게선거에서100%가두번씩이나나오느냐,공산국가에서도그렇게나오지못한다.기네스북에오를일이다.”라는찬사를듣기도했다.의장이되어서는짧은임기에도학생들에게올바른가치관,곧‘신의’를지키는인성교육을확실하게심어주는데노력하였는가하면,도시위주에서농촌위주로,큰학교에서작은학교위주로의평준화교육그리고교육의많은현안들을개선했다.교육위원을끝내고전주중앙여고교장으로부임,한국의위대한여성지도자교육에힘썼다.그때“그동안이학교에입학한것을후회하고있었는데교장선생님의지도자교육에우린활짝웃어요.”라는각학급실장들의말한마디가선생의마음에영원히남아있다.학생들은왜이학교에왔는지몰랐는데이제는목표의식이뚜렷해졌다고한것이다.선생은“겨우10 개월을근무하고화산중학교를살리기위하여떠나는데중앙여자고등학교노인석이사장님을비롯, 김광택교감선생님등전교직원과전교생이교장실에서교문까지양편으로줄을선송별식이눈시울을적시었다.”고술회했다. 폐교에직면한화산중학교를‘계승, 개혁, 창조’의 위대한지도자교육의기치를내걸고명문화산중학교로 21세기급격한정보화사회는농촌의이농현상을가속화시켰다.본교설립당시주변에7개초등학교가있었는데지금은6개초등학교가폐교되고1개교만남아겨우17명이입학하니본교도폐교위기에놓였다.평생사업이헛되어버릴위기에처했으니애타는그마음무엇에비유하리오.선생은“죽기보다더심한고통이었다.”고술회했다.위기를기회로맞는선생의예지가다시한번발했다.“산골의조그만중학교에전국의학생들이몰려들고있다.전북완주군화산면화산중학교.’06년도신입생120명모집에1,200 명이상이면접10대1에경쟁률을기록했다.사방이산으로둘러싸인오지의중학교가이처럼각광받는이유는이학교만의영재교육프로그램과좋은시설때문”이라는내용의기사가’04년1월26일자‘한국일보’에‘미래지도자키우는산골학교’라는제목으로실려있다. 선생은화산중학교를’05년5월1일자로한국최초로자율중학교로승격시켰다.이로써전국의학생들을거주지를옮기지않고전국단위로모집할수있는명문사학으로등장하였다.이러한여건은서울,경기,강원,부산,울산,대전,충남북,전남북,제주등전국에서학생이몰려오도록만들었다.이농현상으로2000년전교생이54명이하로줄었던학생수도360명으로늘어났다.전면민과교육청,교육과학기술부할것없이전국을깜짝놀라게했다.더놀라운것은사제간의두터운신의로기숙사가부족하자본교3회출신임동순(서울광진갑민주당위원장)제자가1동,전주유용수사장이1동(각30 억)300명을수용할수있는기숙사‘문무숙’을신축하여주었다.이로써본교는새역사창조의장이열리게되었는데,이에맞추어약력에나타난바와같이’09년교과부로부터최우수학교로선정되어15 억원을지원받는등日新又日新더욱더발전하는모습을보이고있다. 빛나는화산중학교영원히빛나리 선생은‘계승,개혁, 창조’의지도자교육을펼치며어떠한일을할때에는천지를개벽시키겠다는마음으로하라고가르친다.화산중학교는호연지기를넓히기위하여중국쑤저우(蘇州)청하이(成海)학교,일본쓰시마(對馬) 남양(南陽)중학교,호주세인트필립스학교등과자매결연을맺어방학중에상호교환학습을실시하고있다.그간본교는43회졸업에5519명의졸업생을배출하였고’80년초컴퓨터이름도모르고있을때컴퓨터박사1호국중각씨가본교출신이요,김영만씨는한빛게임으로2000 억의거부가되었고,청와대국중호민원국장,건설의맹주심기주사장,대검검사를거쳐1등박승권변호사,김영환판사(부산지법),전경욱교장,임학순․이철승교수외기라성같은많은동량지재들이쏟아져나오고있으며특히자율학교선정이후배민석군은2학년에한국과학영재학교에합격하고,카이스트에입학하여대통령장학금을받는영광을안았고,그뒤를성윤재학생이이어가고있다.김법창학생은토익955 점으로중학생전국최고점수를획득에이어상산고에들어갔고그뒤를김태영학생이잇고있다.“이런장한모습들이너무나기특하다고만하다.”고술회하는선생은“우리학교의프로그램은한국의미래지도자를육성하고위기에직면한농촌학교도살릴수있는해결책이며사교육비도줄이고조기유학도방지하는일석삼조교육의최첨단산업임을입증하는것이라.”고강조하며“앞으로전설에나오는한국의정사는물론세계의정사를좌지우지할훌륭한지도자양성에최선을다하겠다.”고했다지도자의덕목으로선생은이황이말한‘계승,개혁, 창조’를꼽고있다.선생의교육관이담긴교훈은‘신의,성실,노력’이다. 선생은먼안목을바라보는한인간이기도하다.자고로동서고금을통해농촌을무시하고도외시하는정권은얼마가지못하여망하였다.그래서‘농촌은뿌리요,도시는꽃이다’라며농촌학교살리기운동에앞장서기도했다.(2000.1.25‘전북일보’Opinion참고)선생은“농촌은우리인간생명체의근원이기때문에식물로말하면뿌리에해당된다.뿌리가없으면아름다운꽃을피울수가없다.위정자들은이깊은뜻을감지하고농촌학교와농촌을살릴수있는특별법을하루속히만들어야한다고강조한다.왜우리의선인들은농자는天下之大本이라고하였는가?”를음미할때라고역설했다.선생은지금도밭농사2,000평을짓고있으며작년까지사슴40 여두와오소리50여두를손수먹여그수익까지학교에투자할정도로화산중학교는선생의알파요,오메가다. 명강사가된교장선생님의새마을연수 선생은’71년교장850명이참가한삼청동의교육연수원에서연수를받게됐다.첫시간의강사새마을국장이외국손님관계로펑크를냈다.전주선배교장선생님들의권유로선생이‘어떤교장이될것인가?’라는제목으로특강을했다.그요지는다음과같다.“기존의권위의식을버리고교장실을직원들에게편안한장소로개방함은물론학생들에게언제나열려있는상담소로개방하고,교장선생이직접신입생들에게오리엔테이션에참가,아름다운마음의인성교육도시키고가까워질수있는계기의장도만들어야한다.그결과학생들의변화는물론학교전체의분위기변화를느낄수있는데,그사례들을구체적으로들었다.”이렇게90분의강의를끝내자우레와같은박수가쏟아지면서“우리가헛살았다,생각할점이많다.”는등의자탄이여기저기서흘러나왔다.그리고그다음시간도선생에게강의해달라고원장에게요구했다.강의는예정표가있으므로안된다하자저녁식사를하고강의실을빌려달라고해서오후6시부터강의를했다.1시간예정이었는데새벽3시까지했다.밤엔선생의강의를듣고낮엔조는게그때의연수풍경이었다.일주일간을그렇게하고나자강의를잘들었다는답례로1인당3천원씩쌀9백가마가모아졌다.이강의비를전달과정에서원장이대한민국에서이렇게강의료를많이받은사람이처음이자마지막일것이라고까지격려를했다.그후소문이청와대등여러곳으로퍼져한국은행,서울은행,전북은행등여러곳에서의강의요청으로1천5백명내지2천명이모인가운데90분씩에’70년당시로선적잖은백만원씩을받고강의했다.문선명선생도수안보온천에서고급관리들에게특강을요청하여40분씩3시간을하면강의료로백이십만원을주었다.그때빚이많은선생으로서는큰도움이되었다고한다.선배교장선생님들께서는한결같이인간상록수교장이라고찬사를아끼지않았다. 교육자집안, 시인등짜투리의노래 선생은2000년‘제27회교단문학신인상’을통해등단한늦깎이시인이다.‘信義라는이름에게’외2편이수상작으로선정되었는데‘信義라는이름에게’를실어본다.‘늘푸른솔같은理知보다/온후한그대는/삶의본터에서꿈틀대는힘//그대를/사랑하는사람은/밝은빛으로남고//그대를외면하는일은狼子野心같이/無明의늪에빠지는것//나그대힘에기대어/밝은세상으로나가리/빛으로남으리/더불어살리//가족으로는‘언제어디서나信義를지키고誠實히努力하는사람이되자’라는가훈하에오늘의선생이있기까지묵묵히내조를미덕으로헌신해온현모양처延安李氏采永여사와의사이에4남을두었다.4남그리고자부모두8명이선생까지9명이교육계(대학교수1, 교사6,행정실장1)에몸담고있는보기드문교육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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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경 | 10.03.29 조회:4244
    2009-2010 졸업생 진학 실적
    화산중학교는 한국의 위대한 지도자를 육성하는 명문사학입니다. 전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적성과 특기에 맞는 진로 교육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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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승필 | 09.09.10 조회:1916
    '시사매거진' 9월호에 소개된 화산중학교 기사
    자율화산중학교가 '시사매거진'이 찾은 교육과정 혁신학교로 선정되었습니다. 시사매거진 9월호에서는 본교가 전국 최초로 자율중학교로 선정되어 글로벌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폐교위기를 딛고 일어나 명문학교로 자리매김한 본교의 교육적 특징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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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영자 | 09.08.03 조회:1070
    중국 교육 시찰단 학교 방문
    지난 7월 22일 ~ 23일 중국의 선진학교 시찰단원 20여 명이 본교를 방문하였습니다. 오는 8월 10일에는 중국 소주시 교육 시찰 교장단이 방문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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