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영 여고 가족 봉사단 ‘참여와 베풂’, 그 마음을 소록도에 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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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성민지 | 등록일 | 09.12.22 | 조회수 | 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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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겨울의 중턱에 들어선 지난 12월 20일, 근영여고 가족 봉사단 ‘참여와 베풂’ 2학년 학우들은 국립 소록도 병원을 방문하기 위해 본교 주차장에 모였다. 학우들은 오전 9시 경, 진입로에서 기념촬영 후, 2대의 버스에 승차했다. 이번 봉사활동에는 65명의 학우들과 오희상, 김인규 선생님 등, 9분의 선생님께서 참여하셨다. 학우들이 방문한 소록도는 일제시대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로 수용하던 곳으로 현재는 국립 소록도 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고 한센병 환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섬 전체가 의료시설인 곳이다. 학우들은 정오 쯤, 전라남도 고흥 녹동항에 도착 후,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1시 15분 쯤, 국립 소록도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여 환자들에게 전달할 간식을 들고 국립 소록도 병원으로 향하였다. 준비된 간식을 담은 상자가 무거웠음에도 학우들의 얼굴에서는 힘든 표정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또, 매서운 바닷바람과 긴 진입로에도 불구하고 학우들은 서로 무거운 짐을 들으려는 봉사정신을 보여주었다. 국립 소록도 병원 도착 후, 병원 관계자에게 간식 전달과 기념사진 촬영이 있었다. 이번 소록도 방문에 도움을 주신 가이드분은 과거 한센병 환자로 지금은 완치가 되신 분으로 누구보다도 소록도 주민들의 고통과 소록도의 역사를 잘 아시는 분이셨다. 가이드분은 소록도 안내에 앞서, 진입로에 세워져 있던 추모비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추모비는 일제 광복 직후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다가 사망한 환자들을 모아 화장한 자리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학우들은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돌아가신 환자들에게 경건한 마음을 표하였다. 학우들이 견학한 곳은 소록도 중앙 공원으로 곳곳에 일제 시대 한센병 환자들이 받은 고통을 엿볼 수 있는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먼저 향한 곳은 검시실이다. 검시실은 1918년에 세워진 것으로 한센병 환자들이 사망하면 그 시체를 해부하여 검시했던 곳이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시, 그리고 광복 직후 몇 년간, 소록도에서 여성이 임신을 할 경우 그 여성이 아이를 낳지 못하게 살해해 그 시체를 연구 대상으로 사용하고 뱃속에 있던 태아는 꺼내어 임신 기간에 따라 알코올 병에 담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참혹한 과거사를 듣자 몇몇 학우들은 안타까움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였다. 검시실에서 조금 올라가면 1935년에 세워진 감금실이 있었다. 가이드분께서는 감금실을 ‘인권탄압의 상징, 인간 도살장’이라고 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감금실은 섬을 탈출하려다가 붙잡힌 환자들을 고문하던 장소라고 한다. 감금실은 방마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환자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곳이라고 한다. 감금실에서 죽은 환자들은 다시 검시실로 옮겨져 연구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일제에 의해 이루어진 잔혹한 고문들은 일분인 원장의 단 한 마디 지시에 따라 이루어 졌고 감금실에서 사망한 환자의 수가 너무 많아 아직 그 정확한 수마저 파악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소록도 공원은 정원이 잘 꾸며져 있었는데, 정원수의 대부분이 일본, 중국, 대만, 호주 등지에서 가져온 수입산 나무라고 한다. 일제 강점 시, 환자들은 강제적으로 짓무른 손으로 정원수들을 손질해야만 했다고 한다. 당시 환자들의 한과 땀이 깃들어서 그런지 정원수 중 어느 것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원의 정원석은 모두 완도산 돌이라고 한다. 환자들은 정원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돌을 그들의 썩어 문드러져가는 어깨로 지고 손으로 다듬었다고 한다. 정원석의 내력을 안 학우들은 돌계단 하나하나를 밟을 때도 조심하였으며, 과거 환자들의 고생을 생각하며 돌계단을 밟는 것조차 미안하다고 하였다. 공원 내에는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신 분들을 위한 공적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한센병 환자 3200여명을 환치시켜 고향의 품으로 돌려보낸 벨기에의 의료진들, 오스트리아에서 처녀시절, 소록도에 와서 1962년부터 41년간 소록도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시고 지난 2005년 본국으로 돌아가신 의료진들의 공적비 앞에서 가이드 분께서는 감사의 뜻으로 박수를 청하셨다. 학우들은 진정한 봉사정신에 대해 생각하고 외국인을 위해서 평생을 헌신한 의료진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냈다. 공원을 돌아보는 중간 중간, 가이드분께서는 공원이 만들어진 내력을 말씀해 주셨다. 소록도 공원은 1916년 11월 1일, 일본인들에 의해 착공 되었으며 4년 6개월 동안 환자들의 강제 노동으로 건립이 되었다고 한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은 자신들이 닦은 터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공원 언덕에 오르니 한센병 환자였던 시인 한하운의 시비가 있었다. 가이드분은 한하운 시인에 대한 설명을 하셨고, 시비에 새겨진 한하운 시인의 시 ‘보리피리’를 풀이 해 주시며 당시 소록도 한센병 환자들의 고생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학우들에게 잘 전달 해 주셨다. 시비 뒤쪽에는 소록도 병원 1~4대 원장이었던 수호 원장의 동상이 있었던 자리가 있었다. 그는 일제 시대 한센병 환자 탄압의 장본인으로 동상 자리는 수호 원장의 생일날, 27살의 소록도 공원 원생 이춘상에 의해 살해당한 자리라고 한다. 현재는 한센병 환자들의 자유를 위해 원장을 살해하고 결국 사형에 처해진 이춘상의 동상 건립 운동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학우들은 환자들의 자유를 위해 투쟁한 이춘상에게 박수를 보냈다. 동상은 광복 후, 일본에서 환수해 지금 동상은 남아있지 않았다. 공원 위쪽에는 천주교에서 만든 십자가 공원이 있었다, 십자가 공원은 공원의 모양을 십자가를 본떠 만들어 그렇게 칭한다고 한다. 십자가 공원은 과거 벽돌공장이 있던 자리로 환자들의 강제 노동으로 벽돌을 생산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생산된 벽돌은 서대문 형무소와 소록도 내 여러 건축물을 짓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만든 벽돌로 지어진 건물에서 환자들은 가혹한 인권탄압을 받았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우들은 가이드 분의 인솔에 따라 소록도 초등하교로 이동했다.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과거 소록도에는 초, 중, 고등학교와 의과 대학까지 있었다고 한다. 가이드분께서는 매년 소록도 주민들과 민간인들의 체육대회가 열리니 학우들이 다시 한 번 소록도를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가이드분께서는 학우들과 헤어지기 전 소록도 주민들은 한센병 환자가 아니라 한센병 장애우들 이라며 일반인들의 인식개선과 한센병 장애우들과 일반인들 간의 차별 없는 ‘평등’을 강조하셨다. 가이드분께서는 학우들을 안내하시는 내내 학우들이 추위 속에 고생한다며 학우들을 걱정하시는 등, 따뜻한 마음을 보여주셨다. 학우들은 가이드분과 기념촬영 후, 소록도의 연원과 사진, 생활 물품을 전시하는 전시관을 관람하고 오후 3시 경, 소록도를 떠나 6시 경, 전주에 도착하였다. 금번 소록도 방문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우들이 참여해 주었고, 학우들은 소록도를 방문하는 내내 가이드분의 설명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성숙된 모습을 보였다. 또, 진심으로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이번 소록도 방문에 대해 2학년 6반 임모양은 “소록도에 가기 전에는 한센병과 소록도에 대한 얕은 지식만 있었고, 내심 전염이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감금실과 검시실에서 환자들이 받았던 고통을 알게 되고, 잔인한 인권유린의 역사를 알게 되자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에도 이러한 기회가 있다면 다시 참여하고 싶다.”며 이번 소록도 방문이 뜻 깊은 행사였다고 하였다. 이번 소록도 방문이 학우들에게 진정한 봉사와 한스러웠던 한센병 환자들의 삶에 대해다시 한 번 생각하고 더욱 성숙해 지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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