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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본격적 한.중 교류 시작
작성자 박솔 등록일 08.08.10 조회수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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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태산중학교(6년제)와 7박 8일 일정으로 상호 교류

제29회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 전주근영여자고등학교와 중국 태산 중학교 학생들의 상호 방문 교류가 여름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지난해 본교와 중국 태산 중학교 간 국제교류를 위한 협약을 맺은 후 첫 결실을 맺은 것이다.

상호 방문은 먼저 전주근영여고 학생들이 7월 18일부터 25일까지 중국 태산중학교를 방문하였다. 중국 일정은 주로 중국 실생활 체험을 할 수 있는 홈스테이 형태로 이뤄졌으며 기타 태산 등반, 수업 견학, 태산지역 관광 등으로 꾸며졌다. 이번 체험활동에 참여한 2학년 김민주 학생은 “실제 중국 가정에서 생활해서 중국 가정의 실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며 중국 방문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한편, 중국 태산 중학교 방문단의 한국 방문은 전주근영여고 학생의 답방 형태로 8월 3일부터 10일까지 정해진 일정에 따라 교류 체험학습이 이뤄졌다.

한국에서 일정도 역시, 숙박은 홈스테이 형태로 이뤄지고 있으며 방문단에게 전통문화체험 및 수업 참관, 과학체험, 숲 속 체험 등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이 제공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접한 중국 방문단은 한결 같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며 이번 방문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특히, 중국 방문단 출국 이틀 전 올림픽 개막식 실황 중계를 한․중 청소년들이 공동으로 시청하며 우의들 더욱 도모할 수 있는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되어 이번 상호 방문의 의미를 더했다.

다음은 중국문화체험에 다녀온 2-6 조은아 학우의 소감문이다.

여름방학 시작 첫날인 7월 18일, 여행용가방을 챙겨 들뜬 마음으로 학교로 향했다. 학교 도서관에는 7박 8일간 함께 중국 교류학습에 참여할 근영여고 · 근영중 학생들을 비롯해 여러 선생님들이 계셨다. 건강하고 보람찬 기행이 되기 위해 모두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 촬영을 하고 학교를 나섰다. 비로소 중국으로 가는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버스를 타고 약 4시간이 지난 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중국에 가는 것이 아직 실감나지 않았던 나는 출국수속을 밟을 때에서야 실감이 났다. 8시에 이륙하는 저녁 비행기였기 때문에 성층권에 진입했을 때 창밖으로 마치 환송하는 듯 환히 빛나는 달을 볼 수 있었다. 1시간 반 정도 걸려 도착한 중국 제남 국제공항을 통해 본 중국의 첫 모습은 꽤나 현대적이었다.

곧이어 우리 방문단을 맞이하러 나온 중국 학생들과 선생님을 만나 학교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우리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중국 태산의 바로 아랫자락에 위치한 태산중학교는 우리나라의 중학교 과정과 고등학교 과정을 합쳐놓은 6년 과정의 학교로 전교생이 5000명에 이르는 큰 규모의 학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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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반 쯤 지나서 산동성 태안시에 있는 태산중학교에 도착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중국학교 선생님께서 홈스테이 짝의 이름을 부르셨다. 일주일간 함께하게 될 홈스테이 짝이 누가 될지 다들 궁금해 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보다 키가 약간 큰 여자아이가 내 짝으로 불려졌다. 간단하게 인사를 한 후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렸을 때 나는 10년은 더 되 보이는 5층짜리 아파트 앞에 서 있었다. 계단에 전등이 없어 힘들게 올라간 2층이 내 짝의 집이었고 집은 한눈에 보기에도 매우 작았다. 현관문 바로 앞에는 식탁이 있었고 왼쪽 옆으로는 내 방만한 작은 거실이, 그 옆엔 두개의 방이 있었다. 아저씨께서 그중 큰 방에 트렁크를 놓아주셨고 그 후 몇 시간 동안 짝과 이야기를 했다. 내 짝인 쑨상은 나보다 한살 어린 중학교 4학년생이었고 중국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다른 형제·자매가 없었다. 피곤했던 나는 일찍 침대에 누웠지만 앞으로의 중국생활에 대한 기대와 걱정들 때문에 쉽게 잠들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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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9일. 아침식사로 빵을 먹고 걸어서 15분 거리인 학교까지 갔다. 아침에 친구들을 만나 어젯밤에 뭘 했는지, 짝은 어떤지, 집은 어땠는지 묻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곧 환영식이 있는 소강당으로 이동했고 중국 전통무용과 클라리넷연주에 이어 중국 전통악기 연주, 중국 소수민족의 무용과 스포츠댄스가 이어졌다. 특히 여러 남·여 학생이 함께 추는 중국 전통무용은 내용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정말 독특했다. 환영식이 끝난 후 우리가 준비한 ‘한국과 중국의 화합’을 뜻하는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와 선물을 주고 기념 촬영을 했다. 점심을 먹고 학교에서 영화를 본 후,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태안의 명물인 태산 밑에 자리하고 있는 태산 천지광장을 지나 서예와 그림, 수석들이 많은 문화 광장에 갔다. 중국 국가 행사에 쓰이는 돌들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공수된다고 했다. 다음으로 간 기석시장에서는 돌들의 엄청난 규모에 압도당할 정도였다. 빌딩높이의 돌들이 한 두 개가 아니었고 돌들의 가격도 수 십 억대를 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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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도착한 후 집으로 향했다. 그날 처음 뵌 쑨상의 어머니와 방학 때 마다 함께 머문다는 쑨상의 사촌 남동생과 인사를 나눈 후 함께 해산물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다음날인 7월20일, 셋째 날의 일정은 태산등반이었다. 아침 9시부터 태산등반을 시작했는데 중국 최고의 명산인 태산에 오른다는 생각에 정말 설렜다. 중국 사람이라면 태어나 꼭 한 번 올라봐야 한다는 태산은 해발 1545m 의 중국 민족정신을 상징하며 동으로 동해, 서로는 황하를 끼고 명·청시기의 건축, 회화, 조각으로 유명한 산이다. 태산은 등산로의 대부분이 돌계단으로 되어있는데 그 계단의 폭이 어찌나 좁은지 발뒤꿈치를 계단에 디딜 수 없을 정도였다. 처음엔 날씨도 많이 덥지 않아 쉽게 올랐지만 계속 오르다보니 땀으로 흠뻑 젖게 되었다. 대단한 경사 때문에 뒤를 돌아보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4시간 만에 올라온 곳은 정상이 아니라 태산의 중간지점인 중천문이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한 산행은 더운 날씨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간간이 쉴 때마다 사진을 찍으면 한 장 한 장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계단의 끝은 보이질 않았다. 한참 올라가다 보니 내가 구름 속에 있었고 무척 추울 뿐 아니라 앞도 잘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계단의 경사가 정말 가팔라서 ‘등산보다 하산이 더 어려운 산’이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태산 정상에 다다르니 높은 고도차로 인해서 닭살이 돋을 정도로 추웠다. 모두들 지쳐 힘들게 발걸음을 옮길 때쯤 한 무리의 검은 양복차림을 한 사람들이 보였다. 알고 보니 오세훈 서울시장님이셨고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오전9시부터 오후3시까지 6시간동안의 등반 끝에 정상에 올랐다. 태산에 올랐으니 앞으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등반에 성공한 우리가 자랑스러웠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니 아주머니께서 만두를 만들고 계셨다. 한국에서 냉동만두를 사다 먹을 줄 만 알았지 직접 만두피를 만들고 소를 넣어 만드는걸 보니 정말 신기했다. 저녁식사를 하고 여러 친구들과 번화가에 갔다. 백화점은 한국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한국브랜드 화장품이 한국보다 다섯 배나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7월 21일. 넷째 날에는 태안시를 벗어나 인근 도시에 있는 백파천 공원으로 향했다. 중국 최초의 여류시인이 기거했다는 곳이었다. 그 공원만 보아도 중국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바로 엄청난 규모의 면적 때문이었다. 호수는 물론 동상, 건물까지 어느 하나 작은 것이 없었다. 중국 관광에서 어딜 가든 자세히 볼 겨를도 없이 바삐 발걸음을 옮겨야 했던 이유도 바로 그 넓은 면적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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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다섯째 날에는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가 태안시를 지나가는 날이었다. 내 짝은 물론 많은 학생들이 성화 봉송현장에 자원봉사를 하러 갔기 때문에 다른 중국친구들과 쇼핑도 하고 중국라면도 맛보았다. 중국라면은 한국 라면과 많이 달랐는데 면도 구불거리지 않고 국물도 맵지 않았다. 또 큰 소고기 덩어리가 올려져 있어 매콤한 한국라면과는 전혀 다른 라면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간 중국의 노래방은 시설도 좋고, 한국보다 무척 저렴했다. 하지만 한국 노래는 오래된 노래만 몇 곡 있었을 뿐 대부분이 중국노래였다. 신기한 것은 중국노래 중 상당수의 노래가 한국 곡을 리메이크 한 곡이라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중국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우리 또래의 중국 아이들이 노는 방법을 알 수 있었다. 이 날 만난 아이들 중 한 아이는 한국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서툰 한국어로 인사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한국드라마를 즐겨 본다고 했고 꼭 한번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글을 발견할 때마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7월 23일. 여섯째 날에는 인근 도시인 곡부에 있는 공묘에 갔다. 공묘는 곡부 3공인 공림 · 공부 · 공묘 중 하나로 공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사당으로 사당 중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고 한다. 공묘에서 가이드로부터 공자의 생애와 공자의 사연이 담긴 여러 장소들을 보고 세계적인 성인인 공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공묘는 그 규모가 황성과 비교할 만큼 거대해서 돌아보는데 만 2-3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우리는 공묘에서 소원을 적어두는 빨간 나무패에 소원을 적어 걸어두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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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일곱째 날에는 태안 시내에 있는 명소들을 관광했다. 태산 바로 밑에 있는 태산광장을 둘러보고 태안시청에도 갔다. 태안시청을 정면에서 바라보니 뒤에 자리한 태산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또 진시황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이용되었다던 대묘에도 갔다. 대묘를 끝으로 하루 일정을 마친 후 친구들과 기념품을 사기 위해 팬시점에 갔다. 물건을 계산하는 방법이 가게마다 달랐는데 어떤 곳은 숫자가 쓰여진 팔찌를 나눠줘서 사물함에 살 물건을 담아두도록 했고, 어떤 곳은 물건을 종업원에게 맡기고 카운터에서 계산한 후 다시 물건을 맡긴 종업원에게 물건을 찾아가는 식이었다. 도난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결정을 쉽게 바꾸지 못하고 무엇을 샀는지 기억하기 어렵다는 점이 불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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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5일. 마지막 날 우리 모두는 점심에 송별만찬을 갖고 중국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며칠 후면 다시 볼 얼굴들이었지만 일주일간 함께 한 쑨상의 부모님과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무척이나 그리울 것 같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길에 중국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것들이 생각났다. 한국과 다른 언어와 음식, 문화 등을 체험하면서 처음엔 많이 당황했지만 떠날 즈음에는 모든 것을 중국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나는 중국에서의 일주일간 수 십 년 전 우리나라를 보는 것과 같이 가난한 사람도 보았고 넘치는 부를 소유한 사람도 보았다. 과거와 현재, 가난과 부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중국이었다. 13억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나라 중국. 중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확실히 매력적인 나라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나를 중국에 매료되게 만든 것은 말이 아닌 마음으로 나를 따뜻하게 대해 준 중국인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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