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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달로 간 코미디언 - 아버지 안복남에 대한 부분(수특 미수록분) 및 발표자료
작성자 이미정 등록일 23.05.25 조회수 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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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0월 8일 오후 8시, 이틀 뒤 벌어질 라이트웨이트급 세계 챔피언 전을 앞두고 로스앤젤레스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환승한 한국인 일곱 명이 라스베이거스 매캐런 공항에 도착했다. 그 한국인 일행은 시합을 벌일 권투 선수와 그의 코치 등 체육관 관계자들과 국내 프로모터, 그 권투 선수의 후원자인 모 그룹의 젊은 회장과 그가 데려온, 알이 두꺼운 검은 테 안경을 낀 중년 남자로 구성돼 있었다. 공항에서 현지 코디네이터가 대기시켜놓은 밴을 타고 중심가인 ‘더 스트립 (The Strip)’으로 이동하는 동안, 미국 방문길에 몇 번 카지노를 하기 위해서 라스베이거스를 다녀간 적이 있는 젊은 회장을 제외하고는 다들 라스베이거스가 그런 곳일 줄은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다는 듯 입을 다물고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밤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UC버클리에서 금융공학을 전공하던 유학생이었던 그 현지 코디네이터는 조수석에 앉아 몸을 뒤로 비튼 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마치 다들 이틀 뒤의 비극을 예감하기라도 한다는 듯아 기이할 정도로 숙연하던 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의 역사와 더 스트립의 호텔들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유학생이 라스베이거스에 왔다가 큰돈을 잃어버린 연예인들, 재벌 2세들, 권력자들과 장성들에 대한 소문을 들려주고 나서야 그 얼어붙은 분위기는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흥이 난 유학생은 거짓말을 약간 보태 소문을 과장해서 들려줬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그게 정말인가?”라거나 “저런!” 따위의 추임새를 넣으며 유학생의 노력에 보답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호응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지만, 시합을 앞둔, 그 눈매가 매섭고 하관이 빨던 권투 선수는 회색 후드를 뒤집어쓰고 시트에 등을 바짝 붙인 채 차창 밖의 현란한 조명이 아니라 흐릿한 주황빛 실내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선수의 한 칸 뒷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자 역시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아래쪽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회장이 자신에게 “저 뒤에 있는 사람이 진짜 코미디언인데, 니가 그래 말을 잘하믄 저 사람은 고만 밥 숟가락 놔야겠다”고 말하는 걸 듣고 나서야 유학생은 그가 코미디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제가 조국을 떠나온 지가 오래되어서 유명하신 분을 못 알아뵈었네요. 나중에 사인 좀 부탁드립니다.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라며 유학생이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 코미디언은 그게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도 모르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젊은 회장에게 퉁바리를 맞은 뒤에야 더듬더듬 “안복남이라고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별주부 양반, 라스베이거스에 온께 소감이 어때요? 웃을 일이 아입니꺼? 핫하하.”

젊은 회장이 뚱뚱한 몸을 돌려 그 코미디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코미디언은 창밖을 힐끔 내다보고는 더듬거렸다.

“바, 밝아서 참 좋습니다.”

“밝아서 참 좋습니다. 하하핫.”

정말 웃긴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젊은 회장이 무릎을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라스베가스에 와가꼬 그런 말이 어데 있나? 밝아서 좋습니다. 우리 김 선수 시합하기 전에 긴장 좀 풀게 할라꼬 특별히 여기까지 데려온 양반인데, 달나라까지 갔다 왔다 카민서 우째 코미디가 시차 적응이 좀 덜 되는갑다. 핫하하.”

유학생은 자신의 이야기에 호응하지 않았던 그 두 사람, 이틀 뒤 제가끔 자신의 운명이 뭔지 보게 된 그 권투 선수와 코미디언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뒤,학교로 찾아와 “1982년 10월 10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어요”라고 말했던 젊은 여자에게 “데스 밸리 (Death Valley)를 가보세요. 꼭 가보세요. 그럼 뭔가를 보게 될 겁니다”라고 말할 때까지 말이다.

그 이를 뒤, 시저스 팰리스 호텔에서 벌어진 타이틀 매치의 결과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기억하고 있으니 새삼 여기서 다시 말할 필요는 없겠다. 그 시합은 주말이면 도박을 하기 위해 몇 시간씩 차를 운전해서 라스베이거스를 찾아와 몇 시간이고 카지노를 즐기는 미국인들에게는 다리가 늘씬한 무희들이 펼치는 카니발쇼나 조련사를 등에 태우고 모터보트처럼 물 위를 달리는 돌고래쇼처럼 잠시 머리를 식힐 때 유용한 여홍거리에 불과했다. 그래서 시합은 머리를 식힐 수 있을 정도만 하고 끝내는 게 가장 좋았다. 빨리 경기 결과를 보고 나서 다른 도박을 해야만 했으니까. 1라운드에 도전자가 쓰러진다면 좀 아쉽겠지만, 3라운드 정도면 그럭저럭 봐 줄만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도전자에게는 쉽게 경기를 포기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경기는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졌고, 때리는 챔피언도, 맞는 도전자도, 그 잔인한 경기를 계속 지켜보던 관객들도 모두 지쳐갔다. 경쾌하게 내뻗던 주먹도 점차 그 속도가 줄어들었고, 춤을 추듯 매트 위를 밟아대던 두 다리도 무거워졌다. 10라운드가 넘어가면서부터 남한이라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만 빼놓고는 다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돌고래 쇼처럼 시작된 경기는 점차 악몽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들 도전자가 쓰러지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그리고 14라운드에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도전자는 마침내 링에 쓰러졌다. 이미 탈진한 지 오래된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면서 벌린 입에서 붉게 물든 마우스피스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링을 향해 비추던 그 조명이 도전자가 이생에서 본 마지막 환한 빛이었을 것이다.

그 시합에 돈을 걸었던 사람들이 챙길 수 있었던 배당금은 많지 않았고, 그들도 애당초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말했다시피 그건 쇼에 불과했으니까. 이 말은 그 시합에 돈을 걸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땄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 시합으로 큰돈을 날려버린 사람도 있었다. 이기지 못한다면 죽어서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던 그 선수의 말만 믿고 5천 달러를 도전자에게 걸었던 젊은 회장이 바로 그 드문 케이스였다. 하지만 젊은 회장의 경제적 손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호텔 방으로 돌아온 그는 밀반출해서 들고 나온 돈 5만 달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행 중 자신에게 1백 달러짜리 신권 5백 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김포공항에서 자기 대신에 그 돈을 들고 나온 그 코미디언뿐이었기 때문에 젊은 회장은 사흘 내내 카지노에 처박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그를 찾아 더 스트립에 있는 호텔 카지노를 샅샅이 훑었다.

그 두 가지 일로 유학생은 잠시 앉아 있지도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도전자 측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양 외국 기자들의 인터뷰에 응해야만 했고, 그런 와중에도 젊은 회장의 성화에 못 이겨 5만 달러를 들고 달아난 코미디언의 행방을 찾기 위해 라스베이거스 경찰 당국에 신고해야만 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거금을 딴 사람들의 돈을 가로채 달아나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으므로 경찰들은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익숙했다. 이틀 전 매캐런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들은 그날 밤 뇌사 상태에 빠진 도전자와 함께 다시 비행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갔다. 돈을 잃어버린 젊은 회장 역시 거기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함께 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5만 달러 정도는 카지노에서도 잃을 수도 있는 돈이니 크게 개의치 않지만, 자신을 배신한 것만은 용서할 수 없으니 그 코미디언을 꼭 잡아야겠다고 유학생에게 말했다. 그는 유학생에게 며칠 더 라스베이거스에 머물면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꼭 체크해서 자신에게 보고해달라고 말했다. 만약 그 코미디언이 잡힌다면, 그가 수중에 얼마를 들고 있든 간에 그 절반을 유학생에게 주겠노라고 그는 약속했다. 이미 그 코미디언이 한국에서 들고 온 돈을 카지노에다 쏟아 부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유학생으로서는 젊은 회장의 돈마저 다 날려버리기 전에 코미디언을 잡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코미디언이 훔쳐간 돈만은 도박에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내 밝혀졌다. 다음 날 아침, 유학생은 미국 경찰 두 명과 함께 라스베이거스에서 로스앤젤레스 방향으로 25마일 정도 떨어진 고속도로 옆 사막에 거꾸로 처박힌 렌터카를 보러 갔다. 가는 차 안에서 경찰은 그 렌터카 안에서 발견된 대여 관계 서류를 유학생에게 건네며 전날 경기장에서 쓰러진 한국 권투 선수의 상태에 대해 물었다. 당시 이미 남의 손에 넘어간 한국의 2층 양옥집 주소와 함께 ‘BOK NAM AHN’이라는 이름이 적힌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유학생은 “지금쯤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렌터카는 조슈아 트리 사이에 전복돼 있었다. 그 차의 앞부분은 달의 풍경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황량해 보이는 사막을 향해 있었다. 렌터카에는 5만 달러가 없었으므로 경찰들은 그가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차를 히치하이크해서 라스베이거스를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유학생은 렌터카에서 사막 방향으로 세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안복남 씨가 끼고 있던 안경을 집어 들면서 아마도 히치하이크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유학생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침 햇살을 받아 노랗게 물든 사막을 바라봤다. 차마 경찰들에게 안경을 끼고도 가까운 곳만 겨우 분간하던 그 사람이 사막을 향해 걸어간 게 분명하다고는 말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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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음향자료실에 나란히 앉아서 CD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CD는 그녀가 비디오테이프에서 옮겨놓은 아버지의 목소리들, 예컨대 “지구 연들아, 이제 안녕. 오빠는 달로 간다”라거나 “웃을 일이 아니에요” 같은 우스갯소리로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는 1982년 그 권투 선수와 함께 라스베이거스로 갔던 사람들의 증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몇 번의 부도와 재기를 오가며 사기 전과 8범의 처지로 서울에서 개인택시를 운전하고 있는 ‘젊은’, 하지만 이제는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버린 회장, 아직도 10월 10일이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은 선수를 대신해 생전에 그가 그렇게 좋아하던 쇠갈비를 구워서 억지로 삼킨다는 코치, 유학에서 돌아온 뒤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던 코디네이터 등의 증언이 흘러나왔다. 아버지와 관계된 이야기인 한, 그녀는 그 누구의 목소리도 편집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이런 말 하믄 서운하다고 생각하겠지만서두 당신 아버지는 내 원수다. 그때부터 내 운이 종말을 고했단 말이다’라거나 ‘있었지. 장 회장이 데려왔지. 그게 다지’ 등과 같은 목소리뿐만 아니라 기계류가 작동하면서 내는 잡음,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발걸음, 열렸다가 이내 닫히는 문, 오랫동안 제 혼자서 울리는 전화벨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따금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이 관장과 나는 가만히 앉아서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나 주위의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창에 드리운 블라인드로는 기울어가는 햇살이 노랗게 물들었고, 골목길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이어지다가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다가 끊어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참 고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그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다가 이 관장에게 “불을 꺼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전자식 손목시계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서 “왜? 지금 방 안이 어둡습니까?”라고 이 관장이 내게 되물었다. 시계에 내장된 여자 목소리가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35분입니다”라는 문장을 만들었다. “아니, 지금 불은 켜져 있습니다. 꺼도 괜찮겠느냐고 물었습니다”라고 내가 말했다. “저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라고 이 관장이 대답했다.

나는 일어나 방 안의 불을 꼈다. 아직 빛이 드문드문 남아 있는 성긴 어둠이 방 안에 들어찼다. 목소리들은 와년 전 라스베이거스에서 5만 달러를 들고 사라진 코미디언에 대해 때로는 유창하게, 때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때로는 여전히 분노를 이기지 못해, 때로는 그 일이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듯 더듬더듬 증언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저마다 빛을 발하는 CD플레이어와 앰프와 콘솔의 불빛들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두 눈을 감았다. 두 눈을 감으니 졸리다는 생각이 들 즈음,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가 나왔다. 2006년 10월 8일, 그녀는 차를 한 대 빌려서 혼자서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출발한다고 말했다. 운전석에 혼자 앉은 그녀는 자신이 타고 가는 도로의 번호와 자신이 반드시 지나가야만 하는 도시 이름을 중얼거렸다. 580번을 타고 가다가 5번으로, 다시 베이커즈필드에서 58번으로, 모하비를 거쳐 바스토에서 15번으로. CD에는 버클리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여덟 시간 동안, 그녀가 녹음기를 꼈다가 끄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무덤덤한 그녀의 목소리 사이에서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를, 창을 스쳐가는 바람 소리를,그녀의 기침 소리를 들었다. 나는 쭉 뻗은 길의 좌우로 펼쳐진 사막을, 꿈결처럼 부드럽게 오르내리는 도로의 굴곡을, 열어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공기의 서늘함을 들었다. 나는 어느 날 사막에서 실종된 한 남자의 고독을, 그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 사막을 향해 달려가는 한 여자의 욕망을, 그리고 그 남자와 그 여자가 보게 될 사막의 빛과 어둠, 열기와 서늘함, 고독과 슬픔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녹음기를 꼈다가 켜는 기척이 들렸다. 저 멀리에서 자동차 한 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가온 속도 그대로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자동차 소리가 사라지니 실내는 문득 고독해졌다. 처음과는 약간 다른 종류의 고요가 찾아왔다. 누군가 낮은음으로 휘파람을 불어대는 소리 같기도 하고, 한 5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서 파도가 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코요테가 밤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아주 오랫동안, 지루할 정도로 길게 바람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즈음, 그녀의 목소리가 불쑥 등장하더니 “지금, 보이나요?”라고 물었다. 그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그게 다였고, 15분 가깝게 규칙적으로 마이크를 스쳐가는 바람 소리만 계속 이어지다가 어느 결엔가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우리는 어둠과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CD는 멈춰 있었고 양쪽 스피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한참 있다가 “아무래도”라고 말하며 이 관장이 입을 열었다.

“한 번 더 들어보는 게 좋겠죠?”

“그래야 할 것 같네요. 관장님은 뭔가 보이십니까?”

“그러지 말고 일단 다시 들어봅시다.”

나는 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CD플레이어를 향해 걸어간 뒤, 연주 시간이 표시되는 부분의 숫자를 바라보면서 빨리감기 버튼을 눌렀다.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나는 그녀 혼자서 라스베이거스를 향해 출발하는 부분을 찾아냈다. 그녀는 한 번 더 580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5번으로, 다시 베이커즈필드에서 58번으로, 모하비를 거쳐 바스토에서 15번으로 갈아 탄 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바람 소리가 계속 지루하게 이어진다고 생각할 즈음에 그녀가 등장해 “지금, 보이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둠과 침묵 속에서 밤의 사막, 그리고 전복 사고로 안경을 잃어버린 한 코미디언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이제 시작도 끝도 없이 광활한 사막에 혼자 남게 된 그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마침내 환한 빛의 세계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 보일 때까지. 그가 걸어가는 길의 먼 끝 지평선에서부터 사막의 벌거벗은 윤곽이 밝게 드러날 때까지. 그가 그 밝은 길을 따라 걸어가 마침내 다다르게 될 그 둥근 원이 떠오르게 될 때까지 .

“아, 이건 만월이군요. 맞지요?”

이번에는 눈을 감지도 않은 채, 내가 중얼거렸다. 이 관장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더없이 밝고 환한 보름달을 마주 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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