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장군 묘소 방촌리에 위치한 환봉(環琫:고리봉)이라는 산줄기에 천장군묘라는 무덤이 있는데 그 무덤의 주인공은 천만리(千萬里)라 하는 분이다. 천씨는 본래 영양(潁陽) 천씨 단본이다. 영양은 중국 노나라의 지명인데 영양천 세보에는 그 시조는 명나라 초기의 중신 천암(千巖)이라 하는 분으로, 그 후손은 대대로 이곳 영양에 살았다. 천만리는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천씨들의 중시조로 아호(雅號)를 사암(思庵)이라 하였다.일찍이 중국에서 무과에 급제하여 명나라 조정의 무신을 있다가 선조(宣祖) 25년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 이여송(李如松)취하의 영양사 및 총독장으로 있어 그의 아들 천상(千祥)과 천희(千禧)와 함께 싸움에 참전하여 군량수송 및 그 보급에 만전을 기하여 평양 및 곽산 등지에서 아군이 크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정유재란(1597) 때에는 양호(楊鎬), 마귀(麻貴)등과 함께 세부자가 다시 조선에 나와 직산(稷山), 울산(蔚山)등 여러 곳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명군이 철수할 때 그대로 머물어 조선에 귀하하니 조정에서 그를 화산군(花山君)에 봉하고 또한 훗일에 충장공(忠壯公)이라 시호(諡號)하였다. 숙종때 조정에서 그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대보단을 설치하여 이에 종안하였고 순조때는 고성군 호암서원에 봉안하고 현종때에는 청도군의 황강서원에 각각 봉안하였으며, 고종때에는 문경군의 노양각, 진주의 만첨각, 안동의 동산서원에 각각 봉안하였으며 고종 33년(1896)에는 이곳 금지면에 환봉사를 세워 그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휘하에서 전쟁에 참가했던 천장군은 천사했다고 한다. 풍수지리에 능한 이여송장군이 이곳 고리봉 기슭에 명당을 잡아 안장했는대 이 무덤자리를 풍수지리학에서는 무자 천손지지(無子 天孫之地)라고 했는데 '아들은 없는데 많은 자손들이 태어나는 묘자리'가 된다. 그러고 보면 중국에서 나온 천장군이 이곳조선 땅에 천씨의 손을 퍼뜨린 바로 시조가 되는 것이 아닌가? 아무튼 이곳 환봉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천장군묘의 지형은 아무리 추운 겨울날에도 이곳 무덤 주위에 이르면 마치 따스한 안방에 오는것만 같아 그렇게 세차게 불어오는 눈보라 모진 바람도 잔잔해 지고 고리봉을 향에 등산길에 올라 이곳에 다달으면 쉬어가지 않을 수 없단다. 이곳 한보의 산세가 험하지 않다면 더욱 개발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남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