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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일 한글날을 꿈 꾸다

이름 강예현 등록일 17.08.17 조회수 413

567돌 한글날, 22년 만에 다시 찾은 공휴일이기도 하니 일단은 다른 어떤 해의 한글날보다도 반갑고 뜻 깊은 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글날을 기하여 틀림없이 한글 파괴니 우리말 오염이니 하는 말들이 아주 잠깐, 비 온 뒤 여기저기서 함부로 솟아나는 대나무순처럼 무성하다가 며칠이 지나고 나면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가 될 수도 있으리라는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선 좀 분명히 해 둘 일이 있다. 한글날만 되면 회자되는 표현 가운데 하나인 ‘한글 파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잘못된 말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며칠 전에 실린 한 지방지 기사 내용만 하더라도 다름 아닌 한글 파괴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다음은 그 기사의 일부이다.

‘올해로 567돌을 맞는 한글날, 그동안 우리들은 우리글과 말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다. 특히 통신 기술의 발달로 휴대전화와 인터넷이 보편화 되면서 시작된 한글 파괴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맞춤법 무시는 기본이고, 사전에도 없는 언어들이 일상어로 쓰여지는 세태는 씁쓸하기만 하다.’

글의 내용으로 미루어 ‘한글 파괴’는 맞춤법 오류나 잘못된 어휘 사용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는 말 그대로 맞춤법과 어휘 사용의 오류일 뿐, ‘한글 파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의 문자 한글이, 그것도 인류가 고안해 낸 400여 개 문자 가운데 가장 우수한 문자에 속하는 한글이 파괴될 수 있다는 말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문자보다도 과학적 체계성을 지녔으면서도 익히기도 쉬운 한글이 파괴되다니, 그러한 경우란 네모반듯한 한글이 세모나거나 한쪽 귀퉁이가 어그러졌을 때이거나 우리가 한글을 포기하고 영어 알파벳이나 일본의 가나와 같은 문자를 빌려 쓰는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한글 대신 파괴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밝히고 난 후에야 한글날, 국가 행정이 또는 민간단체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걱정할 만한 일이 적지 않다. 한글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 등 어문규범에 맞지 않는 글들을 비롯하여,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 표준 화법에 어긋나는 호칭이나 인사말, 외계어에 가까운 청소년들의 은어나 유행어,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이나 폭력적인 말들, 이러한 것들이 실은 진정으로 소통될 수 있기를 바라는, 뭔가 좀 반듯하면서도 깊이 있는 국어생활을 바라는 사람들의 기대에 반하는 파괴된 우리말과 글의 정체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과 글의 오염원 또는 파괴의 주범은 청소년들이라며 한글날만 되면 자꾸만 청소년들의 말과 글에만 시비를 거는 분들이 적지 않은데, 실은 어른들의 말과 글이, 그것도 우리의 국가 행정이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은 어느 광역시청 누리집 정보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번 폴리(urban folly) 프로젝트’ 추진, ‘2013 중소기업 FTA전문컨설턴트 수출자문컨설팅 지원’, ‘2013광주미디어아트페스티벌 참여작-시민참여사진 공개 모집’, ‘UCC 광주(젊은 세대 간에 바이럴이 가능한 Fun한 광주 소개 영상)’, ‘1인 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 & 시니어 비즈 플라자 입주자 수시모집 공고’.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시정 소식의 일부인바, 문자 그대로 시의 행정을 일반 시민들에게 알리는 공문서의 내용들이다. 필자가 세종대왕께서 일찍이 매우 어여삐 여기셨던 어린 백성에 해당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의 시정 소식은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지 100% 이해가 되는 것 같지 않으니, 세종대왕께 참 미안하고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쉬운 우리말 대신 이렇게 낯설고 어려운 외국어를 즐겨 쓰는 것은 혹시라도 이렇게 써야 뭔가 새로운 창조적 행정이라고 보는 것은 아닐까 섬뜩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요컨대, 말과 글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일진대 제대로 된 말, 누구에게나 소통 가능하면서도 기분 좋은 말들이 한글날 하루가 아니라 1년 365일, 그 어느 때고 사용될 수 있기를, 그것도 우리의 행정 또는 언론이 앞장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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