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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으로

이름 박별 등록일 14.11.07 조회수 7669
이런저런 이름으로 불리지만 역시 가장 많이 불리는 건 큰애와 작은애의 이름 뒤에 ‘엄마’를 붙인 누구누구의 엄마이다. 몇해 전 소도시의 작은 도서관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직장과 학교에 보내고 온 엄마들을 만났다. 그해는 유독 엄마들의 정체성 찾기가 붐처럼 일어 도서관 안에서도 서로서로 누구 엄마라는 호칭 대신 이름을 불러주자는 약속을 한 듯했다. 누구 엄마로 불리게 되면서 온종일 한 번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날이 많다는 푸념➊ 뒤에 오늘만큼은 아이 이야기 빼고 여자와 한 개인으로서의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는데 이야기 중 누군가 불쑥 아침에 오이가 열렸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마 그 기쁨을 모를 거예요. 아이를 낳는 것 같다니까요.”
잠시 뒤 누구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채 몇분도 되지 않아 우리는 다시 누구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세월호 100일 추모식에서 ‘동혁이 엄마’를 보았다. 안산에서 1박2일 동안 걸어 광화문에 도착한 그녀의 둥근 얼굴은 다른 엄마 아빠들과 같이 검게 그을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는 동영상 속에서 자신을 ‘동혁이 엄마’라고 했다. 학생들의 휴대폰 동영상 속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걱정하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김동혁군이었다. 동혁이 엄마는 “엄마 아빠 사랑해, 내 동생 어떡하지?라고 말한 아이가 바로 제 아이입니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옆에는 오빠가 걱정하던 동생이 같이 서 있었다.
 무대 위에 선 동혁이 엄마는 차돌➋ 같았다. 동영상 속에서도 동혁이 엄마는 길 가는 사람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 그녀 옆의 동영상 속에는 2학년 6반 김동협군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변성기를 거친 티가 남아 있는 목소리로 김동협군은 살고 싶어! 꿈이 있는데! 외쳤다. 침몰 상황을 중계하던 동협군의 영상은 랩을 끝으로 끊어졌다. 동혁이 엄마는 아이들이 남긴 동영상을 봐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엄마로서 그 동영상을 차마 끝까지 볼수 없었다며 울먹였다.
 동혁이 엄마는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듯 마이크를 손으로 잡았다. 하지만 말이 자꾸 끊어졌다. 자신이 길 가는 사람들을 향해 소리치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이토록 많은 군중 앞에 서게 될 줄 몰랐을 것이다. 그녀에게 흘러갔을 지난 100일의 시간. 그어느 때보다도 동혁이 엄마로 살았던 시간. 동영상을 보면서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대체 누가 우리 아이들을 저런 공포의 도가니➌ 속으로 몰아넣었는가. 아이들은 그 끝에서 대체 무엇을 보았을까. 저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너희들이 왜 죽어갔는지 엄마 아빠는 끝까지 밝힐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동혁이 엄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부분보다 힘이 실렸다. 하지만 “보고 싶다, 내 새끼”라고 말하면서 결국 흐느끼고 말았다. 누가 동혁이 엄마를 저 위로 올라가게 했나. 불현듯 동혁이 엄마의 둥근 얼굴 위로 한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들의 영정 사진을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하던 어머니.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을 잃은 뒤에 평생을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많은 엄마 아빠의 삶이 그렇게 한순간에 바뀌었다.
 그쯤 하면 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 애가 고 2예요. 그 애들과 같은 학년이에요, 어떡해요? 발을 동동 구르던 그때로부터 이제 겨우 백여일 지났을 뿐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들만이라도 잊지 않기를…….
 누구 엄마라고 불리는 것이 이렇듯 소중한 것일 줄, 이토록 책임감으로 무거운 건 줄 몰랐다.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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