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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자유로운 시민의 필수 교양

이름 박별 등록일 14.11.07 조회수 7330
세계 수학자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대회는 특히 이란 출신인 마리암 미르자카니가 여성으론 최초로 필즈상을 받게 되어 더 역사적인 자리로 기억될 듯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교육방송>(EBS)에서 개막식을 생중계했다는 점입니다. 학술대회가 지상파로 방송되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좀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수학이라는 학문의 권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고요. 수학 정신은 현대 과학문명의 토대입니다. 물리적인 세상을 거의 완벽하게 기술하는 수학 법칙이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습니다. 수학이 대체 뭐기에 이런 힘이 있는 걸까요? 그리고 이런 게 (수학자가 되지 않을)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수학자들은 수학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수학자가 아닌 저도 학생들한테 늘 같은 얘기를 합니다. 수학이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게 응용수학자들한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겁니다. 응용 대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될 테니까요. 순수수학자들은 어떨까요? 한쪽에선 이런 말을 합니다. “수학적 성과는 언젠가 사용될 것이다. 이를테면 컴퓨터 보안이 가능해진 것도 수학 덕분이다. 응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수학은 수학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다.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하기도 합니다. 수학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수학은 말할 것도 없고, 곧바로든 궁극적으로든 응용될 것이기에 중요한 수학도 보통사람들한테는 그저 구경거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수학은 수학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수학은 자유롭고 유능한 시민이 되는 데 필요한 소양이기도 합니다. 사유방식이자 문화로서 수학은 핵심 교양(Liberal Arts)의 중심축입니다. 연역추론으로서 수학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 가운데 가장 확실한 지식체계입니다. 모호함이 전혀 없게끔 구성된 정교한 언어이기도 합니다. 수학은 엄밀한 개념 정의와 정교한 문장 구성, 정량적 사고와 추상적 사고, 그리고 논리적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사유체계입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인 유클리드가 위대한 건, 그가 수많은 기하학적 명제들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을 단 다섯개의 공리에서 연역적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명제들은 지금도 대부분 참입니다. 평평한 추상적 공간을 전제로 한다면 말입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지식 가운데 이처럼 반증되지 않고 축적되는 건 수학뿐입니다. 물론 완전한 확실성은 수학에서도 실현할 수 없는 이상입니다. 놀랍게도 수학자들은 그 실현 불가능성마저 증명해냈습니다. 증명 불가능성을 증명하거나 예측 불가능성을 예측하는 건 수학과 과학의 위대한 성취입니다.
 어떤 이에게 물고기를 한 마리 잡아주면, 그는 그걸로 하루를 버틸 겁니다. 하지만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주면, 그 능력으로 평생을 살 수 있습니다. 낚시법에 해당하는 게 바로 학습능력이고, 수학적 사유는 그 바탕입니다. 그런데 우리 수학교육은 안타깝게도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를 학생들에게 강제로 먹이는 식입니다. 생각하는 훈련 대신 반복 작업을 강요합니다. 반(反)수학적입니다. 그래도 한국인 필즈상 수상자는 나올 수 있습니다. 구조적인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는 천재는 있을 수 있으니까요.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한국이 이른바 수포자(수학포기자)의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심각합니다. 수학은 자유로운 시민의 필수 교양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수학은 권위에 맹종하지 않습니다. 엄정한 논리가 곧 권위입니다. 지금 필즈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윤태웅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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