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무탈한가요?(오찬호) / 독서 2학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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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송수원 | 등록일 | 22.01.03 | 조회수 | 42 |
이 책은 가장 먼저 환경문제에 대해 다룬다. 내가 배우는 지구과학에서는 지구 온난화가 한 소단원일 정도로 매우 심도있게 다뤄지고 있고 다양한 수행평가의 주제로 지구의 환경파괴를 선정해 조사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껏 내가 조사한 내용들이 그렇듯 기온과 강수량 변화의 추이, 증가하는 온실가스와 기상이변 등의 내용을 쉽게 떠올리며 경각심을 가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이 책은 환경 앞에서 ‘평등’이라는 단어를 외쳤다. 기후변화 발생 빈도수의 증가에 대한 자료 대신 기후변화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가 소득 하위층에서 상위층보다 5배 높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빈곤층 거주 지역에서의 폭염사에 대해서는 일종의 사이클을 제시했는데 이는 매우 놀라웠다. 일단 빈곤층은 우리가 흔히 알듯 범죄율이 높다. 이는 가난하면 범죄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범죄에 쉽게 노출됨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빈곤층 사람들은 창문을 열지 못하고 뜨겁게 달궈진 방 안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이 책에 나온대로 나는 전 세계에서 기상이변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 규모에 대한 기사는 자세히 읽고 심각성을 인지했으나 우리나라에서 폭염으로 사망한 독거 노인의 기사는 가볍게 지나치며 취약계층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이슈정도로 취급했다. 나는 집에서 에어컨을 쐬면서 조금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에어컨 앞에서 정교하지 않은 짧막한 기사를 보면서 왜 폭염때문에 어떤 사람은 죽고 나는 살아있는걸까. 지금 무슨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걸까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책은 세번째로 교육에 대해 다룬다. 교육에 대해 내가 가장 심도있는 고민을 하는 때는 바로 시험이 끝났을 때다. 한번은 단답형을 다 밀려 적어 오답처리된 시험지를 앞에 두고 한참을 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시험은 과연 내 실력을 나타낼 수 있는가?’ 누구는 글자를 잘 읽고 누구는 글자를 읽지 못했다. 누구는 시험 전에 그 단어를 까먹었고 누구는 시험 후에 까먹었다. 이것이 우리가 시험을 통해 평가하고자 하는 개인이 노력한 양이나 실력에 정확히 비례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이것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분명 지금의 학력주의와 시험제도는 장점이 많기에 채택되었을 것이다. 점수는 개인의 힘으로 올릴 수 있는 요소가 많고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나기에 등수를 매기거나 분류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듯 지금 우리가 보는 시험은 장점은 가질 수 있으나 결코 공정할 수는 없다. 정시도 수시도 둘 다 공정하지 않다. 키워드만 언급해도 우리 모두는 불공정이 발생하는 과정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사회적 격차와 부모님의 재력에 따른 출발선의 차이, 개개인의 성향 및 흥미의 차이, 개개인에게 잘 맞는 평가 방식의 차이 등이다. 내가 가끔 이런 생각을 표출하면 매번 들려오는 말이 있다. “너 이번 시험을 위해 다른 애들보다 열심히 노력하긴 했니?”, “더이상 핑계대지마.” 등의 말이다. 차별적인 환경에 속에서 누군가는 높은 점수를 얻고 그 사람은 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 세상의 불평등과 모두가 전투적인 목표의식을 가져야 함에 적극 동의한다. 교육 환경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잘못된 사회구조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사람들은 개인의 잘못이라며 탓한다. 완벽하게 공정한 시험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공정함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책을 읽으며 몇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먼저 상대평가는 사라져야 한다. 배운 지식을 얼마나 잘 습득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 시험이다. 누가 누구보다 1점이라도 높은 점수를 얻었는지 확인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또한 다양한 개인을 배려하는 지금보다 더 다채로운 평가방식이 생겨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중요하게 말하듯, 공부의 결과가 빈부의 차이를 정당화 해서는 안되고 사람의 우등함과 열등함을 판가름지어서도 안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러한 인식이 부족하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인 것 같다. 네번째로 이 책은 정상가족에 대해 다룬다. 최근에 문학과 매체 시간에 시나리오의 특성을 알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라는 영화를 봤다. 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치매인 시어머니와 무뚝뚝한 의사 남편, 가족에 무관심한 딸과 아들을 사랑으로 감싸는 엄마가 자궁암 말기로 가족의 곁을 떠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간 엄마가 죽을 때 나는 소리없이 눈물을 펑펑 흘렸고 엄마가 떠나고 난 뒤 딸이 가족을 위해 아침을 만들고 그 모습을 죽은 엄마가 옆에 앉아 바라보는 장면에서도 계속 울었다. 한바탕 울고나니 문득 이 책의 이 부분이 떠올랐다. 어쩌면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가족에 대한 여성의 희생과 가족 내에서 구성원의 역할이 정해져 있음을 자연스럽게 정당화 할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우리나라는 끈끈하고 화목한 가정의 이미지를 생활 속에서 강조하여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가족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도록 돕는다. 이러한 인식은 이 책에도 나와 있듯 법이 가족끼리의 굳건한 연결을 보장하도록 했다. 가족이라는 단어에 정상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미혼모 가정과 동성 결혼을 통한 가정 모두 가족이며 우리에게는 이들을 비난할 권리가 없다. 가족 내에서도 정해진 역할과 의무는 없다. 엄마는 엄마답게, 아빠는 아빠답게, 딸은 딸답게, 아들은 아들답게 행동하라는 말은 듣고싶지 않다. 다섯번째로 이 책은 동물의 권리에 대해 다룬다. 나는 식용개에 반대한다. 한번은 보신탕을 사온 아빠와 첨예하게 대립했던 적이 있다. 나는 동물 권리에 대해 말하며 아빠에게 다음부터는 보신탕을 사오지 말라고 했다. 그러자 아빠는 보신탕은 우리나라의 식문화일 뿐이며 식용 개의 도살을 문제 삼으면 너가 오늘 먹은 소,돼지,닭의 도살은 왜 당연시 여기냐고 말했다.나는 아빠의 이 말에 할말을 잃었다. 내가 그날 먹은 수많은 동물들의 도살에 대해 난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 자신이 모순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듯 이러한 주장은 동물의 권리에 대한 논의를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다. 동물의 복지를 위한다고 해서 어떤 동물에게도 손끝 하나 대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니다. 소,닭,돼지는 되고 개만 안된다는 말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동물을 대하고 가축을 다루는 방식이 더 나아질 수 없는지 고민하자는 거다. 이 책에서 말하는 동물의 5대 자유 지침은 마치 옛날 인간이 자유의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혁명을 일으켰을 때 요구했을만한 내용이다. ‘허기와 갈증에서의 자유, 쉴 수 있는 자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등이다. 인간과 달리 동물은 말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처럼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는 동물에 대해 우리가 원했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현재 각종 분야에서 동물은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이용당해왔다. 이 책은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생명체를 대하는 예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듯이 동물 실험은 칩 위에 배양한 줄기세포 등을 이용하여 대체해야 한다. 동물을 사육할 때에는 넓은 공간과 ‘편안하게 소가 죽을 수 있는 시설’과 같이 조금이라도 동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시설을 보장해야 한다. 또한 그저 한 개체의 즐거움을 위해 다른 개체의 자유를 빼앗아 우리 안에 가둬놓는 ‘동물원’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동물은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쉰다. 사실 이들을 억압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인간이 동물을 이용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들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여덟번째로 이 책은 노동에 대해 다룬다. 한번은 아빠가 대학생 시절에 급히 돈이 필요하여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들려주었다. 일하고 있는 아빠를 스쳐 지나가며 한 아주머니가 아들에게 “너 공부 안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빠는 만약 이 말을 실제 건설 노동자가 들었다면 어떤 감정을 느꼈을지 상상해 보았다고 말하셨다. 아빠의 이야기는 굉장히 와닿았다. 직업의 귀천에 대한 인식이 나의 가족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로 팽배해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직업은 사회 유지에 각각의 방법으로 기여하고 있다. 이는 특정 직업이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개인이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다른데 누군가의 삶은 존경받고 누군가의 삶은 기피의 대상이 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느낀 부분이 있다.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타인에게 나를 소개할 때 나는 내 자신이 도전하기를 좋아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왔던 것 같다. ‘도전’이라는 단어를 내가 얼마나 긍정적으로 여겼으며 추구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도전적인 삶이 공통 임무가 아니라고 말한다. 좋은 사회란 평범하게 살아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는 사회라고 말한다. 어쩌면 나는 평범하게 살려는 사람들의 삶의 가치에 대해 낮게 평가해온 것일수도 있다. 좀 더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면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데에는 분명 나 스스로의 잘못된 고정관념의 영향도 있지만 사회에서 받은 영향도 컸던 것 같다.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항상 도전하라고 했고 학교에서는 다른 친구들보다 특별한 결과물을 만들었을 때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사회 구조가 평범한 노동자들의 삶을 폄훼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노동자로서 존엄하게 살 권리를 우리나라의 교육은 체계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해서 참 많은 것들은 배워왔던 것 같다. 통합사회 시간에는 청소년들의 근로 십계명 등 우리가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자세히 배웠고 학교에서는 따로 강사분이 오셔서 ‘근로’라는 단어의 문제점과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노동권에 대해서 정말 자세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정치와법 시간이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들을 하나하나 강조하시며 나중에 세상을 살아갈 때 꼭 필요한 지식을 배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셨다. 그러나 내가 배우지 못한 것이 있다. 노동자들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지 않는 ‘도태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다. 오히려 나는 지금 도전하고 기회를 잡고 죽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 사람이 된다고 교육받았던 것 같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한다’, ‘지금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치킨을 시키기보다 배달한다.’ 반 앞에 걸어놓을 학급 목표를 정할 때에도 흔히 고려됐던 기발한 공부 자극 문구들이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든 노동자들은 동일하게 존중받아야 한다. 앞으로 유망한 직종을 소개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 다른 직업을 깎아 내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지금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와 건축물을 짓는 노동자를 귀한 일을 하는 사람과 천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그릇된 인식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아홉번째로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다룬다. 중학생 때 한 남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너 페미야?” 나는 이 질문을 받을 때 그 학생이 지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페미니즘은 나쁜 것인가? 엠마왓슨은 UN연설에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규정한다. 확답을 내리자면 페미니즘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이는 페미니즘의 정의만 정확히 알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것으로 여성을 여성 자체가 아니라 결함 있는 성으로 간주함으로써 야기되는 여성 문제에 주목하면서 올바른 전망을 제시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말한다. 페미니즘은 남녀의 차이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과정을 ‘젠더’라고 표현한다. 페미니즘이 중시하는 것이 생물학적 성이 아닌 사회적 성임을 보여준다. 가끔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말을 하면 이런 말을 들었다. ‘남성의 권리도 침해받고 있다’ 나는 실제로 남성이 사회적 성으로 인해 받는 차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성이 차별받는 것은 그 자체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문제이지 페미니즘에 반대하기 위한 근거로 쓰일 수는 없다. 페미니즘은 존중받아야 하는 사상으로 간주되는 수많은 이론들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받아야 한다. 다른 이론들의 이름을 말할 때와는 달리 페미니즘은 말만 꺼내려고 하면 굉장히 조심스럽고 예민한 주제로 여겨진다. 왜일까? 지식백과에 들어가 페미니즘의 정의나 목적만 읽어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론임을 알 수 있는데 왜 우리 사회는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는걸까? 왜 지금 이렇게 현대화된 사회에서 여성을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야 하는 주제가 되었는가? 페미니즘을 부정적이고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일을 멈춰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기 전에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 사회는 목적에 맞는, 올바른 페미니즘을 전개해 나가기 위한 연구와 고민을 지속해야 한다. 열두번째로 이 책은 종교에 대해 다룬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종교를 이런 방식으로 바라볼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책은 종교가 그릇된 세상에 불만을 가지는 것을 단념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체벌을 가한 교사에 대해 저항하기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따라 ‘그분들 덕택에 폭력에 반대하게 되었으니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며 선생님들을 미워하기보다 순응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해 엄마와 이야기를 해 보았는데 엄마는 이 말씀을 다르게 이해했다고 말하셨다. 이 말을 현실 문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 ‘사랑’을 무조건적인 인정과 순응, 그 사람을 수용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그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려는 노력, 그 사람에 대한 관심,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이해하면 더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다고 말하셨다. 이렇게 한 성경구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듣고 내가 깨달은 것은 올바른 종교의 중요성이다. 종교는 우리에게 일종의 가르침을 주려고 한다. 나도 가끔씩 성경을 읽는 것을 듣다보면 남녀를 차별하거나 폭력을 정당화 하는 등의 시대착오적인 요소들을 발견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구절을 현재의 시대상황에 맞게 재해석하려는 노력을 한다. 종교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방식은 개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성경 구절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현실에 순응할 수 있고 선한 일을 할 수 있고 폭력과 차별을 정당화 할수도 있고 다른 잘못된 해석을 바탕으로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종교를 현실 문제에서 회피하기 위한 탈출구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종교가 모든 경우에 사람들을 잘못된 사회구조에 순응하게 만든다고 볼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종교가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며 올바른 종교에 대한 생각과 종교가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사회와 개인의 고찰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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