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인 이야기 40] 남성이 낳은 기부왕 - 정문술 동문님 ?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의 시대이고, 이 시대인들의 가장 절실하고 공통된 화두는 생명과 건강입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 기반한 생명과학 연구가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피 한 방울로 6대 암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되었다는 뉴스도 벌써 구문(舊聞)이 되었지요. 앞으로 인공지능과 바이오(Bio)의 융합으로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혁신적인 기술들이 우리를 계속 놀라게 할 것이고,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이 이끄는 바이오혁명 속에서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부터 일찌감치 이러한 인공지능의 미래를 꿰뚫어 보면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바이오테크 분야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통찰력 있는 선구자가 한 분 계시지요. 바로 자랑스러운 남성인 정문술 동문님(고9회)이십니다.
정 선배님은 193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모교와 원광대학교 동양철학과를 졸업한 후, 육군으로 복무 중 능력을 인정받아 제대와 동시에 중앙정보부에 5급 공무원으로 특채되어 18년간 근무하셨습니다. 그러나 신군부 등장으로 하루아침에 공직에서 쫓겨난 후 퇴직금으로 금형업체를 인수했다가 금세 실패하고 빚더미에 올라 자살의 문턱까지 간 끝에, 선배님은 기술개발만이 살 길이라 믿고 1983년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신기술 분야였던 반도체 제조장비업체인 '미래산업'을 창업하셨지요. 그리고 온갖 고난과 시련을 딛고 1989년 반도체 검사장비인 메모리 테스트 핸들러의 국산화에 성공하고, 1999년에는 선진국들이 독점했던 전자제품 제조장비인 SMD마운터의 개발에도 성공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선배님은 오늘날까지도 '벤처업계의 대부'로 통합니다. 그런데 2000년 국내 최초로 미래산업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키면서 그야말로 '무섭게 잘 나가던' 선배님은 2001년 1월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셨습니다. “착한 기업을 만들어 달라”는 단 한마디를 남기고, 경영권을 세습하지도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신 것이지요. 능력 있는 직원이라면 누구나 미래산업의 최고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그의 '낭만 경영'의 철학을 그대로 실천하신 것이고, 2세의 경영권 승계가 뿌리 깊은 관행인 우리 기업계에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정 선배님은 사회가 길러준 인재와 사회가 조달해준 인프라로 기업을 경영하여 일구게 된 부(富)는 사회로 마땅히 돌려주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대로 아낌없는 기부를 실천하셨습니다. 은퇴한 해인 2001년 미래산업의 보유 주식을 처분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300억 원을 기부하셨지요. 조건은 단지 생명과학과 정보기술을 융합하여 학제 간 연구를 할 수 있는 첨단학과를 신설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KAIST는 선배님의 뜻에 따라 이 기부금으로 ‘바이오및뇌공학과’를 신설하고, 바이오테크 연구동인 11층 규모의 최첨단 ‘정문술 빌딩’을 신축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선배님은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2014년에 남은 주식마저 처분해 추가로 215억 원을 또 기부하셨습니다. 역시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뇌 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데 써달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 기부금 약정식에서 선배님은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하루에도 12번씩 마음이 변하더라”며 “나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히셨지요. KAIST는 이 기부금으로 ‘제2정문술 빌딩’을 신축하고 바이오및뇌공학과에 ‘뇌 인지과학’ 프로그램을 신설했으며,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을 독립적으로 육성 발전시켰습니다.
정 선배님은 기업 경영을 하면서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연고주의나 인맥주의를 철저히 배격하셨습니다. 그래서 혈연, 지연은 물론이고 학연도 일체 챙기지 않고 오로지 능력 위주의 정도(正道) 경영을 추구하셨습니다. 그런 열린 사고 때문에 벤처인으로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고, 그런 확고한 소신 때문에 평소 모교 동문님들과의 교류도 자제해 오신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솔직히 이런 선배님을 향해 아쉬운 속내를 토로하는 동문님들도 없지 않았지요. 그러나 선배님은 동문사회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를 밝혀주신 큰 별이고, 남성의 명예를 드높이고 남성인들에게 자긍심을 안겨주신 고마운 분입니다. 모든 동문님들이 선배님을 마음깊이 흠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 시대의 기부왕이요, 온 기업인의 표상인 선배님,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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