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생각하면 옷깃이 여미어 지고,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黃金百萬兩不如一敎子(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황금 백만냥이 있더라도 자식하나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는 글과 안중근 의사의 초상을 각하여 제1회 대한민국 안중근 의사 서예대전 서각부문에서 특선<오른쪽 사진>의 영예를 안은 염영선 (55. 강호항공고 행정실장) 서각가는 안 의사에 대한 숭모의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 대회는 안중근의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과 평화사상을 서예를 통해 국내외에 선양하고 의거 10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7개부문(전서, 예서, 해서, 행초서, 한글, 문인화, 서각)에 걸쳐 공모한 결과 모두 611점이 출품됐다.
그가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서재는 연장과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 빼곡하게집 안을 채우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서 작가의 서각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직장에 있는 작업장에서는 원목을 자르고 대패로 미는 등 목공작업을 해서 집으로 가져와 각 하는 작업을 한다. 아파트 1층이라 조금 다행이지만 2층 이웃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했지만 작업 중에 나는 소리 때문에 이웃들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안중근 의사를 존경한다는 작가는 곳곳에 안 의사의 글귀가 서각 된 작품들이 많았고, 작업실 안에 백범 김구 선생과 안 의사의 초상이 새겨진 작품에서 작가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었다. 작가의 서각활동 마지막 바람은 안 의사가 여순감옥에서 남긴 유묵 전체를 서각해 병풍으로 만들어 가보로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서각의 시작은 가산 최영근 서예가가 고창에 내려와 살 때 서예를 배우다 그분이 하는 서각을 보고 단숨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가산 선생에게 松千(송천)이란 호를 받고 그후 혼자서 서각공모전과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보고 느끼며 체득한 것이 지금 서각작가에 오르게 한 밑바탕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2005년 제1회 대한민국서각미술대전에서 안중근 의사의 글(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안위노심초사)로 특선을 차지한 바 있다. 염 작가는 “서각이란 단순히 나무판에 칼 새김질이 아니라 판각을 위한 나무를 고르는 안목, 판의 재질과 공구 다루는 법, 색칠하는 기법과 색채의 조화, 소재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힘, 작품의 주제를 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창조적이고 조화로운 발상 등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지며 미술 장르를 종합한 예술의 결정판”이라고 했다.
서각에 입문한지 2년 만에 특선을 수상한 이후 2007년 제27회 대한민국미술대전서각부문 특선을 수상. 지금까지 각종 대회에서 특선 5번, 입선 2번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낮에는 학교 행정실에서 밤에는 작업실에서 서각작가로, 그의 말을 빌리면 “서각에 미쳤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내조자로 남편의 작업을 묵묵히 바라보며 후원하는 동갑내기 부인 박효순 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