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교육청, 24일 IB 성장 토크콘서트...1기 졸업생, IB 교사 소감 밝혀 “비경쟁 문화 속 친구 존중하고, 치열하게 스스로 성장” 입 모아 강조
“대학에 입학해서 다니고 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학교에게 선생님에게 친구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고등학교를 다녔어요.”
누군가에게 고3 시기, 고교 생활 3년은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제주 표선고등학교에서 IB 과정을 배우고 졸업한 5명은 정반대로 추억한다.
옆자리 친구들을 경쟁상대가 아닌 존중하고 함께 협력하는 존재로 대하면서, 자신이 정한 학습 주제를 치열하게 탐구·연구하고 실험하는 경험은 스스로를 ‘성장’시켰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런 놀라운 소감이 공유된 자리는 제주도교육청이 23일 제주썬호텔에서 개최한 ‘2024 IB 성장 토크 콘서트’이다.
IB는 국제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프로그램의 약자다. 스위스 제네바에 설리된 비영리 교육재단인 국제 바칼로레아에서 1968년부터 운영하는 국제 공인 교육프로그램이다. 2023년 10월 기준으로, 전 세계 159개국·5730개 이상의 학교에서 운영 중이다. 미국, 일본, 에콰도르 등에서는 공교육 발전을 위해 도입했다.
IB는 수능에 초점이 맞춘 현재 한국 공교육 체계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학생들은 다섯 가지 학습 역량(ATL, Approaches to Learning)을 기준으로 교육과정에 참여한다. ▲사고 기능 ▲의사소통기능 ▲대인관계기능 ▲자기관리기능 ▲조사기능 등이다.
IB 고등학교 과정(DP, Diploma Programme)은 6개 교과군과 3개 핵심과정으로 이뤄져 있다. 6개 교과는 ▲언어와 문학 ▲언어습득 ▲개인과 사회 ▲과학 ▲수학 ▲예술이다. 3개 핵심과정은 ▲지식이론 ▲소논문 ▲창의, 활동, 봉사이다.
IB 고등학교 과정을 배우는 학생들은 프리젠테이션, 프로젝트, 보고서, 실습, 탐구활동으로 내부평가를 하고, 서술형·논술형 외부평가도 병행한다. 상당수 대학 진학은 수능이 아닌 학생부종합전형을 비롯한 수시를 선택한다.
제주는 표선면, 성산읍, 원도심 등에 위치한 초등학교·중학교에서 IB 과정을 도입했으며 고등학교는 표선고가 유일하다.
3년간 IB 교육과정을 배운 학생을 처음 배출한 2024학년도 대입 수시전형에서 표선고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대 등 서울 지역 상위권 대학에 10여명이 진학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에도 각 2명씩 합격했다. 해외 대학도 Soka University of America와 도쿄농업대학교에 각 1명 씩 진학했다. 제주대학교에는 18명 진학했다.
이날 토크 콘서트는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는 교사의 성장, 2부는 학생의 성장이다. 1부는 올해 7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IB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여한 제주 IB 학교 교사들이 참가 소감을 들려줬다. 2부는 표선고에서 전 학년을 IB 과정으로 배우고 올해 졸업과 함께 대학 신입생이 된 ‘표선고 DP 1기’ 5명이 발표했다.
토크 콘서트에 모인 졸업생과 교사의 소감이 전부를 대변한다고 볼 순 없지만, 참가자들은 IB 교육 과정이 자신을 성장시킨다고 강조했다.
졸업생들은 표선고를 다니면서 무엇을 배우고 얻었는지, 그 배움이 대학과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도움이 될지를 공유했다.
발표자로 나선 졸업생은 부지우(국민대 국어국문학과), 한은경(홍익대 예술학과), 윤기찬(가천대 바이오로직스 학과), 이채원(한국에너지공과대 에너지학부), 오주형(명지대 행정학과) 씨다.
학생 스스로 선택하는 주도성, 주제에 대해 파고드는 학습 방식, 화목한 교실 분위기 등 표선고 DP 1기 졸업생이 되돌아본 학교생활은 기성세대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한국 고등학교 생활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국민대 국어국문학과 부지우 씨는 “IB 교육은 답을 누가 알려주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찾고 작성하고 답을 유도하는 과정이다. 그 속에서 느낀 희열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보가 아닌 지식으로 다가온다”며 “3년 간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다. 다른 표선고 졸업생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장했다고 믿기에, 어떤 대학에 갔는지로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홍익대 예술학과 한은경 씨는 “일반고에서 역사를 배울 때는 사실을 나열하고 단선적인 인과관계를 강조하지만, 그 역사가 일상에서 어떤 통찰을 남기는 점까지 배우기에는 부족하다”라며 “IB 교육은 학생이 역사가적인 사고를 가지라고 주문한다. 전문 서적, 논문, 연설 자료 등 국내외 참고 문헌을 직접 찾고 가치와 한계를 판단한다.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탐구 주제에 대해 근거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각자가 탐구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자부심과 성취감도 생긴다”고 설명했다.
한은경 씨는 예술 과목 가운데 ‘비주얼아트’ 과목을 인상 깊게 꼽았다. 비주얼아트 과목은 영어로 평가를 진행하는데 학생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야 한다. 한은경 씨는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보니 대학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이 표선고에서 배운 비주얼아트 과목 프로세스 포트폴리오와 똑같았다. 실질적인 대입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자신이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면 표선고에서 TOK(지식이론) 과목을 배워보길 추천한다. 궁금한 것이 있어서 알아볼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고, 신뢰성을 담보하고, 어떻게 지식을 발전시킬지 고민하는 과목”이라며 “고등학교 시절에 글 쓰는 방식을 익히다보니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학업적으로 소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표선고는 나의 관점을 존중하고 그것을 깊게 탐구해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지식에 목마르고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에게 진학하기를 추천한다”고 강조했다.
가천대 바이오로직스 학과 윤기찬 씨는 “고등학교 시절 동안 내 옆 학생을 경쟁 상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함께 잘하려 노력하는 동료로 생각했다. 내 지식을 남과 나누면서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분위기는 절대평가의 장점으로 여겨진다. 졸업 이후에도 인간 관계에 대한 가치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피력했다.
덧붙여 “표선고에서 화학 과목을 수강하면서 실험을 정말 많이 경험했다. 선생님에게 ‘과학실 지박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실험실에 오래 있으면서 주제 선정, 실험 구성, 결과 도출, 결과 발전, 보고서 작성까지 직접 진행했다”며 “덕분에 대학에 만난 일반고 출신 학생들보다 훨씬 빠르게 적응했다”고 강조했다.
윤기찬 씨는 “교육은 양동이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불을 지피는 것이라는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 내가 표선고에서 경험한 IB는 잠재력이라는 내 안의 불을 지펴준 교육이었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한국에너지공과대 에너지학부 이채원 씨는 “기찬이가 1층 과학실 지박령이었다면, 나는 2층 생명과학실 지박령이었다”며 “IB 공부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지식을 습득하지 않는 탐구식이기에 가능했다. 만약 내가 하루 종일 모의고사 풀이에 투자한 일반고 학생이었다면 실험과 연구 경험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도적인 실험 경험은 대입용 자기소개서 작성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채원 씨는 “중학생 까지만 해도 나는 틀린 시험 문제에도 무척 괴로워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표선고에서는 내가 아는 것을 평가받는 시스템이라 행복한 경험을 가졌다. IB DP 1기였기에 더 불안했고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기숙사에 친구들과 모여서 새벽 넘게 우리 학교에 대해 이야기했던 시간은, 내가 미래에 멋진 어른이 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확실한다”고 밝혔다.
명지대 행정학과 오주형 씨는 “중학교 시절, 표선고에 대한 주변의 부정적인 평가와 만류가 심했다. 하지만 내가 진학하고 싶다는 확실한 마음에 선택했다”며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어떤 사안에 대해 정보를 검색하는 것을 뛰어넘어, 내가 문제를 발견하고 다양한 책과 논문, 자료로 나의 활동을 성찰했다. 그리고 비경쟁적인 학교 문화는 내 의견이 수용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동시에 많은 어른들이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성장했다고 느낀다. 덕분에 멋진 행정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도 가지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오주형 씨는 “표선고 학생들은 각자의 이유로 학교에 왔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표선고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 좋은 문화가 있는 학교라고 생각한다”는 모교에 대한 깊은 애정을 전했다.
자유로운 만큼 무겁게 주어진 책임...계속 일으켜주는 학교
학생들 모두 학교생활에 십분 만족하는 반응이었지만, 학업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고 강조했다.
졸업생들은 “과제가 정말 많아서 정말 힘들었다”, “기숙사 자습실은 새벽 3시~4시까지 늘 학생들로 가득 차 있다”, “표선고에 오고 싶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와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지, 자기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익혀야 한다”, “문해력, 끈기,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피와 살이 되는 조언을 남겼다.
자녀를 IB 고등학교로 보내고 싶은 학부모에 대해서는 이채원 씨는 “자녀를 끝까지 믿고 도와달라. IB를 택했다는 것은 남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걷는 것이기에 학생 스스로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고민도 한다. 그럴 때는 응원의 한 마디로 지지해주길 바란다. 그럼 자녀는 금세 자리를 찾을 것이다. 나의 경험이다”라고 밝혔다.
표선고에 올 미래의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부지우 씨는 “넘어져도 된다. 무너지지만 마라. 표선고 교육은 우리가 넘어져도 계속 우릴 일으켜준다. 대입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읽고 탐구하고 배우길 바란다. IB 교육은 한국 공교육에 부정적이었던 나도 대학에 진학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한편, 1부를 진행한 교사들은 미국에서 열린 IB 글로벌 컨퍼런스를 통해 “수업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남겼다.IB 글로벌 콘퍼런스는 7월 25일부터 28일까지 미국 워싱턴 D.C. 호텔 메리어트 마르키스에서 열렸다. 제주에서는 IB 학교에 근무하는 초·중등교사 24명이 참여했다.토크 콘서트에 모인 교사들은 “컨퍼런스에 모인 다른 나라의 IB 교사들 모두 살아 움직이는 학습자상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교사들 모습에 영감을 받았다”, “진짜 배움은 교실 안에서만 찾는 것이 아니라 교실 밖에서 연결하고 실천하는 것을 실감했다”는 소감을 밝혔다.특히 최근 떠오르는 AI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는 한 교사는 “학생들은 생성형 AI에게 물어보고 답을 얻는 것 이상으로, AI가 생각하고 구성하는 것을 넘어서는 질문을 계속 해야하한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AI를 완전히 다룰 줄 알아야하고 지식을 점검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며 또 다른 것을 만드는 욕망을 계속 더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미래 교육이라는 의견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AI를 수업에 도입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번 콘퍼런스를 통해 가졌다. 내년 수업부터 적극 활용해보려 한다”고 강조했다. 토크 콘서트 인사말에 나선 김광수 교육감은 “내가 부임할 때만 해도 IB 교육과정을 도입한 시도 교육청은 제주와 대구 정도였지만 지금은 4개 정도만 제외하고 모두 도입하고 있다. 17개 시도 교육청이 모두 IB를 도입하는 순간에 교육부도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궁극적으로 DP점수와 수능 비교표를 만들어서 대학에서 적용하는 날이 온다면 IB를 둘러싼 여러 고민들도 깨끗이 해결될 것이다. 앞으로 차근차근 해결될 문제”라고 학생과 교사를 격려했다.출처 : 제주의소리(http://www.jejuso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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