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온 편지167(2024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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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송창우 | 등록일 | 24.11.28 | 조회수 | 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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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백예순일곱 번째 편지, 2024년 11월 29일, 금요일에
자면서 웃는다 / 류시화
엄마가 버리고 떠난 아이가 자면서 웃는다
연인에게서 결별 통보를 받은 청년이 자면서 웃는다
학교에서 따돌림당하는 소녀가 자면서 웃는다
직장에서 해고된 가장이 자면서 웃는다
다리 대신 절단된 면이 있는 노숙자가 자면서 웃는다
암 선고를 받은 여인이 자면서 웃는다
국경 넘어 도착한 나라에서 거부당한 난민이 자면서 웃는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의 병사가 자면서 웃는다
낯선 나라로 시집온 이국의 여성이 자면서 웃는다
단칸방에서 개와 단둘이 사는 노인이 자면서 웃는다
맡을 배역 없는 무명 배우가 자면서 웃는다
회전하는 지구 행성에 등을 대고 누워 모두가 자면서 웃는다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 류시화, 수오서재, 2024』 중에서
▷ 하느님이 천사들과 마을 경로당에 갔습니다. 경로당에서는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습니다. 구석의 안마 의자에는 다리가 불편한신 경로당 회장님이 잠든 채로 편안히 앉아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요? 꿈속에서는 자유롭게 걸어 다닐까요, 혹시 맘껏 뛰어다니시지 않을까요?” 하느님 물음에 세실리아 천사가 말했어요. “주무시는 시간만큼은 무의식 상태 아니겠어요?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시간일 거예요. 가위눌리는 꿈을 꾸더라도 꿈속이니 안전하지 않겠어요?” 마리첼리나 천사가 말했어요. “잠자는 동안도 평안하지만 영원히 잠드는 죽음의 시간도 안식이라 생각하면 죽음을 겁낼 필요는 없지요. 삶을 맘껏 살아야 할 까닭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깨달음의 시간보다 더 아름다운 시간이 있을까요? 삶도 죽음도 두렵지 않고 기쁨의 시간으로 마중할 수 있는 나날로 채워지는 건 깨달음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겠어요? 이런 순간이 나와 늘 함께 하도록 성찰하고 명상하고 요가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힘써야겠어요.” 마리아 룻 천사가 말했어요. “잠자는 시간과, 깨달음의 시간을 통해서 삶의 평화와 기쁨을 누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잠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고, 특별한 순간이 아니면 깨달음이 쉽게 오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러니 좀더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바로 사랑입니다. 모든 신의 뿌리는 사랑이니 사랑하는 순간만큼은 신이 된다고 믿어요. 우리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진정한 사랑을 멈추지 않을 때,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자유로운 신의 기쁨을 만끽하지 않을까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가운데서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용기가 솟아나는 것도 바로 사랑의 신비로움 때문 아니겠어요? 내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시간을 가질 대 진정한 안식과 평화가 파도처럼 끊임없이 출렁이리라 믿어요. 사랑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말 한 마디, 다정한 눈인사, 친절한 손길 등 작지만 소중하고 눈부신 것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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