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온 편지64(20240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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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송창우 | 등록일 | 24.06.12 | 조회수 |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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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예순네 번째 편지, 2024년 6월 13일, 목요일에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자카리아 무함마드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닭을 길렀소. 하늘에 별을 뿌리고 땅바닥에 등깔고 누워 세었소. 하나도 빠뜨림 없이 세었소.
해가 떨어지더이다. 문에 뚫린 구멍으로 한 다발의 석양빛이 들어와 내 가슴에 꽂혔소. 빛이 나를 죽였소. 나는 빛에 살해당한 자요. 언어가 남쪽으로 기울더니, 나는 죽어 있더이다. 나는 언어로 살해당한 자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나는 여기 주인이오. 내 발로 길을 새겼소: 개미 떼처럼 오가면서 내 발로 길을 다졌소. 쇠와 밀알을 내 턱으로 물어 날랐다오. 밤과 낮도 내 턱으로 날았다오.
내게 며칠은 남아 있소. 내 몸에 둘러 있는 몇 가닥의 밧줄을 큰 쥐처럼 갉으려오.
돌아라, 내 위에서 맴도는 매야. 언덕 위를 맴돌아라. 나는 밧줄을 갉아 스스로 놓여날 테니.
좀생이별이 이울었소. 아침의 숨결이 내 얼굴에 끼치오. 내가 씨 뿌린 밀은 어디 있소? 내가 바람에 묶어둔 머리끈은 어디 있소?
나는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오. 이 들판을 누볐소. 내 발등에 흙이, 내 혀에는 사랑하는 이름이 얹혀 있소.
사랑하는 이여, 내 이마에 둘러 묶을 주홍빛 비단 리본을 주오.
나의 부활을 살 플루메리아 꽃을 주오.
『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카리아 무함마드, 오수연 옮김, 강, 2020
▷ 하느님과 천사님들이 회의실에 갔습니다. 회의실에서는, 학교 축제준비 안건으로 학생회 임원들이 점심을 먹고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실장 부실장, 총학생회 부장들이 축제준비를 위해서 열띤 토의를 벌였습니다. 그 틈에도 한쪽 구석에서 떠드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아, G랄!” 누군가 그쪽을 향해서 한 마디 던졌습니다. 순간 회의를 하던 의장은 “회의 중에 욕설은 삼가주세요.”라고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부처님이 보살님에게 말했습니다. “어느 곳에서는 욕대회라는 것도 있다던데, 욕에도 급수가 있을까요?” 세실리아 천사님이 말했습니다. “뜻을 모르고 욕을 하는 경우가 많지요. 사람들 신체부위를 가지고 하는 욕은 자기들끼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하니까 그래도 낮은 등급 아닐까요? 하지만 ‘개0끼’라는 말은 위험하죠. 개라는 동물은 매우 충직한 동물입니다. 주인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는 생명이죠. 더러운 인간을 개로 취급하는 것을 개들이 안다면 절대 용서 못할 것입니다.” 마르첼리나 천사님이 말했습니다. “매우 추한, 성적인 욕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벌레 같은 놈’은 매우 급수가 높은 욕입니다. 벌레가 없으면 인간은 살 수가 없습니다. ‘개0끼’라는 욕은 어느 한 종류 동물을 차별한 욕이지만, ‘벌레’전체를 우습게 알고 나쁜 존재로 여긴 것은 수많은 벌레들에게는 치욕적입니다. 인간들의 잘못을 서로 헐뜯는 욕은 자기들끼리의 무식함을 드러내는 욕이지만, 하느님이 지은 생명인 벌레를 못된 몰지각한 인간과 동급으로 친다는 것은 벌레들에게 얼마나 큰 수치며 충격일까요?” 마리아 룻 천사님이 말했습니다. “동급으로 인정한 ‘벌레 같은 놈’은 그래도 최상급욕은 아닌 듯합니다. ‘미물만도 못한 놈’이라는 욕도 있잖습니까? 인간을 높이고 미물을 깔보는 이 욕이야말로 미물들이 인간을 단숨에 멸망시킬 수도 있는 최상급 욕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물들은 인간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지만, 그 작고 하찮은 존재로 자기보다 더 큰 존재의 생명을 위하여 짧은 찰나의 목숨을 바치는 숭고한 존재입니다. 미물은 마치 건물의 바닥과 같습니다. 바닥이 없이는 기둥이나 벽이나 천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인간만이 잘 난 존재임을 드러내는 욕이야말로 생명을 무시하고, 모든 생명을 똑같은 무게로 여기시는 하느님을 같잖게 보는 천벌 받을 일이지 않겠습니까? 생명의 무게를 저울로 달면 어떤 것이든 저울추가 중간에 있을 때 수평을 이룬다는데, 사람과 사람을 차별해서 안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동물과 미물도 소중히 여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물이나 미물을 차별하는 욕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이지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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