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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 이수민

이름 최하은 등록일 14.11.18 조회수 759

무제

이 수 민

  그 날은 아침부터 으슥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밤새 비가 내린 기운이 가시질 않았는지 공기는 눅눅했고 먹구름은 하늘을 뒤덮어 아침이 밤인 듯 했다. 무심코 틀었던 텔레비전 뉴스에선 어제 이 근방에 일어났던 살인사건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다. 가뜩이나 날도 우중충한데 이게 무슨 일이람. 괜히 기분이 나빠져 텔레비전을 끄고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지금은 봄이고 한창 꽃이 만개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꽃구경은 커녕 찬 비나 쏟아지다니 원. 오늘 손님이 없는 것을 하늘의 탓인 마냥 한바탕 투덜댔더니 속이 좀 시원한 것 같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엔 역시 모던락이지, 하며 CD를 가지러 일어난 그 때, 문에 달아놓았던 작은 종이 딸랑 소리를 내며 움직였고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 가 있었다.

 

 

그의 첫 인상을 한마디로 딱 잘라 정리하자면 '별로' 였다. 오늘따라 장사가 안되길래 일찍 가게 문을 닫으려 했던 내 계획이 무산되어서 그런 것이 8할이고, 나머지 2할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쾌한 기운이 풍겼다고 할까. 그도 그럴것이, 내 조그만 가게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들어와 하룻밤의 정을 털어놓는 곳에 가까웠기에 나에게는 그를 거부한다거나 쫒아낼 만한 명분이 없었다. 그는 느즈막히 내 가게에 고개를 내밀고 들어와 가장 독한 술 한잔을 주문한 뒤, 자리에 앉아 하염없이 어딘가만 응시하고 있었다. 사실 눈에 초점이 없어 응시라고 하기보단 멍을 때린다고 하는게 낫겠다 싶지만. 이 시간에 이렇게 나타나 이런 표정을 짓는 사람은 대부분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니 그 또한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어 술잔을 들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지 궁금하네요."

딱히 그에게 흥미는 없었지만 가만히 앉아 잔잔히 깔린 음악을 듣는 것도 신물이 날 지경이고 그가 주문했던 술도 다 만든 뒤라 딱히 더 할 일도 없었으므로 최대한 호감을 가질만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 정도면 기분 상하진 않겠지. 그는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싱긋 웃으며 내 말에 답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

X와 Y가 있었습니다. X와 Y는 서로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이였죠. 아니, X만 Y를 열렬히 사랑했었어요. Y는 X의 열렬한 사랑에 홀렸는지 자신이 X를 사랑한다고 착각을 해버렸답니다? 그런 관계가 얼마나 지속 되었을까요, Y는 자신의 본심을 알게 되었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건 X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단순한 연민이나 우정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혼란스러웠던 Y는 몇날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X를 떠나버렸어요.

"아...설마 그 X라는 분이 그쪽인가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여 냉큼 응했더니 너무 뻔한 이별이야기를 읊는 그에 꽤나 실망한 태도를 보이자 그는 아까 보여주었던 그 미소를 다시 지어보였다. 문득, 그의 웃음이 아파보인다고 느껴졌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도 그는 그저 웃으며 술을 한모금 마실 뿐이었다.

"그럼, 그 Y라는 분 소식은 아세요?"

"알지요. 알다마다요. 그사람은 저기 멀리로 가버렸어요. 제가 보냈거든요."

아마 그는 미소를 짓는 것이 습관인걸까. 그는 다시금 호감형의 미소를 지으며 술을 한모금 더 마신 뒤 테이블에 엎드렸다. 나도 모르게 그의 초라한 등을 다독여주고 싶다는 착각이 일었지만 그는 손님일 뿐이라고 되새기며 무심코 그에게 뻗었던 손을 거두었다. 얼마 동안 엎드려 있었을까, 그는 아까 그가 말했었던 'Y' 라는 사람의 예찬을 시작했다.

"Y는 예뻤습니다, 찹쌀떡 마냥 하얗게 생겼었죠. 어찌나 하얗던지, 마치 천사를 본 듯한 기분이었어요. 웃지 않으면 까칠해 보여서 매력적이었는데 웃을 때에는 누구보다도 환한 미소를 제게 보여주었죠. 그 웃음을 본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반하지 않고선 못 배겼을겁니다."

"그 사람을 많이 좋아하셨나 보네요."

"네,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그사람이 저를 떠났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그 사람을 어울리는 곳으로 보내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Y란 사람에 대해 늘어놓은 뒤 남은 술을 입에 털어넣은 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처음부터 지어왔던 그 미소가 그를 감싸던 포장이였음을 알게 되어 이젠 그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미 가게의 문을 닫을 시간은 훌쩍 넘어선지 오래였지만 그는 그대로 엎드려 있다 어슴푸레 동이 틀 때 즈음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제서야 나도 가게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어제 내렸던 비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을만큼 맑고 평화로운 오후를 맞이했다. 평소보다 늦게 잠이 들었던 탓일까, 평소 즐겨보던 정오의 뉴스를 보지 못했다. 사실 중요한 내용이 들어있지도 않고 그저 어제나 새벽에 있었던 사실들을 알려주는 별거 아닌 프로그램 이었지만 매일 보던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괜히 찜찜한 기분이 느껴졌다. 꼭 무슨 중요한 것을 알려주었을 법 한 불안감 이랄까. 하지만 매번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나의 작고 포근한 가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나의 가게로 가는 길목에는 노란 폴리스 라인이 주욱 쳐져 있었다. 주위에 몰려들어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을 스쳐지나가듯 들어보니 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자살을 했다는 뉘앙스다. 세상 참 별일이 다 있네 싶다.

 

... 그나저나 어제 그 사람, 잘 들어가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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