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문예창작)

글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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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Ant - 박연정

이름 최하은 등록일 14.11.18 조회수 760

Queen Ant

박 연 정

그 누군가는 흔들리면서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을 조금 더 고독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을 각인시켰다. 홀로 높은 자리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위치임에도 항상 고립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매번 찾아오는 그 감정이 치가 떨리도록 싫었다. 뭇 수개미들이 그녀의 페로몬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때에도 스스로의 몸을 감싸며, 수치심과 자신의 지위에 대한 위화감에,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대개는 동떨어진 듯한 감각이 좋았다. 아무도 없는 컴컴한 어둠 속에 몸을 웅크린 채 자신의 손이 자신을 끌어안음으로 가까스로 유지되는 그 온기, 그 일정한 온도가 너무도 좋아서 울곤 했다. 그녀의 몸은 수개미들에게 대를 잇기 위한 도구적 수단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벗어나고 싶은 괴리감에 사무쳐서 어두운 땅속에서 혼자 끅끅거려도 자신의 말을 들어 줄 일개미들조차 없었다. 그들은 동족의 미래에 대한 일 외엔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겨울은 더욱 춥고 외로웠다. 그녀를 감싸주는 체온들은 잠깐 동안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무심한 눈길엔 지쳐버린 지 오래다. 한 번 관계를 마친 수개미와는 그 후로 얼굴을 보는 일이 없었다. 자신들의 일을 마친 수개미들에겐 곧바로 죽음이 찾아오는 탓이었다. 그게 개미들의 여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슬픔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여자이기에 단순한 욕정 해소를 위한 그릇이 아닌 진심 어린 사랑이 받고 싶었다. 실상 그러한 사랑은 그녀에게는 너무 멀고 막연해서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이상이었지만 상상으로라도 허전한 틈새를 채우고 싶어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미 피폐해져 버린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릴 것 같았다. 혼인비행부터 셀 수 없는 지난 인연들. 망설임 없이 떨어지던 두 날개. 짊어진 의무. 그 다음을 위한 대기 시간. 그 중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씨를 뿌려놓고 떠나가는-그들 입장에선 버려진다고 생각하지만- 수개미들의 등판이 가장 보기 싫었다. 어느 한 편으론 매정한 뒷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날 바라보는 앞모습이 나아, 라며 자신을 품어주는 그 순간을 열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의례적으로 얼굴을 맞대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는 그 기계적인 시간조차, 그녀에게는 애틋함으로 남아 이질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반복적인 외로움엔 그녀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게 사랑이라면, 자신의 이상과는 상반된 것이 사실에 가깝다면 그녀가 여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 그녀는 어쩌면 현실을 부정하는 자신에게 화가 난 듯도 했다. 조막만한 여섯 다리로 흙 이불을 만들며, 자신이 과연 이 사회의 체계에 만족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을 던졌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한 바닥에 몸을 눕히며 숨죽여 눈물을 흘렸다.

없었지, 그런 여왕은 없었지. 떠나가는 수개미들을 먼저 끌어안고 보고 싶을 것 같다며 대신 흐느끼는, 그런 여왕은 없었지. 찰나의 시간이 지나면 긴 이별이 다가올 것을 알면서도 왜 그들의 기대와 미래에 부응해야 하는 걸까.

그녀는 초조한 얼굴로 다가올 내일을 곱씹으며 제 몸을 끌어안았다. 더는 자신의 배 속에서 자라나는 이 그리움들이 누구의 흔적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알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 왜 자신이 이 세계의 여왕이여야만 했을까. 이 모든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신이 단언했기 때문일까. 갓 태어난 개미가 무얼 안다고. 주변 곤충들의 일처다부제에 대한 시기와 부러움에도 꿋꿋했던 자신인데, 왜 그 누구도 고뇌를 알아주지 못했을까. 턱 끝까지 역겨움이 치밀어 오를 때, 문득 환멸감이 몰려올 때, 그녀는 가까스로 가슴을 쥐어 슬픔을 눌렀다. 오늘은 그 정도가 심해서 토악질이 나려했다. 헛구역질을 하는 것도 이걸로 끝이면 좋겠다. 그녀의 작은 바람이었다.

무심하게도 날은 밝았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살아있음에 감사해야할지 분노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다만 그녀는 그저 묵묵히 수개미를 맞을 준비를 했다. 생각보다 날이 추웠다. 땅 속 깊이 스미는 추위. 새카만 몸에 찬바람이 감겨왔다. 바람은 그녀의 벌거벗은 몸이 민망한 듯 자신들의 몸으로 최대한 가려주려 노력했으나 온 몸에 부대끼는 바람 탓에 도리어 그녀의 입술이 파리해졌다. 이쯤하면 살갗에 닿는 감촉에 익숙해 질만도 한데 막상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폐부 깊숙이 밀려오는 한기에 잠깐 숨을 멈췄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가 눈을 뜸과 동시에 한 수개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애써 웃음을 띠우려했다. 부자연스럽게 뒤틀린 입 꼬리는 뒤늦게 찾아오는 수치심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제 와 꺼림칙함이 느껴진다 한들 달라질 것이 있으랴. 애초부터 이 굴레를 벗어날 방안은 없었다. 모순적인 이 지위체계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려할수록 미궁에 빠지기 일쑤였다. 짐짓 심각한 표정의 그녀 앞에, 수개미가 긴장한 듯 그녀를 올려다보곤 급히 자신의 몸을 숙였다.

진심으로 뵙고 싶었습니다, 여왕님.

잔잔히 떨려오는 음성이 참 곱다. 의례적인 인사에 그녀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수개미 눈에 비치는 그녀는 매우 고귀해 감히 바라볼 수 없는 신과 같을 것이다. 그녀의 행동이 아무리 성의 없다 해도 그녀의 사소한 움직임마저 의미가 부여돼, 그가 일생동안 꿈꿔왔던 날을 미화하고 또 한 번 머리로 음미하며 자신의 마지막을 실감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그녀를 찾아오기 전부터 페로몬에 취해 제정신이 아닐 지도 몰랐다. 조심스레 그녀의 양 어깨를 잡는 손이 어색하면서도 뜨거웠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짧은 키스를 한 뒤 그녀를 가볍게 껴안았다. 추위에 바들거리던 그녀도 진정이 되는 듯 했다.

영광이에요.

그는 감격에 겨워 말했다. 그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고 마주한 현실을 느리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의 상황해석엔 왜곡이 없었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수개미였다. 그는 여태 만나온 수개미들보다 다정했고 손길의 흔적마다 정성이 가득했다. 아쉬울 정도로. 거부감 없이 수놓아지는 자취만을 따라가기엔 자신의 처지가 안쓰러웠다. 머지않아 사라질 이 따뜻함을 포기할 수 있을까. 신기루처럼 기대감만 부풀려놓고 사라져버리는 허황된 꿈. 끝내 사라져버릴 부질없는 희망. 하지만, 그마저도 갈구하는 것이라 먼저 내려놓기엔 미련이 남는 것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눈물을 삼켰다. 그리고 나지막이 그에게 속삭였다.

키스해줘요.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는 어딘가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하며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그녀는 뒤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식어버릴 뜨거움이라면 이대로라도 머물고 싶다는 소망으로, 하얀 그리움으로 자신의 눈을 멀게 하리라. 몸속 깊이서 차오르는 이질감을 애써 무시하며 그녀가 차게 웃었다.

보고 싶을 거예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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