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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남자도 오싹한 산골 관사…女교사들 "발소리만 들려도 기겁"

이름 양승아 등록일 16.06.09 조회수 962

남자도 오싹한 산골 관사…女교사들 "발소리만 들려도 기겁"

      
"밤이면 암흑천지, 문 꼭 걸고 자는 게 상책…주말만 손꼽아 기다려"

시·도 교육청 긴급 실태조사…비상벨 설치, 개·보수, 공동관사 건립 추진

(전국종합=연합뉴스) "남자인 저도 솔직히 무섭습니다. 여자들은 말할 것도 없겠죠"

전교생 29명의 산골 오지 학교인 충북 영동군 용화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모(40) 교사는 교내 관사에서 가족과 함께 2년째 지내고 있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관사는 4개동 11가구로 이뤄졌다.

교직원 중에는 한 교사와 50대 후반의 여성 조리사가 생활한다. 2가구는 비어 있고, 나머지는 학부형 등 주민들이 세 들어 살고 있다.

이 학교는 주로 노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의 끄트머리에 위치, 주민 왕래가 거의 없다. 구멍가게만 있는, 행정구역은 영동에 속하지만 전북 무주군 설천면이 생활권인 두메산골이다. 밤 9시 저녁돌봄 교실이 끝나면 일대는 암흑천지로 변한다.

한 교사는 "별이라도 없는 날에는 너무 캄캄해 앞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범죄 위험에 노출됐다고 해도 방비할 수 없다"며 "주민 모두 선한 분들이지만, 밤이 되면 남자인 나도 덜컥 겁이 때가 많으니 여자라면 오죽하겠느냐"고 전했다.

그는 교육청이나 영동군이 사람이 오가면 자동으로 인식해 불이 켜지는 가로등을 학교 주변에 설치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으로 도서 지역뿐만 아니라 방치되다시피 해온 내륙 산골 오지 학교의 열악한 관사 문제도 그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산골 관사에 거주하는 여교사나 여직원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낯선 오지에서 근무하며 거주하는 여교사들의 고충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크다.

최근 강원 벽지 학교에서 근무한 A 여교사는 일과 후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관사가 유일했다고 털어놨다.

그가 관사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책을 읽는 거였다. "두릅 맛 좀 보라"며 술상을 차려놓고 불러내거나 관사로 찾아오는 주민들의 '선의'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관사에 있는 것이 알려지면 계속 연락이 올까 봐 아예 방의 불을 일찍 끄고 초저녁부터 잠을 청했다고 벽지 학교 관사 생활을 회상했다.

A 교사는 "관사를 벗어나 집에 갈 수 있는 주말만 손꼽아 기다렸다"고 털어놨다. 벽지 학교 근무는 그에게는 유배지 생활과 다를 바 없었던 셈이다.

경북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 중인 50대 여교사는 아주 오래전 오지에서 근무할 당시 겪었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당시 마을 주민의 집에서 기거했던 이 교사는 "한밤에 누군가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려 하거나 마루에서 발소리가 나면 기겁해 소리를 지르거나 전깃불을 켜놓고 밤을 새웠다"고 전했다.

"정말 아무 대책 없이 방문만 잠그고 살았던 시절"이라며 "떠올리기조차 싫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충북 단양군 대강초 장정분교에 초임 발령을 받아 3년째 근무 중인 여교사는 "시골 관사 생활을 하면 벌레, 겨울철 추위 등 힘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며 "이번 사건으로 매사에 더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고 말했다.

전교조 경북지부 관계자는 "교원 근무 환경과 관련된 예산은 늘 부족한 형편이고, 집행 순위에서도 뒤로 밀리곤 한다"며 "열악한 관사 시설 개·보수를 포함해 교사 근무 환경 개선 요구에 신속히 답하고 적절한 예산 배정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시·도교육청은 여교사와 여성 일반직 공무원 등을 위한 안전대책 마련에 나섰다.

충북교육청은 학교 관사 전수조사를 벌여 문제점을 보완하고 개선하기로 했다. 낡은 시설 개·보수와 함께 안전장치가 허술한 곳은 비상벨을 즉시 설치하고 필요하면 CCTV도 달기로 했다. 장기적으로는 여러 학교 교직원이 함께 거주하는 공동관사를 확충하기로 했다.

강원도교육청 민병희 교육감도 "부교육감을 위원장으로 하는 '격오지 근무환경 개선 종합대책반'을 구성, 벽지 교원뿐만 아니라 일반직 선생님의 근무환경 실태와 어려움을 더 꼼꼼하게 살피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재천 이해용 김용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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