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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헬조선’의 분노

이름 정혜빈 등록일 15.11.16 조회수 761
지난 토요일,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촛불집회 이후 7년 만에 가장 많은 숫자다. 이날 정권은 위헌 결정 따위는 무시하고 다시 차벽을 세웠고 노동개악, 국정화 중단을 외치는 공화국의 주권자들을 테러범처럼 진압했다. 헌법이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공화국에서 발생한 일이다. 물대포와 캡사이신 발사, 최루가스로 하얗게 변한 도로는 ‘헬조선’의 ‘설국열차’를 떠올리게 했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직접적 발단은 한국사 국정교과서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역사를 모르면 혼이 비정상’이라는 대통령의 혼 나간 행태 앞에서 국민들의 인내심은 극한을 넘어섰다. 냉소가 분노로, 침묵이 행동으로 변하고 있다. 이 저항이 어디로 향할까? 내년 총선에는 투표를 통한 심판이 이뤄질까?

국정교과서 이슈 이후 여론 변화와 관련해 주목할 몇 가지 지점들이 있다. 첫째, 국정교과서 논란 초기에는 찬성 여론이 우세했으나 이슈가 확산될수록 반대가 굳어지고 있다. 지난 12일 발표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국정화 방침이 확정 고시된 이후에도 찬성 36.6%, 반대 55.3%로 반대 여론이 훨씬 높았다. 여론 흐름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 시점이 아닌 여론의 변화 추이인데, 적대적 여론 추이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고해지고 있다. 특히 국정화 이슈에 관심 있다고 응답한 층(75.7%)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찬성 38.4%, 반대 58.8%로 반대가 더 높아져 고관심·고관여층일수록 반대가 확고했다. 둘째, 국정화 이슈에 대해 반대 우위 흐름을 추동한 것은 이념적으로 중도, 정치적으로는 지지 정당이 없다고 한 무당파층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진보층(73.2%)은 물론 중도층에서도 반대가 65.2%로 압도적이었다. 이에 반해 보수층은 찬성이 63.3%로 고립되고 있다. 무당파층도 반대가 66.9%로 국정화 반대 입장에 가담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50대의 여론이다. 50대는 보수성이 강해 국정교과서에 대해서도 찬성 의견(51%)이 높았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도입으로 올바른 역사 서술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견해는 49.5%로 하락했고, 추진 방식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대목에서는 긍정 평가가 35.1%로 뚝 떨어졌다. 50대도 이미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국정교과서 이슈는 그저 도화선일 뿐이다. 이미 노동개악 등으로 더 위기로 내몰린 청년들, 국민들이 꿈틀대고 있다. 진보층은 물론 중도, 무당파층도 목소리를 내면서 냉소에서 분노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론이 막연히 짐작하듯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님은 여러 데이터가 보여주고 있다. 민간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의 유권자 정치의식 조사에 따르면 보수정권에 대한 피로감이 절정에 이르면서 정권 교체를 바라는 여론, 경제 사회 영역에서 변화를 바라는 진보적 여론이 우세하다. 이처럼 유권자 지형 측면에서는 진보가 결코 불리하지 않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냉소를 넘어선 분노도 여전히 변화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변화는 구체적인 결과로만 실증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분노가 내년 총선에서 여당과 정권의 심판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문제는 이 최악의 정권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최약의 야당이라는 데 있다. 국민보다는 정당 및 정치세력의 변화를 촉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야당이 무기력과 무능을 깨고 국민의 분노를 받아낼 때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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