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정면 비판했다. 어제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민심왜곡, 조직선거, 세금공천 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합의를 공개적으로 ‘비토’한 것이다. 앞서 김 대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는) 단순한 기법상 문제여서 청와대와 상의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공천규칙은 김 대표 말대로 각 정당 차원에서 결정할 문제다. 청와대 권한 밖의 일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청와대가 개입하고 나선 것은 가벼이 넘길 사안이 아니다. 내년 4월 총선을 대통령 뜻대로 치르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또다시 정당정치와 의회주의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비박근혜계 김성태 의원의 발언이 쉽게 압축해준다. “공천방식이 대통령 뜻에 의해 결정돼야 하는 것이냐. 차라리 ‘이렇게 하면 전략공천을 못하지 않느냐’고 솔직하게 얘기하라.” 임기 반환점을 돈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을 방지하고 퇴임 후 ‘안전판’까지 확보하고자 한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 7월 유승민 당시 원내대표를 찍어내고, 대구 방문 시 수행단에서 현역 의원들을 배제하고, 유엔 정상외교 기간 ‘반기문 띄우기’에 나선 것 모두 이러한 구상의 일환이라고 한다. 문제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친박근혜계를 국회에 더 많이 진출시키지 못할 경우 만사휴의(萬事休矣)라는 점이다. 국민공천제를 전면 도입할 경우 인지도와 조직력을 갖춘 현역 의원이 유리하다. 박 대통령이 공천을 주고 싶어 하는 측근들은 정치신인인 만큼 경선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어떠한 미사여구로 포장한다 해도, 본질은 결국 권력투쟁이다.
국민공천제의 원형인 ‘오픈프라이머리’는 장점도 있지만 약점도 적지 않다. 정당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일반 유권자에게 넘김으로써 정당의 책임성이 약화되고 당원들이 소속감과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행태는 오픈프라이머리가 옳으냐 그르냐와는 별개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든 클로즈드 프라이머리(경선 참여 일반인에게 정당·후보 지지를 서약하도록 하는 방식)를 하든, 새누리당 내부에서 논의해 결정할 일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집권여당 총재를 겸임하며 공천권을 쥐고 휘두르던 십수년 전이 아니다. 한 사람의 평당원인 대통령이 공천규칙을 좌지우지하려 해선 안된다. 자칫하다가는 선거중립 의무를 위배했다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김 대표가 국민공천제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어찌할 것인가. 이번에도 김 대표를 찍어낼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