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정부 시책과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도를 넘었다. 정부는 그동안 이견을 제기한 연구원 개인에게 징계 등 불이익을 준 것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기관과 기관장에 대한 평가 기준을 바꿔 아예 다른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뜻을 노골화했다. 인문·사회·경제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관리하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지난달 통과시킨 새로운 평가기준이 그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억누르는 데 급급 새 기준은 국가정책 기여도 점수를 높이고, 연구 성과의 우수성을 비롯한 여러 항목에서 정부 부처 공무원의 평가 비중을 대폭 늘렸다. 또 기관장 리더십 평가 항목에 ‘노사관계 선진화 정도’를 명시했다. 정부 쪽은 이런 평가기준 변경이 “정부 정책 수립과 연구 사이의 협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번 조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억누르는 데 급급했던 기존 대응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원을 ‘싱크탱크’가 아닌 ‘마우스탱크’로 생각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에 대한 뒷조사가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가 대운하 사업이라고 지적하는 글을 올린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연구원은 정직을 당하기도 했다. 국책연구기관이 아닌 한국금융연구원의 이동걸 원장조차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정책을 뒷받침하는 논거를 만들어내라는 압력을 거부하다 밀려났다. 이 원장은 퇴임사에서 ‘정부가 연구원을 싱크탱크가 아니라 마우스탱크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올바른 정책수립 위해 연구 자율성, 독립성 보장해야 물론 국책연구기관은 국가 정책을 지원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을 일방적으로 두둔하는 것이 국가 정책에 대한 지원은 아니다. 다양한 측면의 사전 검증을 통해 올바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고 집행된 정책에 대해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해주는 것이야말로, 국책연구기관이 국가 정책을 지원하는 바른 길이다. 그렇게 하려면 당연히 연구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새로운 평가기준은 거꾸로 가는 조처로서, 재고해야 마땅하다. 아울러 연구기관과 연구원들 역시 사적 이해관계에 함몰되지 말고 지식인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대응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박사급 연구원들이 그제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은 이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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