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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자본에 짓눌린 한국영화의 암울한 미래

이름 강명주 등록일 13.11.08 조회수 1218
한 유능한 영화 제작자가 제작을 포기했다고 한다. 예술성과 대중성 등 영화적 감각은 물론, 사회·문화 의식을 골고루 갖춘 제작자였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자신이 제작한 <화려한 휴가>의 대성공이었다고 한다. 이 무슨 역설인가.

<화려한 휴가>는 2007년 관객 730만명을 동원해 역대 8번째 흥행을 기록했다. 총매출은 207억원으로 투자비 등 비용을 모두 빼도 50억원의 수익을 남겼다. 그러나 최종 정산 결과 제작자는 수억원의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고 한다. 수익은 투자자, 곧 영화시장을 독과점한 유통자본한테 돌아가고, 콘텐츠 제작자는 쪽박만 찬 셈이다. 서커스단의 곰이나 원숭이가 아니라면, 어떤 제작자가 재주나 부리고 빚만 지는 이런 판에 남아 있을까.

공정하지 못한 줄 뻔히 알면서 계약서에 날인한 그의 책임까지 부인할 순 없다. 그러나 지금 한국 영화계에서 제작자는 유통자본의 밥이다. 제작비 마련을 위해 투자자가 내미는 온갖 요구를 수용해야 했다. 노예계약 수준인 수익금 배분 비율(8:2)은 물론, 높은 배급수수료(10%)도 받아들였다. 당연히 총비용에 포함해야 할 주연배우의 러닝 개런티나 감독과 피디의 보너스 등도 떠안았다. 물론 투자자가 흥행 실패 때 입을 손해를 최소화하고자 위험을 분산시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흥행에 성공했다면, 제작자가 빚지는 일만큼은 없도록 배려하는 게 상행위의 기본이다. 도리를 떠나 서로 함께 사는 길이다. 제품 없는 유통이란 없으니까.

현재 한국영화의 투자 및 배급 시장은 씨제이(CJ)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몇몇 유통자본이 독과점하고 있다. 특히 최대 규모의 극장 체인까지 거느린 씨제이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제작자들은 온갖 불공정한 조건에도 씨제이의 투자를 유치하려 한다. 씨제이가 <화려한 휴가>를 통해 30억~40억원대의 수입을 올린 반면, 제작자는 빚만 지고 영화판을 떠나게 된 것은 그 결과였다.

좋은 영화가 있어야 유통자본도 수익을 남긴다. 유통자본이 제작자를 착취하는 것은 결국 제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일이나 다름없다. 우리 유통자본은 그것도 모자라 지금 제작까지 장악하려 한다. 그렇게 되면 상업성만 추구할 것이니, 한국영화의 앞날은 암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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