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수업 중인 교실에 10대 고교 중퇴생이 침입해 흉기 난동을 벌인 서울 서초구의 초등학교는 평소 학생 안전을 위한 예방 수준이 우수한 것으로 꼽혀온 사립학교다. 이 학교에는 배움터 지킴이 2명과 경비원 1명이 있고 CCTV도 40여대 설치돼 있었지만 공사 차량 뒤쪽에 숨어 들어온 범인을 막지 못했다. 형편이 나은 학교가 이럴 정도니 다른 곳은 어떨지 짐작이 간다.
2010년 6월 성범죄 상습범 김수철이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등교하던 1학년 여자아이를 납치해 자기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 당시 당직 교사는 수상한 사람이 복도에서 서성대는 걸 보고서도 그가 '딸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이 학교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인력을 따로 두지 않은 채 운동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있었다.
전국 1만1300개 학교 중 95%인 1만800개 학교가 일반인에게 개방돼 있다. 2000년부터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학교 담장 허물기(학교 공원화)' 사업을 벌여 1165개 학교가 담장을 철거했다. 지역 주민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는 취지를 나무랄 수 없지만, 반드시 보완돼야 할 안전 대책이 뒤따르지 않은 점이 문제다. 담장을 없앤 학교 가운데 투명 펜스 설치 같은 후속 조치를 마련한 곳은 8%인 93곳에 불과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보안시설을 강화했다고 자랑하는 경기도의 두 초등학교를 살펴보니 CCTV가 나뭇가지에 가려 있거나 교직원이 퇴근하면서 전원을 끄면 카메라가 먹통이 됐다. 출입문의 지문인식기도 작동되는 시간보다 고장 나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미국·영국·프랑스 같은 나라에선 등·하교 시간 외엔 학교를 개방하지 않고 학부모라도 학교를 방문할 때는 꼭 사전 예약을 하도록 한다. 이런 나라에선 학교, 교육 당국, 경찰 등 전문가들이 치밀한 학교 안전 지침을 만들어 일선 학교에 제공하고 있다. 학교 안전 지침엔 건물의 배치부터 출입구 개수와 위치, CCTV 관리, 조명, 경비원의 동선(動線), 비상시 대응 매뉴얼이 세세하게 규정돼 있다. 교육 당국은 우리네 학교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여 학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안전 대책을 내놔야 한다. 출처: 조선일보 사설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