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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낭독회(다섯 번째)
작성자 박가영 등록일 24.10.23 조회수 42
첨부파일

화면 캡처 2024-10-23 133221
다섯 번째 낭독회는 2학년 김나O, 박정O 학생이 이어주었습니다.

한강의 소설 '흰'의 한 부분을 낭독하였습니다. 

 

 파도

  멀리서 수면이 솟아오른다. 거기서부터 겨울 바다가 다가온다. 힘차게, 더 가까이 밀려온다. 파고가 가장 높아진 순간 하얗게 

부서진다. 부서진 바다가 모래펄을 미끄러져 뒤로 물러난다.

  물과 물이 만나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그러나 실은 영원하지 않다-지구

도 태양계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부서지는 순간마다 파도는 눈부시게 희다. 먼 바다의 잔잔한 물살은 무수한 물고기들의 비늘 같다. 수천수만의 반짝임이 거기

있다.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진눈깨비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얼음도 아니고 물도 아닌 것. 눈을 감아도 떠도, 걸음을 멈취도 더 빨리해도

눈썹을 적시는, 물큰하게 이마를 적시는 진눈깨비.


 <흰>, 문학동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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