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고등학교 로고이미지

RSS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네이버밴드 공유하기 프린트하기

홍보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낭독회(네 번째)
작성자 박가영 등록일 24.10.22 조회수 25
첨부파일

화면 캡처 2024-10-22 132045
네 번째 낭독회는 1학년 하동O, 2학년 박수O 학생이 해주었습니다. 

한강 작가가 연세대 국문과 4학년 때인 1992년, 연세문학상 수상을 안긴 '편지'라는 시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음은 시의 전문입니다. 

 

그동안 아픈 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 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 ...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

또아리 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

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

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

가슴 타는 꿈 속에

어둠은 빛이 되고

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흉몽처럼 눈 멀어 서리치던 새벽

동 트는 창문빛까지 아팠었지요


... ... 어째서 ... 마지막 희망은 잘리지 않는 건가 지리멸렬한 믿음 지리멸렬한 희망 계속되는

호흡 무기력한, 무기력한 구토와 삶, 오오, 젠장할 삶


악물린 입술

푸른 인광 내뿜던 눈에 지금쯤은

달디단 물들이 고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한번쯤은

세상 더 산 사람들처럼 마주 보고

웃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이었을까 ... 잃을 사랑조차 없었던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눈물도 눈물겨움도 없는 날들

파도와 함께 쓸려가지 못한 목숨, 목숨들 뻘밭에 뒹굴고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에 바람이 붑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


<연세춘추>, 1992

 

이전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낭독회(다섯 번째)
다음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낭독회(세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