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낭독회(네 번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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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가영 | 등록일 | 24.10.22 | 조회수 |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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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가 연세대 국문과 4학년 때인 1992년, 연세문학상 수상을 안긴 '편지'라는 시를 들려주었습니다. 다음은 시의 전문입니다.
그동안 아픈 데 없이 잘 지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꽃 피고 지는 길 그 길을 떠나 겨울 한번 보내기가 이리 힘들어 때 아닌 삼월 봄눈 퍼붓습니다 겨우내 지나온 열 끓는 세월 얼어붙은 밤과 낮을 지나며 한 평 아랫목의 눈물겨움 잊지 못할 겁니다 누가 감히 말하는 거야 무슨 근거로 무슨 근거로 이 눈이 멈춘다고 멈추고 만다고... 천지에, 퍼붓는 이... 폭설이, 보이지 않아? 휘어져 부러지는 솔가지들, ... 퇴색한 저 암록빛이, 이, 이, 바람 가운데, 기댈 벽 하나 없는 가운데, 아아, ... 나아갈 길조차 묻혀버린 곳, 이곳 말이야 ... 그래 지낼 만하신지 아직도 삶은 또아리 튼 협곡인지 당신의 노래는 아직도 허물리는 곤두박질인지 당신을 보고난 밤이면 새도록 등이 시려워 가슴 타는 꿈 속에 어둠은 빛이 되고 부셔 눈 못 뜰 빛이 되고 흉몽처럼 눈 멀어 서리치던 새벽 동 트는 창문빛까지 아팠었지요 ... ... 어째서 ... 마지막 희망은 잘리지 않는 건가 지리멸렬한 믿음 지리멸렬한 희망 계속되는 호흡 무기력한, 무기력한 구토와 삶, 오오, 젠장할 삶 악물린 입술 푸른 인광 내뿜던 눈에 지금쯤은 달디단 물들이 고였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한번쯤은 세상 더 산 사람들처럼 마주 보고 웃어보고 싶었습니다 사랑이었을까 ... 잃을 사랑조차 없었던 날들을 지나 여기까지, 눈물도 눈물겨움도 없는 날들 파도와 함께 쓸려가지 못한 목숨, 목숨들 뻘밭에 뒹굴고 당신 없이도 천지에 봄이 왔습니다 눈 그친 이곳에 바람이 붑니다 더운 바람이, 몰아쳐도 이제는 춥지 않은 바람이 분말같은 햇살을 몰고 옵니다 이 길을 기억하십니까 꽃 피고 지는 길 다시 그 길입니다 바로 그 길입니다 <연세춘추>,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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