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반 | 이달의 역사(2020.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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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조*현 | 등록일 | 20.08.11 | 조회수 | 256 |
사라예보 사건 1914년 6월 28일 일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의 결혼기념일 14주년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그의 부인 조세핀과 함께 보스니아에 속해있던 사라예보에 방문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육군대연습을 참관하고 돌아가던길에 총을 맞아 즉사하였고, 범인은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범인은 세르비아인 가브릴로 프린치프였다. 오스트리아에 항거하는 뜻으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저격함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들이 결성한 비밀결사조직인 검은 손의 일원으로 밝혀졌고, 사건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암살에 사용한 권총이 세르비아 정부로부터 공수되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에서는 세르비아 정부에게 처벌과 조사에 관련된 일을 허용할 수 있게 요청을 하였음. 밑의 4가지가 그 조건임. 1-모든 반(反)오스트리아 단체를 해산할 것. 2-암살에 관련된 모든 자를 처벌할 것. 3-반(反)오스트리아 단체에 관련된 모든 관리를 파면할 것. 4-여기에 관련된 당사자를 조사하는데 오스트리아 관리가 세르비아로 들어가 도울 것을 허용할 것.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게 이 최후통첩의 답장을 48시간 안에 하라고 강요하였음. 당시 세르비아 내각은 이것을 수용하려 했으나 러시아 제국이 세르비아를 도와주겠다는 연락이 오자 세르비아 내각은 오스트리아 강경론으로 바뀌었습니다. 세르비아의 역사적 배경 1389년 오스만튀르크와의 전쟁에서 패한 이후 보스니아를 비롯한 발칸반도의 국가들은 오랜기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옴. 1877년 서리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오스만 제국은 산스테파노조약으로 이스탄불을 제외한 모든 유럽용토의 지배권을 잃음. 19세기 이후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오스만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운동이 고양되었음. 19세기 초반 두차례에 걸친 봉기로 오스만제국에게서 자치권을 획득했던 세르비아가 그 중심에 있었다. {범 슬라브 주의-슬라브 민족끼리 뭉치기(러시아 세르비아 범 게르만 주의-게르만 민족끼리 뭉치기(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오스트리아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음 당시 러시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누르고 싶어했고 슬라브 민족이 대다수인 세르비아를 지지했으며, 독일이 참전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서 1차대전 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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