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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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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편지153(20241107)
작성자 송창우 등록일 24.11.07 조회수 9
첨부파일

제나온 백쉰세 번째 편지, 2024117, 목요일에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 도나 마르코바

 

 

나는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넘어지거나 불에 델까

두려워하며 살지는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름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마음 챙김의 시/류시화(엮은이)/수오서재/2020에서

 

 

하느님이 천사들과 동네 서점에 갔어요. 그곳에는 예쁘게 포장된 책들이 많았어요. “우와, 꽃을 가꾸듯이 책도 가꿔야 이렇게 멋지게 피어나는군요. 책 표지가 마치 사람 얼굴처럼 느껴져요. 표지에 쓰여 있는 책 제목은 간절한 목소리처럼 들려서 무슨 얘기인지 귀 기울이고 싶고요. 근데, 어떤 책을 골라서 인생의 푯대로 삼아야 할까요?” 하느님 말씀에 세실리아 천사가 말했어요. “방금 하느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요? 책을 보면 책과 하나 되고, 나무를 보면 나무와 하나가 되고, 기쁨을 보면 기쁨과 하나 되고, 아픔을 보면 아픔과 하나가 되는 거죠. 그게 바로 하나님 아니겠어요? 밥 먹을 때 오로지 밥 생각만 하고 먹어야 밥맛을 제대로 알 듯이, 인생도 그렇게 내가 바라보는 것과 하나가 되어 살 때, 자아가 사라지는 무아지경의 황홀한 인생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마르첼리나 천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것처럼, 저도 어릴 적 만화책 속에 푹 빠져 밥 먹다가 국그릇을 엎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저는 바닥의 삶을 추천하고 싶어요. 바닥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가장 낮은 곳이지요. 아래로 내려갈수록 마음은 편하답니다. 나보다 더 낮은 것은 없고, 모두가 나보다 더 높아서 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겠어요?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하고, 대접받으려면 대접해야 하는 것처럼요. 나무의 잎사귀도 근본이 되는 뿌리가 가장 밑바닥이고, 물방울 하나도 바닥인 아래로만 흐르고 흘러 거대한 바다에 닿고자 하는 게 생의 완성 아니겠어요?” 마리아 룻 천사가 미소를 띠며 말했어요. “맞아요. 책도 어쩌면 배고픈 사람 식탁의 라면 냄비 밑바닥에 있을 때가 가장 완벽한지도 모르죠. 저는 비틀즈의 이매진(Imagine)이란 노래를 좋아해요. 천국이 없으면 지옥이 사라져서 온 세상이 똑같아진다는 노래예요. 천국에 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지옥에 떨어질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길은 천국과 지옥의 경계를 없애면 되잖아요? 남한과 북한의 경계를 걷어내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국경이 사라지고, 네 것과 내 것의 구분을 없애버리면 모두 다 내 것이며 우리 땅이고, 모든 게 다 네 것이며 우리 것 아니겠어요? 이게 바로 하느님이 바라시는 천국, 아닌가요?” 하느님이 굵고 짧은 소리를 냈어요. “!”

 

 

오늘은 겨울 추위가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입니다. 서로에게 따스하고 포근한 난로가 되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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