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온 편지142(20241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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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송창우 | 등록일 | 24.10.22 | 조회수 | 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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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백마흔두 번째 편지, 2024년 10월 23일 수요일에
기린 / 김륭
키가 작다고 우습게보지 마. 난 기린을 키워. 우리 반 코끼리 동수보다 키가 크고 엉덩이가 무거운 기린이야. 뻥치지 말라고? 하긴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너희들은 상상도 못 했겠지. 난 기린과 함께 살아. 우리 할머니가 고생이 많지. 등이 꼬부라진 것도 기린 때문이야. 곰곰 생각해 봐. 닭이나 똥개라면 몰라도 기린을 키우려면 얼마나 힘들겠니. 어디 한번 보여 달라고? 너희들이 오면 내 방에 숨어 꼼짝도 하지 않을걸. 난 기린과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 난 기린을 키워. 가끔씩 기린이 나를 업어 줄 때도 있어.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을 때마다 긴 목을 하늘거리며 우두커니 먼 산을 쳐다보고 있는 기린이야.
《엄마의 법칙》(문학동네 2014)
▷ 하느님과 천사님들이 놀이터에 갔어요. 따뜻한 가을햇살 내리쬐는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그네도 타고 미끄럼도 타고 모래장난도 하며 신나게 놀고 있어요. 때론 이름대신 별명을 불러가며 놀려대기도 했지만 웃음소리만은 놀이터에 가득했답니다. “저도 옴박지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소 풀 뜯기러 갔다가 급해서 언덕배기 한구석에 똥을 누었는데 굵은 똥을 한 옹기 가득 퍼질러 놨다고 아이들이 그렇게 불렀죠. 천사님들은 어떤 별명이 있었나요?” 하느님 말씀에 세실리아 천사가 말했어요. “제 별명은 비밀이에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끼리 부르는 슬픈 별명이 있답니다. 겨울왕국의 주인공인 ‘엘사’예요. 적은 평수의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은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라서 ‘휴거지’라 부르고, 아파트도 아닌 빌라에 사는 아이는 ‘빌거지’라 부르는데 ‘엘사’는 LH(엘에이치)회사에서 지은, 좁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그렇게 부른다 하네요.” 마르첼리나 천사님이 말했어요. “저도 엘사처럼, 아이들에게서 유행하는 슬픈 별명을 알고 있어요. 이백충, 삼백충이라는 말이에요. 부모가 이백만 원, 삼백만 원 버는 벌레라는 뜻이라죠? 적어도 오백충은 되어야 무시당하지 않는답니다.” 마리아 룻 천사님이 말했어요. “제 별명은 볼매녀였어요. 볼수록 매력 덩어리 아가씨라는 뜻이죠, 호호! 하지만 저도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슬픈 별명을 알고 있어요. 바로‘개근거지’라는 말이죠. 1년 동안 결석도 못하고, 부모랑 체험학습도 못가서 비행기 한 번도 못 타고 학교에 빠지지 않고 개근한 아이를 이렇게 놀리며 부른답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 아이들 셋 중 하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사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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