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온 편지138(20241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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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송창우 | 등록일 | 24.10.17 | 조회수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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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백서른여덟 번째 편지, 2024년 10월 17일 목요일에
김태정* / 김사인
1 울 밑의 봄동이나 겨울 갓들에게도 이제 그만 자라라고 전해주세요. 기둥이며 서까래들도 그렇게 너무 뻣뻣하게 서 있지 않아도 돼요, 좀 구부정하세요. 쪽마루도 그래요,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천장의 쥐들도 대거리할 사람 없다고 너무 외로워 마세요. 자라는 이빨이 성가시겠지만 어쩌겠어요. 살 부러진 검정 우산에게도 이제 걱정 말고 편히 쉬라고 귀 어두운 옆집 할머니와 잘 지내라고 전해주세요. 더는 널어 말릴 양말도 속옷 빨래도 없으니 늦여름 햇살들은 고추 말리는 데나 거들어드리세요.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미황사 앞.
2 죽는다는 일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그래서 어쩌란 일인가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안 보이는 깔때기가 있어 그리로 내 영혼은 빨려나가는 걸까요, 아니면 미닫이를 탁 닫듯이 몸을 털썩 벗고 영혼은 건넌방으로 드는 걸까요.
아이들에게 말해주세요. 마당에서 굴렁쇠도 그만 좀 돌리라고 어지럽다고.
3 슬픔 너머로 다시 쓸쓸한 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 한없이 처량한 그림자 덮어쓰고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듯 다닌 소설 공부 다니는 구로동 아무개네 젖먹이를 맡아봐주던 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 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 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던 그 말 너무 선선하고 환해서 자는 게 뭔지 알기나 하는지 되레 못 미덥던 눈길 피하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기나 잘하던 살림 솜씨도 음식 솜씨도 별로 없던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4 할머니 할아버지들 곁에서 겁 많은 귀뚜라미처럼 살았을 것이다. 길고 느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마루 끝에 앉아 지켜보았을 것이다. 한달에 오만원도 안 쓰고 지냈을 것이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이, 시를 써 장에 내는 일도 부질없어 조금만 먹고 거북이처럼 조금만 숨 쉬었을 것이다. 얼찐거리다 가는 동네 개들을 무심히 내다보며 그 바닥 초본식물처럼 엎드려 살다 갔을 것이다.
더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그 집 헐은 장독간과 경첩 망가진 부엌문에게 고장 난 기름보일러에게 이제라도 가만히 조문해야 한다. 새삼 슬픈 시늉을 하지는 않겠다.
* 김태정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2011년 9월 6일 젊은 나이에 미황사가 있는 해남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을 남겼다. 생전에 모 문화재단에서 오백만 원을 지원하려 하자, 쓸데가 없노라고 한사코 받지 않았다. 그의 넋은 미황사(전남 해남의 절)가 거두어주었다.
▷ 하느님이 천사들과 삼례 책마을에서 열리는 축제 마당에 들렀습니다. “보는 사람도 즐겁지만 주인공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얼마나 기쁠까요? 모두가 삶의 주인공이 되어 숙제 대신 축제인 줄 알고 사는 인생이었으면 좋겠어요.” 세실리아 천사가 말했어요. “엊그제 돌아가신 여든일곱 살 칠곡 래퍼 할머니도 그랬어요. 여든이 넘어 한글을 익히며 할머니 래퍼 그룹으로 살았던 지난 1년이 가장 아름다운 인생이었다고요. 뭔가에 푹 빠져 산다는 거, 마치 단풍이 마지막 찬란하게 물들은 모습으로 떨어지듯, 맘껏 하고 싶은 일을 누리는 생이 멋진 삶 아닐까요?” 마르첼리나 천사가 말했어요. “푹 빠져 산다는 건 특별한 인연을 사랑한다는 거 아니겠어요? 비교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고 나와 인연이 되는 것들을 운명이라 여기고 끌어안으며 사는 거죠. 가족과의 인연, 친구와의 인연, 연인과의 인연에 기뻐하며 첫사랑을 만난 듯 사랑에 빠지는 것도 아름다운 인생이지만, 내가 만난 집, 내가 만난 거리, 내가 만난 교실, 그리고 내가 만난 사회나 국가는 물론이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행성인 지구조차 나의 신비로운 만남이고 인연이라 여기며 그들과 멋진 연애를 하듯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야말로 찬란한 인생과 손바닥을 부닥치듯 사는 게 멋진 인생 아니겠어요? 누구를 만난다는 건, 누구와 인연을 맺는다는 건, 그들 품에 푹 빠지고, 푹 안긴다는 의미죠. 진정 살맛은 안기는 거죠. 엄마한테 안기고 연인에게 안기고 하늘에 안기고 땅에 안기고, 버스에 안기고 교실에 안기고 운동장에 안긴다고 여기며 사는 거죠. 앉은 곳이 꽃방석, 선 곳이 꽃자리, 사는 곳이 꽃대궐이고, 하나뿐인 내 생명이 거처하는 곳이 궁전이고, 어쩌다 도착한 지구 행성에 지옥은 없고 오로지 천국만이 있다고 여기는 삶! 내가 푹 안겨 있는 지금 여기가 가장 아늑하고 살맛나는 스킨십의 황홀한 가슴이 아니고 뭐겠어요?” 마리아 룻 천사가 손뼉을 치며 말했어요. “이렇게 멋진 생각으로 사는 두 분 천사님의 황홀한 인생에 박수를 보내요. 그런데 사람들은 인연을 너무 소중히 여기다 보니, 이별을 겁내고 두려워하기도 해요. 이별은 또 다른 포용이며 포옹 아닐까요? 신의 섭리로 때가 되어 헤어지고 나면 다시 새로운 사람, 낯선 거리, 처음 보는 세상과 만나게 되죠. 이럴 때 첫사랑인 듯, 첫 키스인 듯, 첫 항해인 듯 경이로운 오감과 설렘으로 마중하는 인연은 우리를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게 할까요? 그러니 만남에 대한 기대와 설렘도 아름다운 인생의 필요조건이지만, 이별이 있어야 색다른 만남,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는, 이별에 대한 통 큰 생각이야말로 아름다운 인생의 충분조건 아니겠어요?” 듣고 있던 하느님과 천사가 환호성을 울렸어요, 머리 위로 올린 두 손을 힘껏 마주치면서….
▷ 내일은 동아리 시간에 동아리별 단체 사진을 찍는 날입니다. 3학년은 마지막 추억을 남기는 앨범 사진을 찍습니다.
▷ 학교생활 중, 친구나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보내주거나 제나온 편지에 대한 답장이나 소감문 등을 보내주는 친구에게는 위클래스 상담실에서 정성으로 준비한 선물을 드리고 내용에 따라 선별하여 본인 허락을 받은 후, 제나온 편지에 싣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학교생활 중 궁금한 일, 함께 하고 싶은 일,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즉시 달려가 기꺼이 마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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