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온 편지137(20241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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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송창우 | 등록일 | 24.10.16 | 조회수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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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백서른일곱 번째 편지, 2024년 10월 16일 수요일에
모과 / 손택수
아파트 화단에 떨어져 있던 모과를 주워왔다 올 겨울엔 모과차를 마시리라, 잡화꿀에 절여 쿨룩이는 겨울을 다스려보리라 도마에 올려놓고 쩍 모과를 쪼개는데 잘 익은 속살 속에서 애벌레가 꾸물거리며 기어나온다 모과 속살처럼 노래진 애벌레가 단잠을 깨고 우는 아이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애벌레에게 모과는 인큐베이터 같은 것 눈 내리는 겨울밤 어미 대신 자장가를 불러줄 유모의 품과 같은 것 이미 쪼개버린 모과를 다시 붙여놓을 수도 없고, 이 쌀쌀한 철에 애벌레를 업둥이처럼 내다버릴 수도 없고 내가 언제부터 이깟 애벌레 한 마리를 두고 심란했던가 올 겨울 나는 기필코 모과차를 마시리라, 짐짓 무심하게 아내를 바라보는데 아직도 책장 어딘가에 애벌레처럼 웅크린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놓쳐버린 아기의 태기를 놓지 못하고 있는 모과 속을 드러낸 거죽에 검은 주근깨가 숭숭하다 수술실에서 나올 때 흐느끼는 내 어깨를 말없이 안아주던 너 칼자국 지나간 몸 더 거칠어가는 줄 모르고 바깥으로만 바깥으로만 떠돌던 날들이 있었는데 날을 세운 불빛에 움찔거리는 애벌레처럼 허둥거리는 한때 빈속에 쟁인 울음이 아리디 아린 향을 타고 흘러나온다
▷ 하느님이 천사들과 동네 마실 길을 나섰다 모과나무 아래서 멈췄어요. “모과가 노랗게 익어서 떨어졌어요. 때깔도 예쁘지만 향기가 정말 은은하지 않아요? 한 자리에서 요가하듯 하늘과 땅과 한 몸이 되어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만들어 냈어요.” 세실리아 천사가 말했어요. “나무의 열매라는 말은 ‘열’이라는 숫자를 뜻하는데, 열은 한자로는 ‘십(十)’이라고 하죠. 십은 음(一)과 양(?)이 합쳐진 글자로, 완전한 모습을 뜻하는 ‘열매’입니다. 천주교나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十)도 신을 상징하지요. 완전한 숫자 10(十)과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를 ‘서낭당’으로 부르며 신전으로 섬긴 조상님들의 지혜가 새삼 놀랍지 않나요?” 마르첼리나 천사가 말했어요. “나무야 말로 신의 또 다른 이름이에요. 사실 우리가 먹고 있는 것들은 모두 생명이 깃든 것이죠. 생명의 탄생은 음과 양의 신비로운 결합이며 완전한 신의 결실이죠. 이런 의미에서 ‘먹는다’는 것은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죠. 살아있는 완전한 신과 같은 생명체를, 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죽여서 내 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은 신의 거룩한 뜻이라고 여기며 밥 한 술을 뜨다보면 내 생명이 얼마나 완벽하고 귀한 것인지 알아야하겠죠? 먹을 ‘식(食)’이라는 한자(漢字)도 ‘십(十)’이라는 한자와 같은 뜻에서 나왔다고 해요. ‘열매(十)’를 ‘따 먹다(食)’가 ‘ㄱ’ 받침과 ‘ㄷ’ 받침이 한글 자모의 같은 입성(入聲)으로 ‘십(十)=식(食)’처럼 같은 의미인 거죠.” 마리아 룻 천사가 말했어요. “우리 몸처럼 언어의 진화도 똑같은 세월을 지나며 생명체처럼 살아왔어요. ‘나무’라는 말도 ‘나’는 ‘없다(無=없을 ‘무’)’라는 말에서 ‘나무’가 되었다고 해요. 나 자신을 위해 한 자리에서 기도하는 자세로 온 힘을 다해 자라다가, 모든 것을 다른 생명체를 위해 바치는 ‘내가 없는 존재’가 바로 ‘나무’라는 거죠. 다른 생명체가 완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보살…’이라고 주문을 외울 때, ‘나무’라는 말을 붙이는데, ‘나무’는 ‘관세음보살이 되기를, 아미타보살이 되기를…’하며, ‘거룩한 신과 같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으로 쓴다 하니, 나무 한 그루, 풀 한 송이를 하느님 대하듯 해야 되지 않겠어요?” 마리아 룻 천사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으시던 하느님이 엄지를 척 들어 올렸지요.
▷ 어제 전국 연합모의평가를 치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또 새로운 오늘의 태양이 떴습니다.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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