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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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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나온 편지132(20241008)
작성자 송창우 등록일 24.10.07 조회수 10
첨부파일

제나온 백서른두 번째 편지, 2024108일 화요일에

 

옹이 / 류시화

 

 

흉터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이것도 꽃이었으니

비록 빨리 피었다 졌을지라도

상처라고 부르지 말라

한때는 눈부시게 꽃물을 밀어올렸으니

비록 눈물로 졌을지라도

 

죽지 않을 것이면 살지도 않았다

떠나지 않을 것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침묵할 것이 아니면 말하지도 않았다

부서지지 않을 것이면, 미워하지 않을 것이면

사랑하지도 않았다

 

옹이라고 부르지 말라

가장 단단한 부분이라고

한때는 이것도 여리디 여렸으니

다만 열정이 지나쳐 단 한 번 상처로

다시는 피어나지 못했으니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류시화 엮음, 오래된미래, 2005 

 

 

하느님이 천사들과 숲으로 산책을 갔어요. 나무들로 빽빽이 차 있는 숲속에 들어서 모두들 낯꽃이 피어났어요. “우와, 나무들 곁에 있으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죠?” 하느님이 두 팔을 쫙 펴고 입을 크게 벌리며 심호흡을 했어요. 세실리아 천사가 하느님처럼 따라하다가 말했어요. “나무는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불평하지 않잖아요. 내가 앉은 자리가 꽃방석이고, 내가 누운 자리가 꽃이불이고, 내가 서 있는 자리가 꽃대궐이라 생각하며 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만족하는 삶을 살지요. 바람이 불고 눈비가 오고 주변에 끔찍한 사태가 난다 해도 이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사시사철을 견디며 자신의 삶터를 지켜내는 거죠. 믿음직한 나무를 보고 날짐승도 길짐승도 나무 곁에 머물며 함께 지내는 거 아니겠어요? 지친 생명들에게 쉼터를 만들어주고 새 힘을 솟게 하는 것은 난관을 이겨낸 나무의 보람이기도 하지요.” 도토리가 달린 아름드리 굴참나무를 두 팔로 안고 있던 마르첼리나 천사가 말했어요. “나무 아래를 걷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지혜가 샘처럼 솟아오르기도 하지요. 나무는 한 자리에서 요가를 하듯, 명상을 하듯 신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렇게 모아놓은 아름다운 언어와 신령스러움으로 가득 찬 가슴을 열어서 나무 아래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낱낱이 쏟아 부어준답니다. 그러니 숲에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인이 되고 신선이 되고 때로는 요정이 되는 것이죠.” 춤추듯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몸을 흔들거리던 마리아룻 천사가 말했어요. “나무를 가만히 바라보면, 두 팔을 벌리고 만세를 부르는 사람의 모습과 닮지 않았나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세를 외치며 기뻐할 만하다는 것을 나무가 가르쳐 주는 것 같지 않아요? 뿌리를 땅 속에 박고, 줄기를 지상에 세우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는 나무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모아놓은 천지인(天地人)의 모습이기도 하답니다. 공자는 나무를 사랑[=]에 비유했고 노자는 나무를 도()에 비유했지요. 나무는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사랑의 참모습이고, ()는 나무처럼 꾸미지 않은, 스스로 존재하는 신과 같은 자연(自然)이란 뜻이지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사랑을 구걸하지 않고 스스로 사랑이 되어 다른 생명들을 불러들이는 나무야말로 신의 다른 모습 아닐까요?”

 

 

시험 치르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내일(109, 수요일)578 돌 한글날로 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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