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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학년도 독서에세이쓰기 우수작
작성자 남효 등록일 24.09.30 조회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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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30.홈페이지게시+독서에세이쓰기

2학년 이OO 

<독서 에세이 '제목'>
갈등에 대한 세계의 해결방법

<독서 에세이 '내용'>
나는 매점에 갈 때마다 수없이 고민을 한다. 대체로 어떤 간식을 골라야 가장 만족도가 높을지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평소 하도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끝없는 고민을 한다. 나같은 사람이 한 둘일까. 우리 모두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많은 고민들을 해 왔을 것이고 지금도 고민 중이며 앞으로도 셀 수 없이 많은 고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나의 인생을 위한 혼자만의 내적 갈등도 넘쳐나는 인생인데, 사람이 둘만 있게 되어도 갈등이 생기게 되고 갈등이란 건 어느 조직에서도, 사회에서도, 국제 관계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당장 뉴스만 틀어도 갈등으로 인한 문제 상황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조직 내에서는 모두가 조직의 성공을 위하지만 그 안에서 진행 방향에 대한 가치관이 충돌하고, 사회에서는 주로 소수자와 비소수자 집단의 갈등, 노사 갈등, 혹은 정부와 국민 간의 갈등 등이 있다. 국제 관계에서도 여러 국가가 추구하는 바가 상충하고 이 문제가 심해지면 폭동이나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 갈등이란 건 참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갈등이 모순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의 입장에선 상대방이 이해하기 힘들지만 반대편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각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나의 가치관, 어느 조직의 가치관, 국가의 가치관 모두 확고한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있고 때문에 어느 정도에 양보가 필요한지 서로 협력하는 것은 많은 노력, 인내,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조직에서 사회에서 그리고 국제 관계에서 갈등에 대해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 보고자 한다. 그저 책을 읽은 후 내가 느낀 바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시각으로 갈등을 바라볼 수도 있구나하고 가볍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조직에서의 갈등 부터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내가 읽은 책은 리더로서 조직을 다루는 것에 관련된 책이다. 이중에 인상깊었던 하나의 일화가 갈등 상황과 관련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 브레네 브라운은 ‘리더십’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와 톨찰을 한 사람이다. 그가 한 조직의 대표였을 때, 조직의 목표를 위한 연별,월별 계획을 짤 때 현실성 없이 무작정 빡빡한 일정을 짜는 바람에 조직원들이 너무나 고됨을 느꼈고, 대표인 브레네 브라운을 제외한 팀원들끼리 합의하에 특별한 제의가 없는 날 1시간의 회의를 하자고 브레네 브라운에게 요청을 했다. 그들은 대표인 브레네 브라운에게 현실성 있는 시간표를 요청했다. 본인만 생각을 하느라 남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못한 브레네 브라운은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그들의 입장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 우선 알겠다는 대답을 했고, 팀원들은 그녀에게 실망했다. 그녀가 한 말은 그저 “앞으로 노력하겠다.”에 불과했기 떄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팀원들의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물었다. 그후 그 화두에 대해서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여기서 내가 배운 점은, 꽤나 의견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짧은 휴식시간은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화를 통해, 아 조직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수직관계에서 비교적 불리한 계급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는, 굉장히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실천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야기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팀을 이끄는 입장에 있고 결정권을 가진 사람의 헤아림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옛부터 뿌리가 내려오고 있는 공공기관,기업 등은 당연하게 수직적 상하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고,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더욱 어려울 것이고 가능성도 희박할 것이다. 관료제의 역사를 가진 여러 사회조직들이 그 뿌리인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은 미지수이지만 어쨌든, 조직 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정권자의 이해심과 헤아림, 서로 간의 적절한 타협이 중요하다.
  다음은 사회에서의 갈등 상황이다. 이때 읽은 책은 “판결과 정의”라는 책이다. 사실 명확하게는 헌법에서 갈등 상황에서 우선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구절은 머릿말에서 찾을 수 있었다. “법률은 역사의 영향을 받아 기본적으로 위계질서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라는 구절이었다.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여기서 위계질서란, ” 합리적/불합리적. 능동적/수동적, 문명/자연, 규율화됨/개별화됨, 사고/감정“과 같이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요소에 토대를 두고 이원론적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 두 요소의 관계를 보면 계층화 질서를 반영하고 있다. 법은 기존 질서를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원론에 토대를 둔 게층화를 긍정하는 한, 법질서도 이원론에 의한 게층화 질서를 지키려는 이념과 방향을 나란히 하는 것이다. 대립적인 두 요소를 나누는 것. 대립되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건 언제나 갈등을 동반한다. 이 책에서는 한 가지 일화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바로 가부장제 이야기이다. 가부장제는 농업사회의 특성에 의해 발달되었고, 수천년간 지속되었다. 산업사회에 이르러 제도적 차원에서 양성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추세가 되었다. 여전히 경제성장 속도가 느린 선진국 사람들보다 경제성장 속도가 빠른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부의 수직적 계층화에 관대하다. 수직적 계층화가 강고히 남아 있고 그에 비례하게 불평등도 큰 변화는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시대의 가치를 중시한다. 과거 농업사회에서는 평화를 위한 가부장제가 중시되었던 것이고, 이제 산업사회에는 평등이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양성평등이 실현되고, 이에 따라 가부장제도 많이 사라진 추세이다. 헌법상으로는 그렇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막연하게 가부장제의 형태가 남아있고, 그러한 고정관념이 없어졌다고 할 수 없다. 헌법상으로는 사라진 가부장제를, 우리 사회구성원은 여전히 중시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농업사회부터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 가치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헌법은 효율을 추구하며 지워버린 가부장제, 우리 사회구성원은 이제 산업사회를 받아들이고 농업사회에서 효율적이었던 가부장제의 흔적을 지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국제관계 간의 이야기이다. 요즘 화두 중 하나인 중국과 주변 아시아국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한다. 이 문제 역시 관점의 차이이다. 서로 생각하는 바가 상충한다. 먼저 중국 관료들은 당국이 놀라운 정도의 자제력을 보이고 갈등을 피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믿는다. 반면 주변국은 중국이 상호 간에 유익한 협력,항해의 자유,정치적 조화라 해석하는 것들이 그다지 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책에서는 말한다. 갈등을 해결할 수 없을 때 극복할 수 있는 척을 하면 안된다고 말이다. 핵심 이해 관계에 대해 상호 간 타협하려는 태도는 평화 유지에 대한 필수 요소이다. 또한 신뢰구축,대화, 경제적 상호의존에 대한 집착도 갈들을 부르는 역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한다. 중국과 주변국 사이 안보딜레마가 있더라도, 두 국가가 진정 방어적 현실주의를 추구한다명 진실하게 정의로운 의도를 드러내고 불화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푸단대학교의 교수인 탕시핑 교수가 말했다. 중국에게는 무역의 증가와 평화로운 관계 유지가 필요하다. 주변국에는 보장된 안보가 필요하다. 중국은 이제 무역의 영향력이 커져서 마냥 전쟁을 하거나 주변국을 강압적으로 대하는게 쉬운 위치가 아니개 되었다. 주변국과 중국 사이 관계에서 갈등은 역사적으로 갈등의 깊이가 오래되었고, 이 갈등관계에 무역의 힘이 커진다면, 그리고 중국이 바라는 또 한 가지,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에 미치는 영향력이 조금 약해진다면 그들의 이해관계가 어느정도 맞춰질 수 있을까 싶다. 사실 국제 관계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은 세발의 피도 안되며 극히 일부 조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불가하다. 다만 위 사례를 통해 나는 우리 입장에서 이해가 안되는 것을 추구하는 국가이더라도, 그에 대해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 나라의 입장에서 이해를 해 보고 우리 입장에서 통찰적으로 그 나라와의 협의점을 바라본다면 갈등이 조금 원만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너무 터무니없고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는 것은 논외이다.)

  지금까지 세 권의 책에서 나타나는 각기 다른 갈등 상황에 대한 고찰을 이야기해보았다. 사실 갈등이란 걸 해결하는 방법은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서로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며 타협한다는 것. 그걸 아는 우리가 모두 그걸 실청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 이야기를 통해, 갈등이란 건 어느 개인,조직,사회,국제관계에서나 존재하는 것이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약자의 입장을 헤아리고 효율을 따지고, 서로간의 이익 추구와 동시에 최선의 협의점을 찾아보는 것이다. 갈등은 끝없이 발생하지만 모두가 갈등을 통해 얻을 이익보다는 그 갈등을 해결함으로써 발생할 평화와 같은 긍정적인 결과를 추구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을 가지고, 어쩌면 조금 뻔했지만 중요한 삶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1학년 오OO
<독서 에세이 '제목'>
발상의 전환

<독서 에세이 '내용'>
무한, 점, 직선 등의 용어들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단어들이다. 하지만, 각각의 용어들에 대해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에서 벗어나 굉장히 재미있는 발상을 해 볼 수 있다. 가령 무한을 예로 들자면, 0.9999...를 ‘9가 계속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 수는 절대 1이 될 수가 없다. 하지만, 9가 이미 무한개 있다고 보면 이 수는 1이 된다. (참고로 0.999... 는 1이다) 또한, 9가 1억개 있는 수를 0.999...9라고 표현하면 (1-0.999...9)분의 1이라는 수는 엄청 큰 수로, 존재하는 수이다. 하지만, 0.999...이라는 수를 소수점 아래 숫자가 무한개라고 보면, (1-0.999...)분의 1은 0분의 1이 되어서 아예 인정하지 않는 수가 되어 버린다. 이처럼 ‘무한’ 의 정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결과값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이처럼 나는 수학은 당연해 보이는 것들에 의문을 품음으로써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발상의 전환’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수학을 배울 때 우리는 보통 점, 선, 면을 아무 생각없이 당연하듯 지정하고, 사용하며, 그것을 이용하여 수학 문제를 풀어나간다. 나는 수학을 풀며 가끔 이러한 상상을 한 적이 있다. ‘문제를 풀기 위하여 점 2개를 종이에 찍었는데, 이 두 점을 크게 확대하면 과연 이 점은 ‘점’일까, 계속 이렇게 확대하여 더 작은 점을 찍다 보면 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에 대하여 다빈치는 점을 높이, 길이, 넓이, 깊이를 가지지 않으며 나눌 수도 없고 차원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는 직선에서도 발생한다. 직선이란 끝이 없고 길이도 넓이도 없어야 하기 때문에 종이에 그은 직선은 실제로 ’직선‘ 이 아닌 것이다. 이 직선에 대하여 좀 더 발전시키면 평행선 공리로 이어질 수 있다. 평행선 공리란 어떤 직선 a가 있고 그 직선을 지나지 않는 점 o가 있을 때, 그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 b는 단 하나라는 것이다. 당시 이 평행선 공리는 ’공리‘, 즉 사람들의 이성이 개입하기 전부터 참이었고 모든 참인 명제 중에서도 뿌리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이 공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 사람들은 새로운 이론을 생각해낸다. 여기에서 평행선 공리는 흔히 우리가 수학 교과서에서 배우는 기하를 뜻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발상을 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며, 평평한 공간 외에 광활하고 휘어진 공간을 상상한다.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생겨난 배경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자. 유클리드 이휴 2000년 넘게 많은 사람들이 평행선 공리가 진짜 공리인지 증명하기 위해 그들의 생애를 바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했다. 실패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바로 '평행선 공리보다 더 당연한 공리'로 평행선 공리를 증명하려고 힘쓴 것이다. 하지만, 결국 평행선 공리로 그들의 공리가 증명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들이 새롭게 도입한 공리가 평행선 공리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보여이'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평행선 공리를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증명하려고 하지도 않고, '무에서 시작' 하여 새로운 기하학을 창조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 러시아의 로바쳅스키도 평행선 공리에 대해 독창적으로 해석한다. 그는 '유일하게 하나의 평행선만 있다'라는 사실이 참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평행선 공리를 버리는 것뿐만 아니라 평행선 공리와 충돌하은 가정을 제시한다. 나는 이 발상이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직선과 그 직선을 지나지 않는 점이 있을 때 그 점을 지나면서 그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이 1개가 아니라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원래 있는 직선을 a, 그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을 b라 하면 b가 조금만 회전하면 a랑 만나지 않을수도 있다. 직선 b가 a와 닿을듯 말듯 뻗어 나가지만,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a와 b가 만난다고 정의를 해버리면 안 된다는 내용이다. 유클리드 기하학에 더불어 로바쳅스키 기하학도 완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결과는 모든 공간을 설명할 절대적인 기하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따라 상대적인 기하학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상은 모든 직선은 서로 만난다는 이론으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 리만 기하학인데 구의 형태의 동그란 평면을 생각해보면 어떤 직선이라도 극에서는 모두 만나게 된다.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보면 왜 이런 실생활에도 쓰일 수 없을 것 같은 상상을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작가의 말에 공감이 간다. "그런 논리적인 생각이 재미있어서이다. 게다가 그것이 진리에 더 가깝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수 수학은 쓰임이 없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수많은 화가, 건축가, 과학자들에게 수학은 큰 영향을 끼쳤으며, 앞서 말한 리만 기하학은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앞서 제시한 학자들의 이론에 대해 읽다 보면 시스템 안에서 문제가 있는 요소를 찾아내려고만 하는 대신 전체적인 시스템 자체에 오류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게 해준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지 않는지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난 궁금한게 많았다. 그래서 무엇이든 배우는것을 좋아했고, 배우는 중에 모르던 것들을 알아가는게 즐거웠고, 거기에서 더 깊은 궁금증이 생기는 것 또한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책을 읽으며 인류는 질문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어려서 부터 배워온 고정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엔 고민할 이유가 없어서 이유를 알 수도 없는 당연한 현상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세상엔 당연한게 없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쉽게 지나치는 사물의 모습과 형태들, 자연의 섭리들, 인간의 행동 패턴들 어느것 하나 당연한게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고정된 시각과 당연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를 바라보며 역사를 바꾸는것은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수학자, 과학자, 공학자 들도 사소한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구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것이다. 그 질문은 어쩌면 유치원생들에게도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과나무 아래에서 당연히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발상의 전환을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을 생각해냈던 뉴턴처럼 나의 사과는 어떤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올지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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