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 |
|||||
---|---|---|---|---|---|
작성자 | 김용언 | 등록일 | 20.06.10 | 조회수 | 280 |
제목 : 약속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 본문 :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1:4)
# 약속의 소중함 : 영상(3분)
약속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덟살 된 딸아이의 생일에 인형과 케이크로 생일을 축하해 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아빠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서, 약속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는 얘기를 영상을 통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약속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약속은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맺은 약속은 반드시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옳은 것입니다.
여러 과목 중에 제일 어려운 과목이 무엇인가요? 목사님은 어렸을 때 역사가 재미가 있었어요.
어떤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저는 역사가 제일 어렵고 싫어요.”라고 얘기하는 친구도 있어요, 또 어떤 친구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특정한 과목이 어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어렵게 생각이 되는 수학이라고 하는 과목은 어찌 보면, 애정남(애매한 것들을 정해주는 남자)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약속”과 같은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수학은 하나의 “약속의 학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논리적으로 모순이 되지 않는 약속 체계를 만들 수만 있다면 수학은 그것으로 충분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은 ‘누구다’라고 법적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이름은 바로 그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여럿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을 분별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이 있지 않습니까? 주민등록증이 그게 아니겠어요. 이 모든 것들이 다 약속들이에요. 나라의 법도, 규칙도, 법규도 다 약속이에요.
우리가 ‘사과’라고 부르는 과일도 반드시 사과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불리는 것이 ‘사회적 약속’이고, ‘언어적 약속’이듯이, 수학도 하나의 ‘약속의 학문’인 것이에요.
다시 말하면, 수학은 수많은 약속들에 기초해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약속 위에 하나하나 쌓아올린 학문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약속이 깨지게 되면 수학이 더 이상 존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이것을 아는 수학자들은 수학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수학을 지켜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수학자들을 ‘약속 공동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해진 약속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뭐라고 하는가? 바로 “제자”라고 불러요.
그런 의미에서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이나 공동체의 약속을 매우 소중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그 스승의 가르침이나 공동체의 약속을 함부로 바꾸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이 깨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때에 따라서는 세상을 얼마든지 혼돈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약속의 소중함을 알고, 약속을 지킨 가정부를 보면서 자란 한 소년이 나중에 훌륭한 교육자가 된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전 세계인이 존경하는 스위스 교육자가 있어요. 루소의 영향을 받아서 고아와 아동 교육을 위해 자신의 생애를 바친 인물인데, 근대 유럽 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아주 훌륭한 교육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바로 페스탈로치라는 사람입니다.
이 페스탈로치는 참~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페스탈로치의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돈을 버는 것보다는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항상 우선하다 보니까 집안 사정이 썩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더군다나 페스탈로치의 아버지는 페스탈로치가 5살 때 중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페스탈로치의 아버지는 자신이 죽게 되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너무 걱정이 된 것입니다. 생전에 의사였지만 돈을 많이 모아 둔 것도 아니었구요. 가족들에게 유산을 남겨줄 수도 없는 가난한 형편이었기 때문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남아 있을 가족들이 너무나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페스탈로치 아버지는 자신의 임종을 위해 가족들이 모였을 때 그는 힘겨운 목소리로 가정부에게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가정부의 이름이 “바아베리”였는데, “바아베리! 내 가족들을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돌봐 주었으면 감사하겠네.” 가족들을 잘 돌봐줄 것을 부탁한 거예요.
바아베리는 꼭 그렇겠다고 약속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약속이 계속 지켜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가장의 죽음으로 인해서 그나마 적었던 수입마저 모두 끊어진 상황에서 아직 젊은 가정부 바아베리가 자신을 희생해가면서까지 페스탈로치 가족들을 계속적으로 돌본다는 것은 결코 그렇게 쉽지 않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고 페스탈로치 가족마저도 그 약속을 결코 지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에요. 하지만 바아베리는 장례식이 끝난 이후에도 페스탈로치의 가족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일하면서 남아 있는 가족들을 정성껏 보살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타인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는 바아베리의 모습을 보면서 페스탈로치가 성장을 하는데, 그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바아베리의 모습은 페스탈로치의 마음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사회는 타락할 때로 타락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페스탈로치는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비록 사회는 타락했지만 바아베리처럼 훌륭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많이 있을 것이야. 나도 어른이 되면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면서 살 것을 다짐을 합니다.
그렇게 자라난 페스탈로치는 어려운 아동들을 위한 교육 개혁에 일생을 바치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교육자로서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페스탈로치(1746년~1827년)가 살았던 당시 사회는 자기 자신의 이득과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떤 약속도 쉽게 저버리는 이기주의가 팽배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바아베리가 주인과 맺은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의 소중함을 알고, 꿋꿋하게 그 약속을 지킨 바아베리와 같이 약속을 지키면서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바르게 움직여가는 것입니다.
에머슨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약속 가운데 최고의 가치를 지닌 약속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성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크게 두 개의 성경으로 나누어지지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구약이라는 말의 뜻은 옛 약속, 옛 언약이라는 뜻이구요. 신약은 새 약속, 새 언약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옛 언약이라는 것인가? 구약은 무슨 내용으로 가득하냐면, 장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어요. 죄로 인해 지옥 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너희들을 구원할 메시야를 보내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이구요. 옛 언약, 옛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그니까 구약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신약은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오실 메시야가 오셨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약은 오신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내용으로 꽉 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성경은 약속의 책이구요.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세요. 성경에서 맺은 약속을 하나님은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세요.
이렇게 성경의 약속이 가진 “보배롭고 지극히 큰 가치”를 제대로 알아 본 사람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에요. 예수를 믿으면 구언을 반드시 얻게 된다는 말씀이죠. 이것이 약속이에요. 그리고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그것이 진짜 약속이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다면 그것을 약속이라고 하지 않죠.
약속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어기지 않을 것을 다짐함”을 약속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금 말씀드렸듯이,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이나 공동체의 약속을 아주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 것처럼, 우리가 성경의 약속을 믿는, 그리고 우리의 스승 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는 제자들이라면 어떻게 해야 옳다는 것입니까?
성경의 약속대로 살면서 세상을 아름답고 깨끗한 세상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옳다는 얘깁니다.
오늘 말씀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랬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보배로운 큰 약속을 주셨는데, 여기서 보배롭운 큰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영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나를 지켜내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가지고, 세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되면, 우리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다 그랬습니다. “신성한 성품에 참여한다”는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마칩니다. 바라기는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성경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 약속을~ 믿음으로 지켜내기 위해서 늘 죄악을 멀리하고, 늘 온유한 성품을 가지고 이 신흥공동체를 즐겁고 행복한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을 부족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주시고, 그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게 해 주셨습니다.
원하옵기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늘 죄악을 멀리하고, 성경의 약속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늘 스승이 되시는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고, 그리고 또 온유하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내가 속한 신흥의 공동체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공동체로, 행복한 공동체로 만들어 가는 훌륭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이전글 | 삶의 지혜 |
---|---|
다음글 | 마을을 보시는 하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