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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의 현장, 군함도(하시마)
작성자 *** 등록일 25.12.22 조회수 7

* 영화 군함도 소개

영화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들에 대한 강제노역과 수탈, 인권탄압을 다룬 영화로 2017년에 개봉되었다. 영화 군함도의 명대사 중 하나는 “한 명이라도 살믄 우리가 이기는 거여.  단 한 명이라도.”를 꼽을 수 있다.


* 생각할 거리: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가 역사와 사회에 어떤 의미를 남길까요?

 


  하시마(端島) 섬은 처음부터 석탄을 채취하기 위해 개발됐다. 섬이 군함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군함도라고도 불린다. 하시마 탄광은 지하 1km가 넘는 해저 탄광이다. 일제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800여명의 조선인들은 이곳에서 배고픔과 위험 속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채탄 작업에 시달렸다. 이중 질병, 익사, 탄광 사고 등으로 확인된 사망자만 122명에 달한다. 2015년 7월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이 신청한 하시마 탄광 등 23개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를 최종 결정했고 한국 등 주변국들은 반발했다.

  하시마 탄광은 지하 1km가 넘는 해저 탄광이다. 탄광 안은 좁고 온도가 45도를 넘었고 유독가스가 수시로 분출되기도 했다. 작업 도중 해수가 갱내로 쏟아져 들어오기도 했다. 육지 탄광에 비해 채굴조건이 매우 나빴다. 조선인들은 일제의 석탄 증산요구에 따라 배고픔에 속에서 하루 12시간 동안 채탄 작업에 시달렸다. 이같은 혹독한 자연환경과 노동조건 탓에 '감옥섬'으로 불렸다.

  하시마 탄광에서 조선인 노동자의 존재가 처음 확인된 것은 1917년이다. 개발사인 미쓰비시는 탄광노동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각지는 물론 조선인도 모집했다. 1918년 하시마에서 941명이 갱내부에서 광부로 일했고, 이중 70명(7.4%)이 조선인이었다. 1935년 3월26일 하시마 탄광의 갱내 가스 폭발로 20명 이상의 광부가 사망한 큰 사고가 발생했다. 출신지가 공개된 사망자 17명 중 조선인 노동자는 절반이 넘는 9명이었다.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총동원체제를 가동하면서 하시마 탄광의 조선인 노동자의 수도 해마다 늘어 패전 직전인 1944년 800여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은 비인간적 환경에서 고통을 겪었으며, 외부와도 철저히 격리된 채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122명이 숨졌다. 사망 원인은 악조건 속에서 제대로 먹지 못하며 장시간 노동을 해 영양부족 때문에 생겼을 것으로 보이는 질병, 도망치다 바다에 빠진 것으로 추정되는 익사, 그리고 질식·탄광사고 등이었다.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온 생존자들은 “갱도 안은 서지 못할 정도로 좁고 온도가 45도를 넘었다. 노역 중 돌이 떨어져 머리가 찢어지거나 이따금 떨어진 돌에 맞아 사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쉴 시간은 몇 분 주지 않고, 심하게 매질을 할 때가 많았다”, “탄광이 무너지는 사고가 잦아 죽는 사람이 많았다. 많은 사람이 도망가려 했지만 대부분 잡혀와 심한 고문을 당했다” 등의 증언을 했다. 하시마 탄광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 중 일부는 원폭피해를 입은 사례도 있었다. 일본은 하시마 탄광을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지만 강제 노역과 수탈, 인권 탄압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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