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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세계로, 가슴엔 꿈' 안고 세계로 웅비하는 익산고!

제1편 태동기
이사장 사진 익성학원(益城學園)이 유서 깊은 마한 백제(馬韓·百濟)의 고도인 역사의 고장, 익산(益山) 금마(金馬), 사철 송죽(松竹)의 푸르름 속에 둘러싸인 금마산 중턱에 건학(建學)의 뿌리를 내린지 어언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해방 후, 조국광복의 혼란기 속에서 고(故) 익성(益城) 지태순(池泰淳) 선생께서는 일찍이 육영에 뜻을 두고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교육에 있음을 역설하시며 당시 어려운 농촌의 경제 사정으로 배우고 싶어도 향학의 꿈을 접어야 하는 만학도와 향민 2세의 안타까운 현실을 통감하고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1948년 4월 11일 학교 설립을 위한 기성회를 조직하여 그 해 8월 16일 익산중학원(益山中學院)으로 인가를 받아 9월20일 128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개교와 입학식을 가졌습니다. 이 날이 익성학원의 개교기념일이 되었습니다.

1950년 6, 25의 전란 속에서도 휴교와 해제를 반복하면서 육영(育英)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1951년 6월 29일 재단법인 익성학원 설립 인가를 받고 익산중학원에서 정규 6학급인 익산중학교(益山中學校)로
승격 되어 드디어 1951년 제1회 졸업생 54명을 배출하였습니다.
설립자 고(故) 익성 지태순 선생은 근검(勤儉)과 석복(惜福)을 삶의 본으로 삼고 진토태산(塵土泰山)을 이룬 분입니다.
국난(國難)의 참화(慘禍) 속에서도 1953년 8월 30일 익산중학교 본관 8개 교실을 준공하였지만 농촌학생들이 수업료를 못내 중퇴하는 자가 많아 재단의 어려움이 가중되어 교직원 인건비는 물론 학교시설 운영비까지도 설립자 이사장님께서 사재를 털어 학교를 유지 경영하였습니다.

 
옛 중학교 모습 사진 익산중학교는 다른 농촌학교에 비해 교육환경이 우수하고 진학률이 뛰어나 지역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1962년 12월 18일 9학급의 학급 증설과 함께 특별교실 6개 교실이 완공되어 학교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초등학교 취학 아동이 늘어날 때 정부는 수용 능력이 부족하여 사립국민학교 설립을 권장함에 따라 1964년 2월 28일 익산국민학교(益山國民學校)를 개교하여 1969년까지 운영함으로써 교육열이 강한 부유층 학부모의 욕구에 부응하기도 하였습니다.

익산중학교가 지역학교로서 위상을 다져나가자 지역민들은 대학 진학을 위해 농촌실정에 알맞는 고등학교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이 바람을 적극 수용하여 설립자께서는 1965년 1월 7일 학교법인 익성학원으로 조직을 변경 개칭하여 동년 12월 31일 익산고등학교 3학급 설립 인가를 받아 이듬해인 1966년 3월 5일 익산고등학교(益山高等學校)를 개교하였습니다.
 
옛 중학교 모습 사진 1964년에서 1969년까지 5개년간 익성학원은 익산국민학교, 익산중학교, 익산고등학교 3개 학교를 경영하였는데 교장으로 (고) 소병돈 선생님이 겸직하셨습니다.
1970년 3월 1일 익산중학교가 12학급으로 증설되며 중·고가 상호 병행할 수 있는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 7월 10일 불의(不意)의 화재로 본관 8개 교실이 전소(全燒)되는 비운(悲運)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실로 재기 불능한 처지에서 각지의 성금이 답지하고 지원이 있었지만 감히 화재 복구는 꿈도 꾸지 못할 때에 설립자 이사장님께서 단독으로 사재(私財)를 헌납하여 그 해 12월 12일 끔찍한 시련을 딛고 12개 교실을준공하여 새교실에 입실하는 기쁨을 누렸지만 설립자의 고충은 말할 수없이 컸습니다. 실로 가시밭길을 헤쳐온 세월이었습니다.
이 역정의 세월 속에 1971년 빨간 벽돌로 단장한 익산중·고등학교는 본관 증축과 익성당, 가사실 등 부속 건물 시설을 확장하고 아늑한 교육 환경을 새롭게 꾸며 정상적인 학교모습을 갖춘 향토학교로서 첫출발을 내딛었습니다.
 
학교 설립 초창기의 고난과 뜻밖에 당한 화재의 난관을 무릅쓰고 익성학원을 다시 일으켜 세운 익성(益城) 지태순(池泰淳) 선생은 1979년 9월 21일 향년 78세로 천수(天壽)를 다하셨습니다.자립, 단결, 봉사의 교훈아래 임사이중(臨事以中)과 대인이정(對人以正)의 건학이념을 교육의 지표로 삼고 익성학원을 설립하여 30여 성상(星霜) 육영에 전념하여 전북지사로부터 '전북의 별'과 한국사학재단에서 특별공로상을, 그리고 국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의 육영사업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90년 총동창회에서는 설립자의 숭고한 건학이념(建學理念)과 창학정신(創學精神)을 영원히 기리고자 동문들과 지역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익성기념관 앞에 익성 지태순 이사장 동상을 건립하여 해마다 추모행사를 갖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