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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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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6월
작성자 전주예술중 등록일 23.06.29 조회수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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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6월

 

길동이가 몇 명이나 나타났지요?

여덟이요?

그래 팔도에서 하나씩 나타났대.. 여기서 잠깐! 팔도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볼까?

칠판에 지도를 쓱쓱 그리려 하니

한녀석이 우리나라 지도가 있다고 알려줍니다. 칠판 양옆으로 밀었다 넣었다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칠판이 있습니다. 

격자무늬와 지도가 하나씩 있습니다. 지도가 있는 칠판을 꺼내 휴전선을 북 긋고, 덩어리 덩어리 뭉쳐서 각 도를 표시합니다.

그리고 남도와 북도를 표시합니다. 시간이 바뀌어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없었던 행정구역 명칭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전라도니?  

전주와 나주를 한 글자씩 따서요.

와..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별별 것을 다 알려주시는구나.

아니요. 아버지랑 여행다닐 때 옆에서 아버지께서 툭툭 던져주시는 말씀들을 기억하는 거에요.

아. 아버님 멋지시다. 

..

 

저희 홍길동전 수업은 요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고전소설이 별로 재미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너무 유명하다보니 다들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저의 강의 전달력이 별볼일 없는 것인지.. 똘망똘망한 눈망울의 아이들에게 뭐라도 기억에 남는 수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마카펜 뚜껑을 닫는데 한 녀석이 쓰윽 교탁앞으로 나옵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안경을 낀 그 아이는 제가 가지고 있는 마카펜을 달라고 하더니 팔도를 표시했던 그 지도칠판에 쓱쓱 이빨과 당근 한 자루 툭 그려넣어 순식간에 어흥 호랑이 지도를 냠냠 당근을 먹으려하는 토끼지도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와~~ 멋진걸.. 우리나라 도로들의 번호가 세로는 홀수 번호이고, 가로는 짝수번호이고, 맨 처음 휴게소가 어떤 휴게소이고 하는 것들을 열심히 적었던 그 바닥이 토끼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순수하면 많이 보이는가 봅니다. 교육자인 저는 우리나라가 어흥 호랑이의 기운을 받고 모진 세월 잘 견뎌내고 이겨내는 힘쎈 호랑이 기상을 지닌 멋진 나라. 그 나라가 지형에 잘 타나 좋은데 그것은 그것이고, 아이들 눈에는 호랑이가 몇 번의 터치로 토끼가 되니.. 그 순간의 재치에 감탄했습니다. 

 

학부모 공개수업의 날이 있었습니다. 배정받은 수업이 1학년 5교시였습니다. 원래 수업시간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간 교실은 뒷자리에 학부모가 배석해 계셨습니다. 열심히 호응을 해 준 우리 이쁜 학생들 덕분에 무사히 마쳤습니다.

 

졸업생이 찾아 왔습니다. 멀리 청주에서. 비가 살짝 내리는 운동장에서 그 아이와 함께 농구공을 잡았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본 그 공의 톡톡 튐이 좋았습니다. 마음은 3점슛이었으나 저의 능력은 올라가다 말았습니다. 그 아이는 그라운드에서 슛! 골인! 와~~ 함성과 박수와 하이 파이브!! 둘 뿐인 운동장이었지만 마음만은 그득했습니다. 오랜만에 잊지 않고 찾아와준 그 아이의 마음과 그 아이를 응원하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지만 그자리에 함께 했으리라 믿어봅니다. 그 아이가 흔적을 남겼습니다. 우산을 놓고 갔습니다. 잘 보관해 달라는 그 아이의 말에 이름표를 붙여 한켠에 딱 꽂아놓고 학생에게 인증샷을 보냈습니다.  

 

시험입니다. 떨려요~

하고 말하던 동그란 그 아이는 오늘 어떤 마무리를 할지 궁금합니다.

비즈공예 동아리 시간에 아이들이 만든 팔찌를 선생님들과 함께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담당 선생님의 애정 어린 마음이 아이들의 손끝에서 빛났습니다. 교무실서 아이들의 작품을 손목에 착용하고 인증샷을 한번 찍어 봤습니다. 반짝반짝 빛납니다. 

 

비가와서 우산이 교실 한 켠에 놓여 있습니다. 동글동글한 우산이 우리 학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바람입니다. 또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동그란 테두리안에 교장선생님 이하 여러 선생님들의 마음과 학부모님들의 지지와 격려로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꿈을 키워 나갈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우산아래 옹기종기 꿈이 커갑니다. 

 

답안지에 동글동글한 마킹이 정답과 오답으로 나뉠터인데 삶은 정답이 없어 다행입니다.

진주알 같은 아이들 눈망울에, 그 영혼에 선함이 깃들고 좋은 일들이 가득해지길 기원합니다.

 

비 그친 뒤의 청량함이 돋보입니다. 깨끗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좋은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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