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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도 외롭지 않다
작성자 8680 등록일 20.12.11 조회수 84

누런 봉투에서 이 책을 꺼내 마주하기까지 무려 나흘이 걸렸다. 생전 첫 수술을 받으시는 시아버님을 향한 주위의 걱정과 관심은 내 전화기를 가만두지 않았다. 코로나19는 네 자식의 발은 묶었지만 큰며느리를 붙잡기엔 역부족이었나 보다.

 

'외로워도 외로울 시간이 없네.' 푸념 섞인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이들 등교를 마치고 집에 온 나는 반나절을 날 위해 쓰기로 맘 먹었다. 책장 넘기는 소리가 지금 이 공간의 유일한 소음이었다. 마흔이 넘어서니 외로움이 싫다기 보다는 그 외로움을 곱씹을 시간이 없음에 더욱 화가 났다. 어쩌면 쉰 살이 넘어설 즈음에 또 한 번 변덕을 부릴지도 모르겠지만 갑자기 빨라진 인생의 속도에 적응이 필요한 요즘이다.

 

책에 발목을 적시고 무릎 언저리까지 빠져들 무렵, 전화벨이 정적을 깨고 날 흔들어 세웠다. 우리 엄마였다. 마흔 한 살에 혼자된 나의 노모였다. 막내딸과 또 한판한 모양인지 목소리가 안좋다. 평소엔 엄마편을 들어줬는데 그날따라 괜히 성질이 났다.

"엄마, 무릎도 아프담서..뭔 개를 또 주워다키워? 막내 시집 안 간다고 뭐라하지 말고...걔 시집가면 그 개들 누가 다 봐. 걔도 일 하고 오면 힘들지. 그니깐 짜증내는거지, 안그래?"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노모의 겸연쩍음이 날 울컥하게 했다.

"긍게. 갸 시집가면 어쩐다냐. 그래도 갸가 있어서 잘 버텼는디...개들 땜시 힘들긴 헌디 그래도 덜 외롭고 그랴. 엄마 혼자면 적적한디."

 

두 모녀가 '외로움'에 대처하는 방법은 너무 달랐다. 외롭고 싶어 안달난 사람 마냥 혼자 있으려 안간힘을 쓰는 딸과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엄마는 그랬다.

 

시 속에 누군가가 살아 온 흔적이 남아있다. 그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오롯이 나를 마주하는 찰나가 있기에 지금도 시를 읽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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