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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000km 너머의 빅 베이비 - 최하은

이름 최하은 등록일 14.11.18 조회수 750

380000km 너머의 빅 베이비

최 하 은

1.

─달에 가고 싶어.

하는 소리를 습관적으로 내뱉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B는 어릴 적부터 알기만 하고 지내던 사이였다. 그는 덩치는 산같이 큰 주제에 보들보들한 뺨과 아기처럼 순한 성격을 지닌 녀석이었다. B와 내가 본격적으로 말을 트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과학 발표 수업 때 같은 조가 되면서부터로, 그 때 우리 조의 주제는, B가 그토록 사랑하던, 달이었다. 그러나 나는 발표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B의 허무맹랑한 소망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했다. 내가 B의 입으로 그 말을 듣게 된 때는 그의 희망직업란에 당당히 자리잡은 우주비행사라는 글자를 본 이후였다.

─우주비행사?

하고 묻자 B는 머쓱한 웃음을 띄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언젠가 달에 꼭 가고 싶어, 하는 말을 슬슬 현실에 타협하기 시작할 나이의 놈의 목소리로 들은 것도, 그 이후에 B가 말하던 '달에 가기 위한' 꽤 구체적인 계획에 어안이 벙벙했던 것도 그 때였다. 사실 나는 그 당시 B가 가진 꿈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하는 것보다 내 나이 또래의 소년이 그토록 순수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을 말한다는 데 더 놀랐을 것이다. 공무원, 교사, 의사, 연구원, 판사……같은 직업이 불어넘치는 희망 직업들 사이에서 B의 우주비행사는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거 되게……

어려울 텐데, 하는 말은 삼켰다. 그건 내 의견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B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아무리 B가 성적이 좋고 열정이 뛰어나다 해도 우주비행사는 저 별들만큼 까마득한 거리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B는 당당하게, 이 땅바닥으로부터 힘껏 뛰어올라 별들 사이, 텅 빈 무중력 속을 유영하겠다고 말했다. 내게는 그것이 도저히 현실로 와닿지가 않았다. 그리고 B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는 듯 시선을 마주쳐왔다. 그래도 정말로 가고 싶어, 하고 입을 다물었다.

2.

B는 그 해 말에 이민을 갔고, 미국 고등학교를 거쳐 유명한 대학교에 합격했다. 연락을 해 보니 그곳에서도 나름대로 좋은 수확을 거두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뒤 다시 들려온 B의 소식 중에는 그가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는 것도 끼어 있었다. 중학교 시절 B를 알던 사람들은 군대 가기 싫었던 것 아냐? 했으나 나는 그 모든 것이 그저 달에 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B는 단지 그 어린애 같은 소망으로 유명 대학에 합격하고 인정받고 미국 시민권을 따내고 수많은 허들을 넘어가는 것이다. 바보 같은 일이다. B는 여러 모로 내 상식 밖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군에 들어간다고?

─응, 아무래도 공군 조종사 중에서 많이 뽑는 모양이더라.

역시 군대를 피하기 위한 건 아니었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웹캠 너머의 B는 이렇게 종종 연락을 해오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나는 그와 대화를 나눌 때마다 어딘가 한 구석이 무거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여 있는데, B는 끊임없이 흐르는 것 같아서. 도대체 무엇이 B를 그토록 흐르게 하는지, 망설임 없이 걷게 하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넌 왜 그렇게 열심이야?

넌 그 정도로도 충분히 대단해, 원한다면 어지간한 자리는 뭐든지 가질 수 있을 건데, 넌 왜 거기서 더 위로 올라가려고 해? 더 높은 곳으로 까마득히, 그렇게 가다간 분명 숨이 막혀서 죽게 될 텐데. 많은 것들을 삼켜냈다. 그러나 B의 앞에서는 그것조차도 별 소용이 없어 보였다. 뭐라고 하지, 어……. 하며 B가 말문을 텄다.

─어릴 적부터 되고 싶었던 거라서?

─왜 그게 되고 싶었는데?

─왜냐니, 그야…… 멋있잖아.

뭐라고? 내가 흡사 비웃는 듯한 표정을 하자, B는 아니, 그게 아니라…… 하고 손사래를 치며 빠른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정말로, 생각해 봐.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딛고 섰을 때의 감각을 말야.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이 오직 나와, 지구보다 훨씬 가벼운 중력과 돌 부스러기와 운석 조각과 그리고 홀로 빛나는, 우리가 사는 행성이 있겠지. 다른 별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야. 그 순간 나는 모든 60억 인구의 위에서, 어떤 높은 산보다도 더 높은 곳에서 우리의 별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거지…… 다른 게 아니라 이게 진짜로 멋있는 거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B와 내 사이에 놓인 간극만큼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깊이는 우리의 모든 공통점을 합쳐도 메울 수 없을 만치 깊었고… 실체는 이런 것이었다. 내게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B에게 있어 달과 같은 대상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B, 나는 너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어. 감히 그래서도 안 되는 거야. 너는 다른 이해자를 찾아야만 해…… 너와 같은 수준의 무언가를 쫓아 달리고 있는 사람을.

그러나 나는 결코 내 입으로 그 말을 뱉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다는 것을 B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조언을 구하고 의지하고 속을 털어놓는 대상이, 사실은 자신에게 한없는 열등감을 품고 있는 자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속을 삼키고 눌러담는다. 그러나 언제나 B의 시선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밤을 밝히는 달빛마냥, 나를 투명하게 꿰뚫곤 했다.

3.

유난히 달빛이 환했던 밤으로 기억한다. 나는 거실에서 B가 사랑하는 달을 올려다 보며, 선배들에 의해 억지로 들어간 술과 내리쬐는 달빛에 취해 B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처음으로 달에 발을 딛고 섰을 때의 광경…… B가 언젠가 볼 광경을 상상하다가, 그 때 B보다 한참 아래 지구의 땅 위에서 그를 지켜볼 내 모습을 떠올렸다. 38만 킬로미터 아래의 나는 분명히 그를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를 질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B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그 이면에서 B가 감내해왔던 모든 것들을 보여주면 금세 도망칠 주제에, 빈 캔을 홀짝이면서, 추하게, TV 브라운관 너머로, 1969년의 닐 암스트롱을 시기했을 누군가처럼.

B, 나는 네가 부럽다

까마득히 올라갈 네가, 나보다 수십 배는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과 다양한 삶을 접할 네가, 나는 그저 속절없이 부러워 무너져 간다.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그 파편들로 속을 채워 겉껍데기를 유지한다. 너를 쫓아갈 순 없을지언정 이해하려고, 지금은 이 땅의 박제가 되어 볼품없어졌다 해도 처음엔 B, 너와 같은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저 흉내내기였다.

종래에는 인정해야 했다. 같은 삶을 살아오지 않은 이상 너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네가 온 몸으로 부딪혀가며 얻어낸 것들이었다. 삶에 누구보다도 충실했던 너를 삶에 게을렀던 내가 따라간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B는 달과 같은 사람이었고 나는 그 달빛 아래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생각들을 입 밖으로 쏟아냈다. 술기운에 흐려진 시야에 B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B의 입술이 움직이는 듯도 했다.

─하지만 네가 나와 다르기에 난 네게서도 많은 것을 배우는 거야.

그리고 나도 사실은 너와 다르지 않…은… 람일 거…

거기서부터는 그저 어둠이었다. B의 목소리 역시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아침, 환하게 불이 들어온 모니터와 불이 들어온 웹캠과 노트북을 보고 모로 누운 나를 발견했다. 아침햇살이 따가웠다.

4.

B의 연락은 평소처럼 잊어버릴 때 즈음 해서 왔다. 술에 취했던 날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B의 얼굴에서는 별다른 낌새를 찾아볼 수 없어, 나는 긴가민가한 심정이었다. 그런 내게 확신을 준 것은 B의 마지막 몇 마디였다.

─나는 달에 가고 싶어.

─응.

─나는 달에 갈 생각이야.

─그래…….

─하지만 결국엔 지구로 돌아와. 나는 이곳에 속한 사람이니까.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

B가 선언했다.

5.

몇 년 뒤 나는 긴 휴가를 내고 공군에 입대한 B의 휴가에 맞춰 미국으로 갔다. B는 파일럿이었고, 우주비행사 자리에 공석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살갗은 까맣게 타고 보드라웠던 뺨 역시 투박해졌다. 시간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B는 여전히 커다란 아기 같은 사람이었다. 조금도 바뀌지 않은 그의 꿈이 그 증거였다.

우리는 렌트카를 타고 미국 군데군데를 돌아다녔다. 해외 여행 자체가 처음이었던 탓에 내게는 온 세상이 별천지였다. 그런 면에서 이제 한국어가 어색할 정도의 시간 동안 미국에 살았던 B는 꽤 든든한 아군이었다. 그렇게 다니다 겨우 적응을 끝마친 4일 째, 편의점 봉지를 달랑거리며 B에게 비행이 무섭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는 생각보다는 괜찮았다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 그래도 야간 비행은 무서웠어. 워낙에 깜깜하니까. 그런데,

─그런데?

─달이 뜬 게 엄청 가까이서 보이더라고. 그래서 이젠 야간 비행이 더 좋아.

나는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 B다운 대답이었다.

미국의 달도 별반 다를 바는 없구나, 생각했다. B와 나는 뚜껑이 환하게 열린 렌트카의 운전석과 조수석에서 앞유리창 위에 발을 놓고 뒤로 길게 누워 잡다한 주전부리들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뒷좌석에는 빈 캔과 병이 널부러져 있었고 저 멀리 휑한 평원 위로 펼쳐진 달은, 마치 몇년 전 그 날처럼 밝았다. 기분도 그 때와 비슷하게 몽롱했다. 달, 달빛, 그리고 적당히 사고를 흐리는 알코올.

B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삶과 수많은 세계와…… B, 너는 왜 그렇게 달을 좋아해? 하자 달빛에 미치기라도 했나 보지, 답하던 목소리와 웃음과…… 바닷물 밀려오듯 쏴아아 몰아친다 기억이 밀려들었다.

B, 나는 여전히 네가 부럽다 속절없이 부럽다……, 하지만, 하지만?

380000km 위의 B, 380000km 아래서 달에 비친 B의 그림자를 지켜볼 나.

상념은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 저 까마득한 미래를 지나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언젠가 B가 했던 말들도 상념에 실려 현재로 돌아온다. 하지만 결국엔 지구로 돌아와, 돌아온다던 B의 목소리. 그러므로 별반 다를 바 없다던 그 말. 달빛이 환했다. B가 또다시 말했다.

─달에 가고 싶어.

─응.

─갈 수 있을까?

잠긴 목소리였다. 나는 B의 입에서 그런 나약한 소리가 나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푸념을 듣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B는 언제나 자신이 달에 간다는 그 하나만은 부정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 B는 자신이 가졌던 절대적인 믿음에 의심을 품었다. 밤하늘 위에 고고하게 군림하던 달의, B의 허상이 깨어진다. 달이 몰락한다.

그러나 그것을 탓할 것은 아니었다…… 무감정한 기계가 아닌 이상에야 약해진다는 것은 한없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나는 비로소 B를 이해했다. B, 너의 의심과 상실이 내게 기쁨이 된다. 동시에 네게 한없이 공감하는 나를 발견한다. 아, 사람은 어찌 이다지도 어리석은지.

6.

아마 B 역시 그 날의 나처럼 술과 달빛에 취했을 것이다. 하며 나는 B 쪽을 흘깃 보았다. 느리게 점멸하는 시야에서 다리를 앞유리창 위로 쭉 뻗어 누운 B가 보였다. 달빛에 비친 뺨이 술기운에 발그레했다. 나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38만 킬로미터 위에서라도 결국 B는 B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달은 이미 네 발 아래 있어, B.

무슨 소리냐는 듯 돌아보는 B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B와, 쭉 뻗은 그의 다리와, 커다랗게 뜬 눈썹달 위로 얹혀 있는 두 발을 보곤 키득거리며 눈을 감았다. 헌 달이 몰락하고 하늘의 빈 구멍 위로 새하얗고 보얀 달이 비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380000km 너머의 빅 베이비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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