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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엽기 신고식

이름 반효희 등록일 16.04.02 조회수 904
새내기 신고식은 조선시대에도 꽤나 고역이었던 모양이다. 대학자 율곡 이이마저 혼쭐이 났으니 말이다. 1564년 장원급제한 율곡은 외교문서를 관장하는 승문원에 처음 배속을 받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과거보다 더 힘든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신참들의 신고식인 ‘면신례(免新禮)’였다. 자존심이 강한 율곡은 선배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미운털이 박혀 관직에 발도 들여 놓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말았다.

면신례는 고려 말에 낙하산을 타고 벼슬을 시작한 권세가 자녀들의 기를 꺾으려고 도입한 것이었다. 원래 좋은 의도에서 만들어진 이 관습은 조선에 와서는 악습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선배들은 신참이 부서에 배치되면 ‘새 귀신’이라고 불렀다. 말석에도 끼워주지 않고 아예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신참은 신입 딱지를 떼는 면신 때까지 온갖 수모를 겪었다. 얼굴에 분칠을 한 채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선배 집을 찾아다니며 값비싼 명함종이를 돌려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다. 선배들을 접대하기 위해 잔치를 벌이느라 집을 팔거나 빚을 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 정도는 약과다. 신참을 괴롭히는 방법은 상상 이상이었다. 선배들은 신참의 얼굴을 오물로 칠해 광대처럼 만들어 조롱했다. 손 씻은 더러운 물을 먹이거나 사모관대 차림으로 연못의 진흙탕에 집어넣어 고기잡이를 시켰다. 미친 여자의 오줌을 받아 강제로 먹이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 역시 절름발이 걸음을 걷고 부엉이 소리를 내는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고 한다.

조선의 악습이 환생한 걸까. 온라인 세상이 엽기적인 신입생 환영회로 소란스럽다. 부산의 한 대학 축구동아리 행사에서 재학생 선배가 신입생들에게 오물이 섞인 막걸리를 들이부었다는 전언이다. 신입생들에게 동아리 옷을 입힌 뒤 고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물 찌꺼기들을 막걸리에 넣어 끼얹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막걸리에 담배꽁초와 휴지, 가래를 넣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은 동아리가 번창하라는 뜻에서 매년 전통적으로 이런 액땜 행사를 해왔다고 한다.

엽기 행동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활개 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면신례로 수모를 당한 율곡은 훗날 왕에게 “위엄과 체통이 구겨지고서 어떻게 올바른 선비로 쓰임을 바랄 수 있겠느냐”며 악습의 폐지를 건의했다. 상아탑의 새내기들이 첫 관문에서 품위와 자긍심을 짓밟히고서 어찌 희망찬 출발을 다짐할 수 있으랴. 안타까울 따름이다.

배연국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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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와 친목을 다지기 위해 짖굿은 장난을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난은 상대방 또한 장난으로 느낄 수 있어야한다. 친목의 목적과 아예 상반된 이러한 신고식의 문화는 오히려 신입생들의 발길을 끊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신고식에 대한 제대로 된 시민의식을 가꿀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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