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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진짜 관심이 필요할 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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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반효희 | 등록일 | 16.03.30 | 조회수 | 843 |
[별별시선]진짜 관심이 필요할 때 ‘관심’이란 단어가 이토록 온기가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언제부턴가 ‘관심병’, ‘관심종자’라는 말이 회자되면서 ‘관심’을 둘러싼 의미역이 기이하게 굴절된 것 같다. 특히 웹상에서 보여주기 군중심리가 반영되면서 ‘관심’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 의미는 때때로 소거된다. ‘상식 밖의 주목을 끄는 행위를 하는 것’이 관심이 되고, 그 관심을 소비하는 주체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관심병’을 앓는 이들이 그 소비를 충족해줄 수 있는 생산 주체가 되면서, ‘왜곡된 관심’의 사이클은 현재도 끊임없이 돌아가는 중이다.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소위 ‘관심병’은 소셜네트워크상에서는 ‘페북스타’ 되기로 탈바꿈하는데, “저는 페북스타를 꿈꾸고 있습니다. 팔로우, 좋아요 부탁드립니다”라는 식으로 ‘좋아요’를 구걸하는 형태의 글로 나타나곤 한다. 물론 여기에서의 구걸은 단순히 말로만 하는 구걸이 아니다. 좋아요 몇 개면, “음식물 쓰레기를 먹겠습니다” “자동차 바퀴에 깔려 보겠습니다” “불똥으로 세수를 하겠습니다” 등등 불특정 다수에게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서 자해나 엽기, 혹은 범죄 행각까지도 서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인터넷방송에서는 그 강도가 더 배가된다. ‘좋아요’와 다름없는 ‘별풍선’(토큰)은 실시간 시청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방송 시간 내에 받은 토큰 개수가 BJ에게는 수익을 의미한다. 그러니 방송으로 고수익을 올리기 위해 BJ들은 자극 수위를 점차 높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위 선정적 인터넷방송을 통해 토큰을 구걸하는 별창남, 별창녀라는 신조 비속어가 생긴 것도 다 이러한 사태 때문이다. 이쯤 되면, 관심을 얻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본과 결합해서, 기이한 어떤 직업군까지 만들어 놓은 셈이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그들을 지칭해서 혐오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의 자극을 필요로 하는, 이런 기형적인 막장 상태가 지속된 지 오래됐다. 비단 삐뚤어진 관심유발의 문제는 웹상에서만의 일일까. 소위 특권계층이 가지고 있는 특권의식이 투사된 행동들은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굳이 이런 자극이라면 딱히 원하지 않는 데도 말이다. KTX 서울역사에 진입한 국무총리의 의전수행 차량 정도라면 어떨까. 007작전을 방불케 하며, 역사 플랫폼에 진입한 에쿠스 차량을 보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더 해볼 수 있을까. 이게 요즘 말하는 ‘관심병’이 아니라면, 상식선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재작년 말에 일어난 땅콩회항 사건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주주로 있는 회사의 항공기라면 자기 마음대로 회항해도 된다는, 그렇게 법 위에 군림해도 괜찮다는 특권의식이 세계적인 관심을 유발하는 데 크게 성공했던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곧 선거 인쇄물들이 집으로 배달되어 오면, 우선 인상을 찌푸릴 각오를 하고 그것들을 펼쳐봐야 한다. ‘지역구를 위해 이런, 이런 일을 했습니다/하겠습니다’ 하는 홍보 섹션만큼, 거물이라 하는 정치인들과 손을 잡은 사진이나 동행 시찰을 하거나 걸어가는 사진 등등이 한두 섹션쯤 꼭 등장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합성까지 하면서, 자신이 힘 있는 정치인이라는 모습을 줄곧 드러내는 경우도 있는데, 이게 과연 웹상에서의 관심유발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모를 지경이다. 한데 무서운 점은 일꾼의 됨됨이보다 그런 모습에 더 신뢰를 보이고 있다는 풍토이다. 투표는 별풍선 주기나 좋아요 누르기가 아닌 데도 말이다. ‘관심’이란 단어의 긍정적 복귀가 언제쯤 가능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우리는 꼭 ‘다르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스테판 에셀이 <참여하라>에서도 시사했듯이, 우리가 처한 이 사회에서 참정하는 일만큼 우리에게 잠재된 위험을 타진해나갈 더 좋은 방법은 없는 셈이다. 4월13일 총선 투표와 더불어 잊지 말아야 할 날짜가 있다. 오는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2주기이다. 특히 이날은 관심의 문제가 아니라 끝끝내 잊을 수가 없는 날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242110565&code=990100 경향신문 오피니언 박성준 시인 겸 문학 편론가의 말씀처럼 현대는 '관심'에 목을 매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이 '관심'을 받고싶은 마음이 어디서부터 우러나는지 볼 필요가 있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일까, 이익을 얻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인정을 받고싶어서일까?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이러한 '관심'을 받고싶어한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관심이 있을까? 이웃끼리 얼굴도 이름도 모른채 살아가는 척박한 현대 사회, 지금 가장 필요한 건 서로에 대한 '관심'이다. 그저 관심을 받으려는 마음보단 먼저 주위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여보는 게 어떨까. 어쩌면 우리가 관심을 갈구하는 이유는 그저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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