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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저성과 해고’ 부작용 보여주는 금융계의 퇴사 압박

이름 전유정 등록일 15.11.04 조회수 701

[사설]‘저성과 해고’ 부작용 보여주는 금융계의 퇴사 압박

 

최근 금융권에서 희망퇴직 거부자들을 잉여인력으로 분류해 엉뚱한 전환 배치나 직무역량향상 프로그램에 투입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저성과 해고’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현실화되고 있는지 우려된다. 어제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현대라이프생명은 희망퇴직 거부자 27명을 두 차례에 걸쳐 잉여인력으로 분류한 뒤 인사발령 조치했다. 대상자 대부분이 고령의 직원인 데다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부서에 배치해 인사의 목적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입사 후 수십년을 영업직에서 근무한 직원을 정보기술(IT) 개발 부서로 발령낸 것은 사실상 해고의 압박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과거 같으면 제 발로 나가기 전에는 사측도 다른 방법이 없었지만 저성과 해고 가이드라인이 논의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전환 배치 후 실적이 저조하면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압박감이 직원들의 자진퇴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KB손해보험도 희망퇴직 거부자 19명을 역량향상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해 사외 온라인 교육을 시키고 있다. 말이 역량향상 프로그램이지 당사자들로서는 저성과 해고의 전 단계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를 하지 못한다고 해놓고 ‘정당한 이유’에 대해서는 더 이상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경영상 필요에 의한 해고가 가능해졌지만 ‘저성과’가 정당한 해고사유가 되는지에 대해 아직 명문 규정이 없다. 정부는 이 때문에 판례 등을 기초로 저성과 해고의 엄격한 절차와 요건을 가이드라인으로 만들어 노동자들을 해고의 남용으로부터 보호하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을 노동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법원 판례상 정당한 해고사유란 ‘사회통념상 근로계약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평생을 몸 바쳐 일한 고령의 노동자를 단지 성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고하는 것은 사회통념에 반하는 부당해고임이 명백하다. 고령의 직원이 연봉에 비해 성과가 떨어져 구조조정 필요성이 있다면 대화로 문제를 풀거나 정당하게 정리해고 절차를 밟는 것이 온당한 처사다. 이 점에서 최근 금융인 압박 조치는 저성과 해고의 해악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정부는 이제라도 저성과 해고 가이드라인이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손쉬운 구조조정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의견을 진지하게 경청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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