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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정화 반대 뜻 모은 시민, 국정화 강행하겠다는 정부

이름 김혜진 등록일 15.11.04 조회수 782

정부가 오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중·고교 교과용도서 구분안을 확정고시한다. 당초 5일로 예정했던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고 한다. 국정화라는 발상 자체가 비민주적이지만 이를 추진하는 양태는 더 비민주적이다. 어제 행정예고 기간이 끝나자마자 확정고시를 강행하는 것은 시민을 들러리로, 여론 수렴 절차를 요식행위로 여겼다는 뜻이다. 국정화에 당위성이 있다면 들불처럼 번지는 반대 여론에 귀 막은 채 군사작전처럼 밀어붙일 까닭이 없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정화가 잘못된 일임을 자인하고 있다.

행정예고 기간, 시민의 뜻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역사학계를 총망라하는 28개 학회가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대표적 뉴라이트 학자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회장을 맡은 바 있는 보수성향 경제사학회도 동참했다. 전국 80여개 대학 690여명의 역사전공 교수가 집필거부를 선언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정옥자·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도,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들도 반대 대열에 섰다. 유치원과 초·중·고 교사 2만1300여명, 대학생 4만2000여명이 국정화 반대 선언에 실명으로 참여했다. 중·고생들도 거리로 나서 1인시위를 벌이고 촛불을 들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일관되게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을 압도하고 있다. 어제 발표된 내일신문·디오피니언 조사 결과에선 반대가 59%로 찬성보다 26%포인트 이상 높았다. 국정화 논쟁이 진보 대 보수의 이념전쟁이 아니라 상식 대 비상식, 다양성 대 획일성, 민주 대 비민주의 대결임이 명확해졌다.

박근혜 정부가 확정고시를 서두르는 것은 성난 민심에 겁을 먹었기 때문일 터다. 정부와 여당은 확정고시만 이뤄지면 사태가 종결될 것으로 기대할 법하다. 하지만 오산이다. 시민은 현 정권이 애써 감춰온 속성을 국정화 파동 탓에 눈치채고 말았다. 헌법정신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외면하며, 거짓 선동과 폭력적 언어로 나라를 분열시키는 그들을 보았다. 10년 전 “역사에 관한 일은 역사학자가 판단해야 한다. 정권이 재단해선 안된다”고 했던 대통령의 자기부정도 목도했다. 확정고시가 강행되면 시민의 분노는 더욱 커질 게 분명하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를 거치며 ‘시민불복종’은 대중에 낯설지 않은 언어가 되었다. 대중은 21세기적 저항으로 20세기적 정권에 맞설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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