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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조성진과 거리의 10대들

이름 정혜빈 등록일 15.11.02 조회수 1175
21살 청년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소식이 모처럼 온 나라를 밝게 했다. 특히 뒷바라지에 올인하는 부모나 음악가 가족을 두지 않은, 독립적인 ‘클래식 신인류’의 등장이라며 사람들은 조성진에게 열광했다. 과장이야 좀 섞였겠지만, 세상은 달라진 게 사실이다. 이전엔 음반 하나 외국에서 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이제는 유튜브만 들어가도 듣고 볼 수 있는 명연주가 널렸다.

올해 들어 작은아이가 평소 좋아하던 히사이시 조의 ‘서머’(Summer)를 직접 치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 바이엘 몇 달 똥땅거린 게 전부인 아이에게 무리라고 했는데, 혼자 인터넷에서 동영상과 악보를 내려받고 학교 음악실에서 틈틈이 연습하더니 곡을 마스터했다. 그러더니 이내 다른 곡도 찾기 시작했다. 큰아이가 중학생 시절 처음 뮤직비디오를 찍어 편집하고 올렸을 때도 우리 부부는 감격했다. 에스엔에스 등을 통해 알음알음 중고장비를 몇번의 물물교환으로 구하고 나선 인터넷에 들어가 혼자 끙끙대며 음악 작업을 했다.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며 깨달았다. ‘우리 아이들이 특출한 게 아니구나.’ 여전히 학교는 입시만이 전부라 하지만 정보가 넘치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시대, 관심이 있다면 무언가를 배우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다는 걸 말이다.

예전에는 어른이나 학교에서 마련해준 기회 말곤 청소년들이 밖에 나서기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기껏 내가 멀리 가본 건 방송반 친구들과 만든 프로그램을 들고 어느 대학 방송국 주최 대회에 참가한 일이었다. 그것도 학교 공문으로 안내를 받은 것이었다.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학교 외에 청소년의 정보는 꽉 막혀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이나 지식도 마찬가지. 좀 조숙한 친구들이 찾은 다른 길이 책 정도였을까.

이런 시대에 자라난 어른들은 요즘 청소년들의 ‘행동’을 두고 ‘배후’에 의심스런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얼마 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며 청소년들이 벌이고 있는 거리집회에 나갔다. 솔직히 그들이 발언하겠다며 앞다퉈 줄서는 모습에 낯선 느낌이 들기도 했다. 나와서 하는 자유발언 가운데도 신문이나 성명서에서 본 듯한 표현들이 적잖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 십대들은 그 어떤 이전 선배들보다 논술과 토론에 익숙한 세대다. 국정교과서 찬반 논리와 근거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단정한 앞단발에 커다란 눈만 반짝이는 앳된 인상의 윤수진 학생은 고2라 했다. 국정교과서는 ‘헌법 122조의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관련 논문도 찾아 읽어봤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앞에 서면 떨릴까봐 교실에서 애들 앞에서 연습하고 왔어요”라고 말하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고3 강재현 학생은 <어린왕자> 속 코끼리를 먹은 보아뱀을 그리고 ‘이 속에 김일성이 있을까요?’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라는 글귀를 적어넣은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진도 나가기 바빠 1학년 때 한국사에서 근현대사 부분을 대충 배우긴 했지만, 지금 좌편향이라고 나오는 이야기들은 너무 악의적이에요”라고 강군은 말했다. “여기는 페이스북 보고 찾아왔는데 좀 고민했어요. 학생이 나서면 시선도 안 좋고 겁도 났고요. 그런데 에스엔에스에서 1인시위 같은 걸 보면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생각했어요.”

김영희 사회 에디터
김영희 사회 에디터
거리를 행진하는 십대들 옆에서 어떤 중년 남성이 곁의 아내에게 “저거 다 전교조가 사주한 거야”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화가 나기보다 그런 생각밖에 못하는 기성세대가 처량해졌다. 하긴 요즘 정부 같아선, 1919년 전교조 같은 조직이 있었다면 유관순도 사주받았다고 할 판이다.

김영희 사회 에디터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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