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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일 화해’는 다가왔다

이름 정혜빈 등록일 15.11.02 조회수 1319
오늘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된다고 한다. 한-일 관계 전문가가 아닌 내가 특별한 진단이나 예상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태에 비추어보면 앞으로 한-일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큰 흐름을 예상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그 사태란 다름 아닌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다.

교육부가 10월30일에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올린 웹툰 ‘역사교과서는 진짜 대한민국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는 지금 정부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웹툰을 포함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쏟아져 나오는 말들을 보고 있노라면 ‘망국의 징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지만, 일단 그건 제쳐두고 이 웹툰이 전하려는 메시지에 주목을 해보자.

이 웹툰의 핵심은 사실 여부를 떠나서 부정적인 역사를 배운 학생들이 “부끄러운 대한민국”에 충격을 받는다는 부분이다. “헐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였다니” 하고 멘붕에 빠져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싫다…”, “부모님 세대들도 한심해!” 하다가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떠나고 싶어. 다 나쁘고 다 미워”라는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역사교육 때문에 청년 자살률이 높다는 놀라운 해석과도 궤를 같이하는, ‘헬조선’의 원인도 결국 역사교육에 있다는 식의 논리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화해’할 수 있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 웹툰을 보면서 강한 기시감을 느꼈는데, 20년 전 일본에서 등장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등 일본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내세운 논리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들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일본의 침략이나 식민지배를 가르치는 것이 ‘자학사관’이라며, 이런 것을 가르치고 있는 교과서를 바로잡지 않으면 국가의 정신적 해체 위기가 올 거라고 경고했다. 그 이후에도 계속된 이런 흐름 속에서 ‘성장’한 정치인이 다름 아닌 아베 신조였으며, 현재의 아베 내각은 그런 세력의 작품이기도 하다. 올해 이루어진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도 관동대지진 때 벌어진 한국인 학살에 대해 ‘경찰, 군, 자경단에 의해 한국인 수천명이 학살되었다’는 서술은 ‘당시 사법성이 230명이라고 발표했다’, ‘몇 명이 학살당했는지 정설은 없다’로 수정됐다. 전쟁을 할 수 있는 체제를 정비하고 있는 일본 정부 입장에서 ‘부끄러운 역사’는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본 정부의 ‘고충’에 대해 한국 정부와 관료들이 깊은 이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 웹툰은 잘 보여준다. 아베 방한을 며칠 앞두고 교육부는 우리도 같은 생각이라고 아베에게 환영사를 보낸 셈이다. 내용도 없는 ‘애국심’을 심어놓기 위해서는 침략이든 독재든 ‘부끄러운 역사’는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미 같은 입장이다. 역사문제를 두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적대적인 척하면서도, 현재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그들은 뒤에서 손을 잡고 있다. 역사문제에 관한 전선은 국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박근혜와 아베 신조가 웃으며 악수하는 날이 왔다. 그들은 그들만의 미래를 위해 ‘화해’를 할 것이다. 그 ‘화해’ 속에서 서로의 ‘부끄러운 역사’를 가려버리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부끄러운 역사’를 알게 되어 받는 충격은 ‘나’와 국가를, 우리와 그들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들이 그토록 ‘부끄러운 역사’를 두려워하는 진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끄러운 역사’가 주는 그 충격과 깨달음 속에서 그들과 다른, 우리의 미래는 시작될 수 있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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