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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부의 무책임이 빚은 ‘보육대란’

이름 정혜빈 등록일 15.10.29 조회수 6845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28일부터 30일까지 사흘간 동시에 연차휴가를 내기로 해 커다란 혼란이 우려된다.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소속 전국 1만4000곳 가운데 최소 8000곳 이상이 집단 휴원 행동에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민간어린이집에 다니는 전국의 영유아는 약 70만명에 이른다.

보육교사들이 단체행동에 나서게 된 계기는 정부의 일방적인 보육 예산 삭감이다. 특히 9월 초 정부가 발표한 2016년도 예산안에 누리과정(만 3~5살) 예산이 단 한 푼도 반영되지 않은 게 불씨가 됐다. 정부는 지난해 가을에도 올해 예산을 짜면서 누리과정 예산 2조2000억원을 전액 삭감했다가 반발이 거세지자 일부를 목적예비비 명목으로 지원하는 선에서 한발 물러난 바 있다. 올해 들어 예산 부족으로 누리과정 사업에 큰 차질을 빚은 지자체가 여럿이다.

문제는 그나마 지난해와 같은 ‘극적 봉합’의 가능성마저 사라졌다는 점이다. 정부가 지난달 15일 누리과정 예산을 중기지방재정계획상의 시·도 교육청 ‘의무지출’ 범위에 명시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해버린 탓이다. 의무지출 경비란 중앙부처가 지방조직에 예산을 내려보낼 때 강제적으로 편성하도록 하는 경비를 말한다. 이를 어길 경우엔 다음해 예산 삭감 등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한마디로, 앞으로는 정부가 누리과정에 돈을 대주지 않을 테니 시·도 교육청이 관련 경비를 자체적으로 충당하라는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17개 시·도 교육감은 의무지출 편성 절대불가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금의 상황은 보육 현장을 볼모로 정부와 시·도 교육청이 ‘치킨게임’을 벌이는 형국인데, 누가 뭐래도 정부의 책임이 훨씬 크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10대 복지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누리과정 공약을 제 손으로 내팽개친 꼴이기 때문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0~5살 보육 및 교육은 국가가 완전 책임진다’고 국민들에게 거듭 약속했다. 그런데 정부는 약속 파기도 모자라 ‘의무지출’이라는 카드를 내세워 관련 예산 편성 가능성을 막아버리기까지 했다. ‘네 돈으로 내 공약을 이행하라’는 무책임과 뻔뻔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빠듯한 나라살림을 책임져야 할 정부의 고뇌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손쉬운 보육 예산부터 줄이고 나선 정부의 근시안적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제 입으로 약속한 보육 공약마저 손바닥 뒤집듯 내팽개치는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과연 얼마나 믿음이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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