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어제 시중 은행장 10명을 불러 간담회를 하면서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선제적으로 나서줄 것을 당부했다. 진 원장은 “구조조정 추진에서 핵심은 정확한 옥석 가리기다. 한계기업은 신속히 정리하고, 살 수 있는 기업은 적극 지원하라”고 말했다. 번 돈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할 지경에 처한 ‘좀비기업’이 상당수에 이르고 이미 구조적 불황에 빠져 허덕이는 일부 업종도 있다. 구조조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시장은 정부가 고강도 구조조정을 예고한 뒤 첫 사례로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에 주목하고 있다. 3분기까지 누적 영업손실이 4조3000억원에 이르는 대우조선은 어제 자구계획과 함께 임금 동결, 파업 금지 등이 담긴 노조 동의서를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전달했다. 산업은행은 곧 4조원가량을 지원하는 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가 대우조선에 ‘선 자금지원 후 구조조정’ 방식을 적용키로 한 것은 원칙에 맞지 않는다. 부실 원인을 들어내는 근본 처방에 앞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경영진에게 대우조선 부실 책임을 엄중히 묻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을 수립하는 게 우선이다. 법정관리 상황에 몰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게 올바른 구조조정 방법이다. 게다가 대우조선을 비롯한 국내 조선업계는 과잉공급이라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임시변통용 자금만 투입했다가는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혈세를 낭비하는 우를 범하게 될 우려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은행권에 선제적 구조조정을 주문하는 것은 은행에만 부실기업 정리 책임을 미루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정부의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처럼 대기업은 살리고, 힘없는 중소기업만 퇴출시키는 결과를 낼 수도 있다. 실제로 지금 은행권은 부실 중소기업을 솎아내는 신용위험평가 기준을 예년보다 강화해 적용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한계상황에 처한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 것뿐 아니라 산업구조를 재편해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대기업을 제외한 구조조정은 임시방편이 될 수밖에 없다.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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