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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따른 역사교육?

이름 박별 등록일 14.11.07 조회수 6911
어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방송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와 관련된 발언을 했다. 아직은 공론화 과정이라며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마치 누군가를 가려주기라도 하듯이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기도 하는 애매모호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해 보인 것은 역사교육이 헌법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9월 초에 <조선일보>에 실린 한 시론도 ‘한국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체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그동안 기존 교과서들을 비판하는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논리 중 하나는 이처럼 헌법을 근거로 한 것이다. 2011년에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에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꿀 때 동원된 논리 역시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구절이었다.
 헌법에서 제시된 이념에 따라 역사교육을 해야 된다는 주장은 언뜻 보기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역사교육의 핵심은 학생들이 자신의 사유를 현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즉, 자명해 보이는 현재의 질서도 어떤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며 그 과정 속에는 현재와 다른 다양한 미래의 가능성들 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도 그 과정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재의 단순한 연장이 아닌 미래에 대해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역사교육의 중요한 기능이다. 이런점에서 보았을 때 헌법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에 제정된 이후 현재까지 총 9번에 걸쳐 개정되었으며 그 가운데 4번은 내용이 대폭 개정된 전부개정에 속한다. 더욱이 1962년과 1972년의 개헌은 헌법에 명기된 개정 절차를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려워 사실상 개정보다 제정에 가깝다. 1987년 이후에는 개헌이 없어서 실감이 안 날 수도 있지만, 1948년부터 1987년에 이르는 불과 40년 사이에 9번이나 바뀔 정도로 대한민국 헌법은 유동적이었다.
 그럼 금과옥조처럼 이야기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어떨까? 1948년 7월에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의 조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런 구절은 찾아볼 수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구절이 들어간 것은 1972년, 소위 ‘유신헌법’이 제정될 때였으며, 처음 헌법이 제정된 1948년 당시 그 핵심이 자유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은 국회에서 헌법정신을 ‘민족사회주의’라고 설명했으며, 실질적 기초자인 유진오는 그 핵심을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라는 상반되어 보이는 두 주의가 조화되고 융합되는 새로운 국가 형태의 실현을 목표로 삼은 것이 대한민국 헌법이라고 말했다. 1949년에 발행된 고시생을 위한 참고서에서도 ‘대한민국헌법이 지향하는 경제적 원칙을 논함’이라는 문제에 대한 답은 ‘정치적 법률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융합,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개량주의적 조화를 기도하여 새로운 국가 형태를 실현함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제헌 당시의 헌법적 가치는 현재와 달랐다.
 역사 속에서 헌법적 가치는 바뀌어왔으며 앞으로도 바뀔 수 있다. 현행 헌법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 것은 주권자가 가진 헌법을 바꿀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40년 전 박정희 대통령은, 본인은 자의적으로 개헌을 강행했으면서도 긴급조치 1호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이 헌법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를 금지시켰다. 현행 헌법을 절대화시켜 역사교육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자세에서는 긴급조치 1호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후지이 다케시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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