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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에서 다수결 방식은 합리적일까?

이름 이가인 등록일 14.11.04 조회수 5302

선거는 대중이 공직자나 대표자를 선출하는 의사 결정절차이다. 대개 투표를 통해 진행되며,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집단을 대표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런데 선거는 정말 국민 각자의 요구를 제대로 모아 보여주는 방법일까?

<대통령을 위한 수학>에는 이 의문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가 정리되어 있다. 제목만 보면 수학책 같지만, 대중 민주주의에서 채택한 선거의 맹점과 한계를 담은 책이다.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할 때 흔히 사용하는 다수결은 합의를 끌어내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 방식에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면 잘못될 위험이 적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데 다수결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구성원들의 선호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13세기 스페인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라몬 유이는 이러한 다수결의 문제를 간파하고 좀 더 복잡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소설 <블랑케르나> 및 두 편의 논문에서 양자대결 방식과 승자진출 방식을 언급했다. 15세기 독일의 성직자 쿠사누이는 라몬 유이의 논문을 읽고 또 다른 방식을 제안하는데, 각 선거인이 모든 후보자의 순서를 매기고 순위에 따라 점수를 부여한 후 이를 합산하여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후 수백 년 동안 잠잠하던 다수결 방식의 문제는 18세기에 들어 다시금 불거졌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프랑스 수학자 보르다와 콩도르세에 의해서였다. 보르다는 3명 이상의 후보자에게 각기 다른 선호를 갖고 있는 투표인단이 다수결로 대표자를 선출했을 경우 투표인단의 선호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을 제시했다.(보르다의 역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선호 순위에 따라 가점을 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한편 콩도르세는 세 개 이상의 대안이 경합하는 상황을 들어 그 어떤 대안도 선택될 수 없는 상황(콩도르세의 역설)을 제시하며 선거 결과가 논리적·관념적 일관성을 갖지 못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양자 대결을 적용하되 후보자의 순위를 재검토해 역설적 순환이 있는지를 점검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보르다와 콩도르세는 다수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두 사람의 방식에도 한계와 문제가 있었다. 이후 고안된 여러 대안 중에도 완벽한 방법은 없었다. 저자는 앞으로도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복잡한 수학적 문제는 난제로 남아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선거를 통한 다수결 선발 방식은 보르다나 콩도르세의 지적처럼 구성원의 선호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정치권력이 실제로는 대중의 손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탁월한 소수가 후보자로 나서고, 각자의 전문성과 인지도는 이들이 선발되는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탁월한 혹은 탁월하다고 여겨지는 자가 선발됨으로써 대표자와 그를 뽑는 자 사이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국민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특별한 국민에 의한 정치로 수렴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며, 선거가 지닌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는 책이 <선거는 민주적인가>이다. 저자는 선거와 추첨이 병행됐던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정치를 설명하며 선거와 추첨의 차이를 밝힌다. 추첨의 가장 큰 약점은 최적임자가 선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위한 수학>에서는 이 점을 아테네 민주주의의 중대한 약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는 추첨제가 아테네에서 200여 년 간 유지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추첨제는 누구라도 관직에 선발될 잠재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통치자와 피통치자를 평등한 지위에 자리매김한다. 이로써 정책의 결정과 집행은 평범한 이들의 권익을 고려하는 가운데 이루어졌고, 통치와 피통치 사이 자연스레 권력의 균형이 잡힐 수 있었다.

게다가 아테네의 추첨제는 몇 가지 장치로서 제도가 갖고 있는 약점을 보완하기도 했다. 집정관의 임기를 1년으로 하고 재임을 금했으며, 임기를 마친 후에는 정산과 감사를 통해 공적을 평가하고, 임기 중에는 주로 연합체임무를 수행하게 하는 등이었다.

이처럼 나름 민주적 속성을 지닌 추첨제는 왜 선거로 대체되었던 것일까? 저자는 ‘인민의 동의’를 유일한 정치적 복종의 근거로 삼았던 근대 자연법 이론의 영향을 든다. 그로티우스, 홉스, 푸펜도르프, 로크, 루소 등 ‘동의’가 합법적인 권위의 유일한 근원이라는 믿음을 공유했던 자연법 사상가들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이들 주장의 밑바닥에는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평등하고 통치권은 이처럼 평등한 인간의 자유로운 동의에서 비롯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버나드 마넹은 선거의 귀족주의적 속성을 들어 자연법 사상가들의 이상이 선거 절차와 양립하지 못함을 지적한다. 후보자의 조건에 탁월성이 전제되어 있고, 선발 과정에서 탁월성이 두드러지게 작용하는 한 평등한 인간의 자유로운 동의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는 비민주적이며 과두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다. 선거는 귀족주의적이며 불평등한 속성이 있는 반면 모든 시민이 선거권 및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한 민주적이며 평등한 속성 또한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선거가 지닌 양면성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어떤 시각에서 분석하느냐에 따라 선거의 비민주성 혹은 민주성만이 부각될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선거를 민주적인 절차라고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에 일침을 놓는다. 선거제도에 내재한, 또 선거를 통해 구현되는 대의제의 비민주적 속성 및 시민 정치 참여의 한계를 직시하고 이에 대한 논의 또한 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충분히 귀담아 들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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