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 찬성’ 토론자 13명중 3명뿐…교육부 명분 흔들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편에 앞서 전문 가와 교육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려고 마련한 첫번째토론회는 ‘국정 교과서 전환 찬성 입장의 완패’로
끝났다.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에도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신중히 결정하겠다 고 밝힌 상황에서, 국정 전환을 추진할
명분이 또 한번 크게 흔들렸다. 26일 경기도 과천 국사편찬위원회 대강당에서 교육부 주최로 열린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는 예상과 달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반대’ 쪽으로 의견 수렴이 이뤄졌다. 진보적 시민단체나 역사학회가 주최한 토론회가 아닌데도,
역사 및 교육 전문가 대부분이 더이상 국정 교과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건 그만큼 학계의 부정적 여론이 높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국정 전환을 강력하게 주장하리라 예상했던 홍후조 고려대 교수마저 “국정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데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현행
검정제의 문제점을 부연할 정도였다. 이날 발제 및 토론자로 참여한 13명의 전문가 가운데 결과적으로 ‘국정화 찬성’ 쪽으로 기운 것은 세
명 뿐이다. 그나마도 한국 사회의 특수성 등을 전제한 조건부 찬성에 가까웠다. 이 가운데 홍 교수는 “5~7명이모여서 쓴 검정 교과서보다
100명이 모이면 더 좋은 교과서를 만들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검정교과서를 집필·심사하신 분들이 모두 모여 교과서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데, 교육부가 지금처럼 투자도 하지 않고 국사편찬위원회에 한 부서를 만들어서 (국정 교과서를) 하려 들면 검정보다 못한
교과서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이종철 ‘청년지식 스토리 케이(K)’ 대표와 이재범 경기대 사학과 교수도 국정제를 옹호했다.
이종철 대표는 “검인정제, 자유발행제가 더 낫다고 생각하고 선진국의 흐름이라고 보지만,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국정 교과서 옹호
논리를 폈다. 이 대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정제 교과서를 펴낸다고 사고가 획일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 국정제의
폐해에 고착된 기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범 교수도 “전 국민이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정화를 한다고 해도 1970~80년대처럼
획일적인 교육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제에 찬성한 세 명의 의견은 반대 쪽 토론자와 청중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한국의 특수성 때문에 국정화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세계 모든 나라는 자기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또 요즘 시대에 국정
교과서를 한다고 획일화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한국사)는 “국정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많지만 결국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가는 과정은 민주화, 세계화 등 진화적이고 순리적인 현상이다. 이념을 떠나 세상이 변하면서
사회적 변화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 국정에서 검정으로의 자연스러운 진화”라며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논리를 폈다. 이익주 교수 등 대부분의
토론자들은 겨우 두번째한국사 교과서를 발행한 검정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현재 이뤄져야 할 논의의 핵심이라는 데 동의했다. 이교수는 “문제가 생기면
보완 방법을 찾는 것이 도리다. 과거 국정 교과서의 폐해를 교훈으로 삼지 못한다는 것은 반역사적이고 비합리적” 이라고 짚었다.
‘국정’으로 가기 위한 시나리오?
여당이 불 지피고 교육부 기름 부어
반격의 선봉에 선 이는 다름 아닌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었다. 그는 최근 일주일 사이 20여 개 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 철회가
이어지자 ‘폭탄 발언’을 내놓았다. 서 장관은 지난 1월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교육과정 체계와 교과서 편성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편수실이 있어서 일차적으로 검증할 수 있었다. 편수 시스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교육부가
사실상 한국사 ‘국정교과서’ 추진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검인정 교과서 체계에서 교육부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국사편찬위원회
등에 검정 과정을 맡기고 결과만 챙긴다. 그러나 편수조직이 생기면 정부 부처가 직접 교과서 내용을 일일이 챙기게 된다. 결국 1996년에 해체한
편수국 직제를 다시 부활시켜, 한국사뿐만 아니라 전체 교과서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편수조직 부활’ 선언은 정치권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자는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이는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다. 그는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 철회가
이어지자 “교과서 1% 채택도 어려운 나라가 어디 있느냐”며 국정교과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대대적인
지원사격에 동참했다. 그는 “교학사의 국사 교과서 채택 학교들이 집단적 압력에 의해 결정을 철회하는 일이 발생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
국정교과서로 다시 돌아가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봐야 한다”며 맞장구를 쳤다. 사실 새누리당의 ‘국정교과서화’ 주장은 갑작스러운건
아니다. 발언의 기원을 찾아가보면, 이 문제의 공론화를 가장 먼저 제기한 이는 정홍원 국무총리다. 그는 지난해 11월5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
나와 “역사 과목 국정교과서 채택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한국현대사학회 소속 교수 등을 불러
진행하던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모임에서 “다른 교과서는 몰라도 국사와 국어 교과서는 국정교과서로 전환돼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논의의 불을 지폈다. 결국 총리가 던진 불씨에 여당이 한없이 불을 지피고, 교육부가 기름을 부은 모양새다. 이처럼 교육부가
강한 대응에 나선 배경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학교 현장과 시민사회단체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8월 검인정 과정에서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교과서가 다시 갈등의 중심에 선 건, 새 학기를 앞두고 학교마다 교과서 선정을 위한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리면서부터다. 서술 내용에
대해 문제가 제기돼 수정·보완을 거듭한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하는 경우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일부 사립학교장들이 교학사 교과서
선정을 강행했다. 교과서선정 과정은 교사들이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교학사등 8가지의 한국사 교과서 가운데 3가지를 뽑아, 교장이 확정해
학교운영위원회가 최종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극우·보수, ‘역사전쟁’ 전략 수정? 실제로 교학사 교과서 채택에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고교생들과 교사였다.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기로 한 학교의 학생들이 ‘안녕하지 못하다’ 며 교학사 교과서 선정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학교 안에 붙이는 일이 이어졌고, 경기도 수원의 동우여고 국사 담당 교사인 공기택씨는 “교학사 교과서 선택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다”는
내용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했다. 그는 “분명히 더 큰 누군가의 외압을 받고 있는 학교장으로부터 몇 차례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다.
교사들은 사립학교가 갖고 있는 인간관계적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요구대로 교학사를 올리긴 했으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3순위로 해서
학교운영위원회에 추천하여 올렸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추진했던 전북 전주 상산고, 경기도 파주 한민고, 수원 동우여고,
서울 창문여고 등 20여 곳은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선정을 철회했다. 그러나 파주 한민고와 서울디지텍고는 교학사 교과서를 선정하기로 했다. 전국
2370곳의 고교 가운데 0.001% 수준이다. (…) 교육부와 정치권의 국정교과서화 주장에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극우·보수 세력이
‘역사전쟁’의 전략을 수정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뉴라이트 대안교과서와 교학사 교과서로 이어지는 새 교과서를 통한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에, 아예 극우·뉴라이트 세력의 정당성에 문제가 될 만한 역사적 내용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봉쇄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 김성환 기자, <한겨레21> 2013-01-20,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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